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추천받았을 때 나는 중3 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정독 도서관에 다녔고, 매주 금요일에 열람실에 들려서 하루 3시간씩 읽고, 무려 3주에 걸친, 그래서 총 9시간에 걸쳐 일독을 해낸 책이 이 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9시간이나 걸려 책을 읽었냐 보다, 어떻게 3주씩이나 참을 수 있었을까에 더 신기한 느낌이다.

그 후로도 줄곧 내게는 멋진, 좋은 책이 되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이 심판한 세상"이었던 책은 이제 "앵무새 죽이기"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돌이켜 보면, 앞의 제목보다 지금의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좀 더 은유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우리야 조금은 감상적으로 접근하기 마련이지만,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문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어떤 강의를 듣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대놓고 흑인을 차별할 수가 없으니, 흑인이 근처에 이사오면 그 마을 사람들이 통째로 이사가기도 한다는 이야기, 21세기에도 흑인을 차별하는 일은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물론, 많이 나아졌을 테지만, 웨슬리 스나입스 같은 유명 배우도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더라는 서글픈 현실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쓰여졌을 무렵의 미국 사회는 오죽했을까. 너무도 명백한 무죄이고, 또 유죄이거늘,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백인은 백인이기 때문에 배심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기막힌 사실 앞에 어린 아이들의 눈으로 본 그 재판장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은 끔찍한 현실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백인 변호사 아버지는 흑인 이웃의 무죄를 위해 애썼지만,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쓴 이 흑인은 죽을 것을 알고도 탈옥을 감행했고, 결국 담장을 넘지 못하고 총살 당했다. 그가 뛰어 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높다란 담장이 아니라, 그를 죄인이라 손가락질한 그 사회와 사람들의 비양심과 편견, 그리고 불평등함이었을 것이다.  읽는 동안의 내 마음은 작품 속 어린 아이들의 눈처럼 그 부조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를 불안함에 잔뜩 움츠러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시종일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바로 '부'의 존재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도깨비다 귀신이다,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어떤 실체로 지정해 놓았지만, 그는 그저 그들과 똑같은 한사람이었을 뿐이다.

재판에서 변호를 한 것 때문에 아버지는 표적이 되었고, 그 화살은 어린 남매에게 돌아갔다. 위기에 처한 꼬마 숙녀를 도와준 것은, 그들이 무서워 했고 두려워 했던 바로 부 아저씨였다. 소녀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장면을 나는 이 책의 백미라고 꼽고 싶다. 아이의 시선은 아무래도 키가 작으니 낮을 수밖에 없다.  발 끝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시선은 하얗게 빛을 못 본 자신만큼 놀란 얼굴을 한 남자의 눈동자에까지 미친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생긋 웃는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안녕, 부"

세상과 단절된 사내에게 소녀가 제일 먼저 열어준 말은 지극히 평범한 인사, "안녕"이었다. 나는 그 한마디가 그토록 감동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다. 아이이기에 해줄 수 있는 반응, 그리고 선물이 아니었을까. 목숨을 구해주어서 고맙다는 여러 인사보다, 소통이 필요했던 한 사람에게 소녀가 다리를 놓아준 그 인사말이 사내에게는 더 큰 감사의 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아픈 현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만 작품은 줄곧 따스한 시선을 유지시켜 주었고, 희망을 각인시켜 주었고, 더 나은 미래를 전망해 주었다.  이 책이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그런 요소들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좋은 이웃과 친구에게 두루두루 추천할만한 책, 그리고 선물하고 더 뿌듯할 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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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 2006-08-1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제작되었답니다. 그레고리 펙 나오는 흑백영화로 EBS에서 봤던 기억이 있군요.

마노아 2006-08-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곡, 그랬군요. 근데 그레고리 펙이라면... 영화가 만들어진 지 꽤 되었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