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일본군 위안부 만화
고경일 외 지음 / 형설라이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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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만화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이 프랑스 앙굴렘에서 개최되었다. 그 전시 작품들을 묶어서 세권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도서관에 신청해서 책 도착한 당일에 빌려본 책이다.

 

 

 

'천황의 선물'이란 제목이다.

마치 보급품 보내 주듯 여성들을 전쟁터에 강제로 떨궈놓고 소모품으로 사용했다. 이 행위에 인간의 'ㅇ'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소녀가 된 할머니는 그 또래의 소녀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것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작품 제목 83은 그동안 흘러버린 시간 83년을 의미한다.

 

이 숫자를 인식하고 나니 할머니들의 연세가 밟히고, 이분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각인된다. 저들은 시간이 그들의 편이라고 안심하고 있겠지.

 

 

 

모래가 다 떨어지면 뒤집어서 다시 시작하는 모래시계를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아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여성이고 어머니이다. 대지를 상징하는 강이 흐르고 그 대지는 모래시계의 곡선을 따르며 휘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할머니의 얼굴. 할머니의 얼굴에 고통이 가득 퍼진다. 이 표정이 곧 역사다. 그분들이 온몸으로 받아낸... 

 

얼굴이 사라진 자리가 까맣게 재가 되어 가라앉는다. 그 흙을 양분 삼아 꽃이 피어난다. 이분들의 의지가,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바람이 그대로 꽃이 되어 피어난 듯 보인다. 이 전시회의 제목이 '지지 않는 꽃'이었음을 상기해 본다.

 

 

 

영화 '한공주'를 보기 전에 굉장히 우려했다. 소재 자체가 말도 못하게 끔찍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후폭풍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슬픈 이야기를 슬프게 담아내지 않았다. 핵심을 이야기하지만 부러 자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 절제가, 가끔 유머감각도 보여주는 여유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본다. 할머니들의 투쟁도 그러했다. 1994년도의 첫 집회는 통곡 소리와 울부짖음 밖에는 없었다고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 김동희 씨는 고백한다.

 

그러나 그렇게 눈물과 통곡 만으로 20년을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흘렀고 할머니들은 통곡 대신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로 시위를 이어가고 계시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고발할 때, 흔히 그렇듯 진보적 메시지를 전할 때 너무 장엄하거나 비장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싸움은 언제나 오래 가기 마련이고, 결국은 버티는 일이 중요할 테니까.

 

누군가는 이제 잊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한다. 그 어두운 기억을 들추어서 무엇하냐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심지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족들도 할머니들의 이런 과거 고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인생마저도 영향을 끼칠 거라고 걱정부터 한다. 왜 공감이 아니 가겠냐마는, 그렇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피해자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기를 바라며 웃고 있는 가해자들의 오만함을 부서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 청산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고 제대로 정리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서로가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현대사가 이렇게 꼬이고 꼬이고 또 꼬였던 것도 결국 첫 단추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에서 시작한 게 아닌가.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게 마땅하다.

 

 

 

국내에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에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오키나와에서, 타이완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이 있어 왔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참으로 독하고 무섭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 이 작품들이 전시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 극우 만화가와 시민들이 이 전시회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전시회를 주관하는 프랑스 측의 행보는 무척 성숙했다. 오히려 일본 측의 이런 방해 작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냈다. 의도하지 않은 노이징 마케팅이랄까.

 

불과 나흘 간의 짧은 기간이었으나 전시회는 대성황이었다. 70평 남짓한 공간에 연인원 2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컷의 만화에서 그들이 받고 돌아갔을 깊은 울림을 상상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다. 그런 역사적 상흔이 유럽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전시회를 더 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일본은 패전 7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비극적인 역사에서 이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해서 더는 사과하고 싶어도 사죄할 수 없을 때까지 버티지 말고, 이제는 제발 역사 앞에 당당히 서기를... 그래야 서로가 미래를 내다보며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평.화.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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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4-12-3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 꽃이 피어날수는 없지만 역사앞에 당당하게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릴수있길 바랍니다

마노아 2014-12-31 10:42   좋아요 0 | URL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정의는 바로 세워야지요. 암요!!

순오기 2014-12-3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노력을 이어갈 땐 정의가 살아나고 역사 바로세우기가 되겠지요~~감동입니다!!

마노아 2015-01-01 23:07   좋아요 0 | URL
그치요? 이런 노력들이 더 모이고 그래서 결실을 제대로 보았으면 좋겠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