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습니까?

1.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든다.

2.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

3.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

4.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5.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는 사신(死神)일지도 모릅니다.

첫장에 나오는 글이다.  도입부부터 관심을 확 끌고 있다.  작가는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감각도 젊은 것인가?

사신은 일주일 동안 맡은 사람을 조사한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으면 可라고 보고를 올리고, 보고가 올라가면 그 사람은 다음 날, 즉 여드레 째에 죽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사신 치바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 없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보류한 경우는 딱 한 번! 그가 죽도록 좋아하는 음악에 관계된 어느 재능있는 여자의 죽음만 미뤘을 뿐이다.

그는 인간 자체에 관심이 없고,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행동, 그들의 생각들을 황당해 하거나 한심하다 여기기도 하지만, 실상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호기심으로 뭉쳐 있고, 때문에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고 피식 웃게 되는 행동양상이 나타난다.

더 미묘한 것은, 그가 일주일 동안 조사 대상을 만나면서 그 사람에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혹은 미련을 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혹은 죽음의 때가 이르러서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한 번씩 돌아보고, 후회될 여지를 제거해 나가고, 조금씩 죽음을 향한 준비를 마쳐간다.

치바는 어쩌면 꽤 유능한 사신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에 인생을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의 묘한 재미 또 하나는, 시간의 점프다.  사신의 시간은 영속이다. 때문에 그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을 먼 훗날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뒷 얘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앞 이야기가 겹쳐지면 그가 사신이라는 것을, 그에게 인간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비식 웃게 된다.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태도도 너무 좋았다. 요새 좋아진 음악이 너무 많아서일까.  사신 치바에게 추천하고픈 음악도 엄청 많아졌다.  흠, 그렇다고 그가 내 주위를 배회한다면 좀 더 오래 있다가 오라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삽화가 종종 끼어 있는데, 사신 치바의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가 들어가 있어서 상상력을 조금 방해한다.  그것 말고는 표지의 색감과 깃털, 글씨까지 모두 맘에 든다.

사신 치바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비가 내렸는데, 작품 말미에서 마지막으로 태양을 볼 수 있었던 점도 맘에 드는 장면이었다.  그의 수고에 대한 대가, 혹은 선물 같은 기분. (사실 난 할머니가 또 다른 사신이어서 치바에게도 마지막이 있나? 뭐 이런 반전을 기대하긴 했다...;;;;;)

맘에 드는 리뷰를 읽고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그 충동구매의 결과가 나쁘지 않은, 아니 상당히 좋은 소설이었다.  제목의 시원한 느낌과 함께...

앞에서 제시한 특징을 가진 사신의 방문을 받는다면 특히 조심하기 바란다.  피하긴 어려우니, 남은 생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니까. 혹시 아는가?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잘 구슬려서 몇 십년 간 생을 연장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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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0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었지요!
마노아님..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6-07-2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고른 건 전적으로 비숍님 덕분이에요^^ 아주 재밌었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