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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아이
정유미 글.그림 / 컬쳐플랫폼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한밤중에 깨었습니다.싸늘한 어깨를 이불로 감싸고 창을 열어봅니다. 세상이 어둡습니다.
어쩐지 나혼자만 깨어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늘어진 책가지들을 정리하고 침대 밑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에 먼지아이가 있었습니다.
성냥갑 같은 상자 위에 앉아 있던 아이.
손가락으로 툭 치니까 돌아앉습니다.
계속 건드리니까 아예 상자 안으로 들어갑니다.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입니다.
마음에 걸렸지만 가차 없이 닦아냅니다. '먼지' 아이니까요.
화장대 위를 치울 차례입니다.어김 없이 먼지 아이가 발견됩니다.
자잘한 물건들이 많은 화장대 위는 청소하기 참 애먹는 곳이지요.
먼지 아이가 숨기도 참 좋은 곳입니다.
어쨌든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먼지' 아이니까요.
주방 청소도 했습니다. 오래 방치해둔 컵안에서 그 아이가 또 발견됩니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개수대 안에서 씼었습니다.
물이 잠겨오고 먼지 아이가 꼬르륵 사라집니다.
뭐라 해도, '먼지' 아이니까요.
식탁보를 들췄더니 전선 위에 먼지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너무 익숙한 모습. 역시나 걸레로 닦아버렸습니다.
그래봤자 '먼지' 아이인 걸요.
욕실청소와 샤워를 함께 마치고, 거기서 발견된 먼지 아이까지 하수구로 내려보내고 이제 식사 시간입니다.
밥을 한그릇 떠놓고 라디오도 살짝 켭니다.
차분한 시간이에요. 고즈넉하기도 하고요.
아차차,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를 잊었습니다.
서둘러 일어나다가 식탁 위 전등을 치고 말았어요.
후두두둑 먼지 아이가 떨어집니다. 밥 그릇 위로 말이죠.
움푹 떠내려고 했는데, 밥알 하나를 먹고 있던 먼지 '아이'와 눈이 마주칩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새로 밥 한 그릇을 떠서 먹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같이 밥먹는 친구 하나가 생긴 느낌이 듭니다.
참으로 독특한, 인상 깊은, 여운이 남는 책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먼지 아이마저도 친구로 삼아야 할 것 같은 절박함 말이지요.
먼지 아이는 사람의 모양으로 그려졌지만 말 그대로 '먼지'입니다.
아무 대사도 없이 오로지 그림만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느껴지고 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원작은 애니였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보고 음악마저 깔린다면 그 울림이 또 깊을 것 같네요.
좋은 작품입니다. 오래오래 기억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