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내가 잠들기 전에(로완 조페, 2014)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는 무척 궁금했던 영화다.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여자 니콜 키드먼.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사내가 자신의 옆에 누워 있고 본인은 자신을 이십대 초반으로 기억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40대에 들어서 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매일 아침 새롭게 설명한다. 나는 당신의 남편, 당신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쳤고 이것들이 우리의 결혼 사진들이다 등등등...
매일 자신을 혼란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라니, 보통 지극정성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여자에게는 날마다 전화해 주는 의사가 있으니, 그는 역시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옷장 안의 카메라를 꺼내라 하고, 그 안에 여자가 날마다 녹화해둔 자신의 육성 동영상 파일을 틀어보게 한다. 여자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녀의 다친 기억체계는 도통 돌아올 줄을 모른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워낙 자극적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들어 놨기에 저 사람 인상 더럽네. 분명 범인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보다가 뒷통수 맞았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지..;;;;
스포일러만 조심한다면 제법 긴장감있게 볼법한 스릴러 영화다. 물론 영화에 도통한 분이라면 단번에 반전을 눈치채겠지만.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남편 잘생겼다는 설정에 헐~한 부분이 있었다. '잘 생겼다'의 의미가 너무 다른 걸!
정말 저렇게 매일매일 기억이 리셋되는 기억상실증이 있는 걸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 세팅된다니,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
74. 보이후드(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같은 배우들을 무려 12년동안, 매년 일주일씩 촬영해서 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 세상에, 이런 장인 정신이 또 있나!
비포 시리즈를 18년에 걸쳐서 세편 찍어낸 감독다운 열정과 정성이다. 아역배우와 성인배우를 같이 캐스팅한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자라서 고스란히 성장해가는 모습을 찍었다. 당연히 젊은 배우들은 조금씩 늙어간다. 에단호크의 한창 때 얼굴을 보다가 잘생긴 얼굴이 중후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이 신기한 경험!
이야기는 평범하다. 어려서 사고쳐서 아이를 낳은 부부가 결국 헤어졌고, 각자 다른 가정을 이루면서도 부모 자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는, 연인에서 부부로, 원수에서 다시 친구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해서 특별했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소재가 전혀 없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구하느라 바쁘고, 자녀가 독립을 해서 허전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다. 영화가 워낙 잔잔해서 보는 동안 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몰입도가 좋았다. 참으로 착한 영화다.
주인공의 누나로 나온 아이는 감독의 딸이다. 성이 같아서 알아봤네. ㅎㅎㅎ 눈이 엄청 쳐졌는데, 꼭 닮은 아이를 알고 있어서 볼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른다. ^^
★★★★★
75. 패션왕(오기환, 2014)
웹툰을 영화로 옮긴다고 한다. 그게 '패션왕'이라고. 오, 제목이 끌리는 걸?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6회까지인가 무료였는데 그만큼 보는 동안 나는 전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내용도 흥미롭지 않고 그림도 너무 성의가 없어서 도무지 뭘 보고 열광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음... 혹시 내가 나이 먹어서 청소년을 이해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곤란하지. 그래서 영화를 봐주기로 했다. 영화로 보면 좀 낫겠지 싶어서.
뭐, 결과는 올해의 영화로 등극하시었다. 워스트 영화로.ㅡ.ㅡ;;;;;
이건 뭐 겉멋만 잔뜩 든 아해들의 재벌놀이 주니어 버전도 아니고...
만화적 상상력과 오버 액션을 한 거라고 이해해주려고 해도, 그렇다면 그런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던가...
왕따 문제든, 아님 출생의 비밀이든, 뭐 하나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외모를 포기한 전교1등에 설리가 출연한 순간, 아 저 아이가 수능 끝나면 안경 벗거 머리 펴고 변신을 하겠구나-라고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패션왕으로 거듭나야 할 우기명(주원)은 훌륭한 기럭지에도 불구하고 별로 핏은 살지 않았다. 모델은 아무래도 좀 더 말라야 하는 건가?
하나 봐줄만한 캐릭터라면 김성오가 분한 박남정 캐릭터다. 핏도 김성오가 더 좋았음...;;;
요새 틀면 나오는 이경영도 이 작품에서 잠깐 나오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하고 말리고 싶은 심정... 서브 주인공이 악역 캐릭터일 경우 미워할 수 없는 어떤 근거나 사연을 부여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선 그것도 공감이 가질 않았다. 이 영화에 맞짱을 뜰만한 작품으로 '차형사'가 있는데, 그래도 차형사는 초절정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씬에서 런웨이 장면은 꽤 그럴싸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눈호강은 시켜줬는데, 이 작품은 잘빠진 배우들 데려다가 그것도 못해.. 하아...
옛날에 드라마 패션왕이 잘 나가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 컨셉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쪽이 훨씬 볼만했음. 끙!
★☆
76.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2014)
그야말로 장엄한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도 관객을 제대로 놀래켰다. 더 재밌었던 건 다크 나이트였고,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인셉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함 같은 게 있었다. 이런 영화감독이 있고, 이런 작품이 있고,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겨우겨우 예매한 아이맥스관. 이 커다란 상영관도 이 작품을 제대로 담아내진 못했다고. 국내에는 이 작품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극장이 없다고. 헐... 영화를 위해 극장이 있어야 하는데 극장 사이즈에 영화를 맞출 판이네...ㅡ.ㅡ;;;;
지구멸망, 혹은 인류멸망의 위기 앞에서 거대한 사명을 띠고 우주로 나가야 하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식상한 설정이다. 근데 그 뻔할 뻔한 이야기를 전혀 뻔하지 않게 시작하고 풀어낸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늘 가족애가 중심이 된다.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돌아올 힘을 갖게 되는 미션 수행자.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일부러 돌아올 가족이 없는 사람만 뽑은 미션도 있다. 그 아이러니.
저 위의 포스터에 나오는 행성에 도착했을 때 공포가 가장 컸다. 그 어마어마한 물기둥이라니. 게다가 한 시간에 7년을 잡아 먹는 어마어마한 갭!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세시간을 소비했고, 지구에서는 이미 이십 년도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려서 헤어진 딸은 떠나올 때의 자기 나이가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 아버지가 오열한다. 사명은 숭고하지만, 그가, 그리고 그의 가족이 치른 희생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못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라도 지구 전체의 운명을 구하는 대신 내 가족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 지구의 끝을 볼 것만 같다. 답을 미리 알았다면 말이다.
어려운 물리학 용어와 설정이 잔뜩 나오지만, 그래도 일반 관객들이 큰 무리 없이 이해하도록 영화를 끌어 간다. 이 영화 덕분에 킵 손이라는 이름도, 칼 세이건이라는 이름도 어찌나 친숙해졌던지...ㅎㅎㅎ
앤 해서웨이는 숏컷이 무척 잘 어울렸다. 전성기 때의 데미 무어를 보는 기분.
영화는 한 번 더 보고 싶을 만큼 충분히 재미 있었지만 다시 보기엔 너무 길어... 요새 두시간 넘는 영화가 왜 이리 많은 거야.. 방광의 압박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음 영화는 어떤 것일까 크게 기대가 된다. 이만큼의 물자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투자를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여서 하고 싶은 영화를 기어이 만들어내는 그런 뚝심과 능력을 가진 사나이. 근사하구나!
★★★★★
77. 카트(부지영, 2014)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 11월 13일에 개봉한 카트.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봐야만 하는 영화였다. 그러나 그런 의리를 내려놓고서도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도 꽤 괜찮은 영화였다. 청소년 관객을 많이 모아준 도경수의 연기도 훌륭했고, 청소년 알바 고용 행태에 대한 실상도 잘 보여주었다. 특히나 급식 한끼를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했다. 깜박하고서 급식비를 못 낸 아이라면 내일 내면 되지 뭐~ 하면서 외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내지 못했다는 걸 아는 아이는 자격지심에 밥을 굶게 된다. 그 상황이, 그 입장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대한민국이 학생들 밥한끼를 못 먹일 만큼 경제력이 없는 나라인데 말이다..ㅜ.ㅜ
홈에버 사건을 다룬 영화 카트. 이런 영화는 필연적으로 가슴 통증을 동반시킨다. 그 끝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접근한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밟힌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일까. 정치의 민주주의도 경제의 민주주의도 모두 후퇴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
78. 퓨리(데이비드 에이어, 2014)
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연구수업 준비를 하던 와중에 이 영화 광고를 보았다. 2차세계대전이었으면 써먹을 수 있었겠다~하고 생각했지만, 뭐 시기가 안 맞았음. 내 수업은 10월이었고, 이 영화는 한달 더 뒤에 개봉했으니까.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전선을 휩쓸며 살아남은 부대. 브래드 피트가 이끌고 있었고, 탱크의 이름은 퓨리다. 때는 4월. 히틀러가 죽기 얼마 전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이 그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알았더라면 마지막에 전투 대신 몸을 피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훈훈하기만 했던 전우애는 아니었지만 결국엔 훈훈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 하나 둘 목숨을 버려야 할 때가 오는 게 안타까웠다. 한달, 일주일, 아니 하루만 더 버텨내도 살아돌아갈 길이 생길 수 있었는데,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독일의 한 마을에서 여자 둘만 있는 집에 들어갔을 때, 저녁 만찬을 즐기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길어서 그 부분이 좀 지루했던 걸 빼면 전반적으로 영화는 좋았다. 지나치게 마초적이지도 않고 어설프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는 샤이아 라보프의 열연이 돋보였다. 아무래도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한 것만 보았기 때문에 그의 연기력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나 보다.
브래드 피트는 늘 일정한 정도의 작품 고르는 눈을 보증해 주었다. 연기력도 마찬가지. 빵발 아저씨, 이번에도 반가웠어요!
★★★★
79. 거인(김태용, 2014)
연관검색어가 '그 김태용이 아니고'란다. ㅎㅎㅎ 탕웨이의 김태용이 아니라 다른 영화 감독 김태용의 작품이다.
주인공 영재는 부모님과 동생이 있지만 집을 나와서 천주교 재단의 도움을 받는 쉼터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는 일할 생각도 없고 자꾸 종교 단체 등을 통해서 빌붙어 살 생각만 하고, 엄마는 일하시다 허리를 다쳐 이모 댁에 가 계신다. 이제 고1이 된 영재는 나이가 차서 곧 쉼터를 나와야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것만큼 끔찍한 게 없다. 영재는 쉼터 부모님들의 눈에 들어 계속해서 돌봄을 받고 싶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쉼터 부모님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신학 대학에 입학해서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성적도 그만큼 나오지를 않고, 주변 여건들이 영재를 자꾸 밖으로 내치게 만든다.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이 아이의 하루는 너무 치열하고 고단한데, 무책임하고 뻔뻔한 아비는 동생마저도 영재에게 맡길 생각을 한다. 오 마이 갓!
아빠만큼 뻔뻔하진 않지만 엄마 역시 무대책이었다. 게다가 철없는 동생은 형의 고충 따위는 알 턱이 없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영화를 보는 동안 참 힘들었다. 이렇게 세상에 떨궈진 채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내야만 하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삶을 견뎌야 하는 어린 목숨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에 대한 참담함과, 이렇게 책임지지 않고 부모라는 것만을 내세우는 위인들도 참으로 많다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담임선생님은 피상적으로 아이에게 던지듯 관심을 표현했고 그게 다였다. 영재의 쉼터 부모님들도 위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만으로 세상에 던져져도 얼마든지 제 입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마냥 어려서 뭘 모르는 나이도 아니고, 알 것 다 아는 나이의 이 친구들에게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부모님 건사하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점수까지 갖춰도 만만치 않은 세상인 것을...
굳이 어느 쪽이 더 좋았냐고 한다면 내게는 '파수꾼'이 더 좋았지만 둘은 청소년이 주인공일 뿐, 내용과 전개방식이 많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힘들다. 그래도 마지막에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 선을 그으며 마무리를 지은 것은 참 좋았다. 여백의 미가 보인다. 포스터의 저 아이는 날아오르는 것일까, 추락하는 것일까. 역설적인 제목의 거인, 좋은 영화다.
★★★★
80. 빅매치(최호, 2014)
최근 이정재의 영화 선택은 무척 좋았다. 신세계가 가장 좋았고 관상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의 호연을 몽땅 깎아먹는 잘못된 선택이지 싶다. 대체 이런 영화 왜 나온겨???
격투기 선수 이정재는 살인 사건에 연루된 채 형이 납치되고 본인마저도 의심받는 순간에 유치장을 빠져나와 형을 구출하기 위해 뛰고 뛰고 또 뛰고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함정에 빠졌다. 게임을 기획한 것은 에이스 신하균.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이지만 결국엔 이정재에게 도움을 주게 되는 보아가 등장하는데, 이 캐스팅은 정말 미스 캐스팅...;;;;
영화는 꽤 강도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 단순히 액션만 보자면 이정재는 꽤 멋있게 나왔다. 명품복근은 그야말로 보너스!
하지만 그게 다다. 아무리 액션영화에 시간 때우기용 영화라 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설득력'은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 의미 없이 때리고 부수고 깨버리는 영화는 너무 소모적이다. 게다가 배성우가 분한 조폭들의 어줍잖은 개그는 또 무엇인가. 개연성 없는 이들의 파트너십도 어이가 없고, 총체적으로 황망한 영화였다. 패션왕이 아니었다면 올해의 워스트는 이 작품이 차지했을 것이다. 사진도 안 퍼왔다. 시간 아까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