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0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 군비축소회의는 특정 재래식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누구든 건드리기만 하면 피해를 입는 지뢰와 부비트랩, 눈을 멀게 하는 레이저 무기, 전쟁 이후에도 남아서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잔류 폭발물이 포함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무기는 ‘지뢰’다.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폭발식 지뢰는 눈에 띄지 않도록 땅 속에 묻어두기만 해도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가는 순간에 맞춰 폭발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 가능성이 높다. 전쟁 후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주는 바람에 ‘인간이 만든 가장 비열한 무기’로 불리기도 한다.
지뢰는 정확히 어디에 묻었는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추후에 일일이 찾아내 수거하기가 불가능하다. 특히나 탐지가 불가능하도록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만든 지뢰나 탐지 기계가 내보내는 자기장에도 쉽게 폭발하는 지뢰, 자동으로 폭발하거나 원격으로 폭파시킬 수 있는 지뢰는 요주의 대상이다. 지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955년 미국이 개발한 M14 대인발목지뢰는 적은 양의 폭약을 터뜨려 사람의 발목을 잘라냄으로써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하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가게 만든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무기지만 무게가 100g에 불과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탐지가 쉽지 않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는 M14 지뢰를 우리나라는 여전히 100만 발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세계 90여개 국가의 1,400개 비정부기구로 구성된 민간단체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매설된 지뢰는 1억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지뢰 매설 수가 가장 많다.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반도 곳곳에 매설된 지뢰의 숫자는 수백만 개에 달하며 전쟁 이후에도 1천 명 이상이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신체 피해를 입었다. 그 중 80%는 민간인이다.
ICBL은 군비축소회의에서 관련 조항을 더욱 엄격하게 개정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덕분에 1997년 12월에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이 대인지뢰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국제조약 이른바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에 서명했다. 이 공로로 국제지뢰금지운동을 처음 시작한 조디 윌리엄스(Jody Williams)는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연간 2만6천 명에 달하던 지뢰 피해자는 오타와 협약 10년 후 1만5천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현재 133개국이 서명하고 161개국이 비준한 오타와 협약을 우리나라는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북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지뢰 피해자와 유족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우리나라 국회를 통과해 지난 4월 16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앞으로 지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의와는 별개로 기존에 매설된 지뢰를 없애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아서 문제다. 지금까지는 갈퀴나 철선으로 땅바닥을 긁거나 나무와 폭약에 불을 붙여 지뢰 매설지대에 굴리는 방식으로 제거를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군 장병과 전문가들이 많은 피해를 입는 바람에 1993년부터는 속도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인도적 지뢰 제거법’이 도입됐다.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위험지역을 조금씩 확인하거나 살수차가 물을 뿌린 후 특수차량이 지나가며 지뢰를 발견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최근에는 땅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층관통 레이더(GPR)를 금속탐지기와 결합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이중센서 감지기, 쥐나 꿀벌을 이용하는 생물학적 탐지법, 폭발물과 닿으면 색이 변하는 특수식물 살포, 지뢰가 폭발해도 끄떡없는 특수로봇 등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비무장지대(DMZ) 서부전선에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동부전선에서 철도 부설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플라스틱 파이프에 폭약을 넣어 위험지역에 굴려 넣고 간이파괴통으로 우선 지뢰를 제거 하고, 공기 압축기로 나뭇잎과 먼지를 날려 보낸다. 그리고 땅속 지뢰를 드러나게 한 후 이를 수거해, 특수복을 착용한 군인이 직접 살펴보고 해체 처리를 한다. 방탄 처리가 된 굴삭기로 지표면을 50cm 이상 벗겨내는 등 총 6단계에 걸친 제거 방법을 사용했다.
민간 기업들도 지뢰 제거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마인테크 인터내셔널(MineTech International), 지포에스(G4S), 식스 알파 어소시에이츠(6 Alpha Associates), 메켐(Mechem), 백테크 인터내셔널(BACTEC International), 더 디벨롭먼트 이니셔티브(TDI) 등 수많은 전문기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국제 분쟁으로 인해 군대를 파견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특수 설비가 필요한 경우에 초빙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골칫덩이 지뢰를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 비용, 안전 등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성이 2001년 발간한 ‘숨은 살인자(Hidden Killer) 보고서에 따르면 지뢰를 한 발 매설하는 비용은 5천원에 불과하지만 제거할 때는 200배가 넘는 100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10년 넘게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 현재는 30만 원 정도까지 제거 비용이 낮아졌지만, 국토 곳곳에 매설된 지뢰 전체를 없애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시간도 부족하다. 우리나라 국방부의 계산에 따르면 한반도 내 모든 지뢰를 제거하려면 앞으로 500년이나 흘러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폭발해 군 장병들이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신체를 다쳐야 비극이 끝날 것인가. 세계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