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은 책 속에 인용된 책 속 구절이다. 제목 자체로는 인상 깊지만, 그 구절이 문맥 속에서 크게 인상깊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떤 책이었는지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반면 영화 제목은 '안녕, 헤이즐'로 무척 평범하지만 대신 귀에는 쏙 꽂히는 제목으로 갔다. 책을 보고 크게 좋았다면 영화도 찾아 봤을 테지만, 책이 큰 감흥을 주지 못해서 영화까지는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서포트 그룹에 간 건 예전에 겨우 18개월짜리 자격 취득 교육을 받은 간호사들이 나한테 알아먹지 못할 외국 이름이 붙은 화학물질을 투여하게 놔뒀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서. 세상에서 나이 열여섯에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지랄맞은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암에 걸린 자식을 갖는 거다. -12쪽

 

암에 걸린 열여섯 소년 헤이즐,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서포트 그룹에도 들어가서 다른 암 투병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적적으로 암을 치료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그곳에서 만난 어거스트와는 연인이 된다.

 

헤이즐에게는 인생의 책이 하나 있는데 제목이 "장엄한 고뇌"이다. 제목은 무척 그럴싸 하다. 이 책을 어거스터스도 읽게 되었다. 헤이즐은 책의 뒷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작가는 뒷이야기를 쓰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을 이 작가 만나는 데에 쓴다는 것까지는 무척 문학적이고도 낭만적이고, 극적인 짜릿함을 주어서 좋았지만, 그걸 표현해 내는 글발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사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내용은 많이 아쉽다. 소재 자체가 상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담아내는 작가로부터 이것은 '소설'이야, 내가 지어낸 이야기야...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말이다. 이를테면, 작품으로 하여금 독자 스스로 감동받게 해야 하는데, 작가가 대놓고 '슬프지? 슬프지? 자, 이제 울어!'하고 강요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좋았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두 주인공보다 그들의 부모님이 참 좋았다. 특히 헤이즐의 부모님들. 다분히 '이상적'인 캐릭터이긴 했지만, 이런 부모님들이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어린 딸의 긴 암투병에 당연히 지치고 무섭고 힘들텐데도, 그 와중에도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고 절대로 뒷전으로 미뤄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고된 도전에 딸 헤이즐도 격한 응원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였던가? 라디오에서 한참 광고를 하던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어린 내가 읽기에도 아주 식상했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였다. ㅎㅎ 이 작품도 물론 누군가에겐 아주 좋은, 재밌는, 의미있는 작품일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다른 감흥을 줄 테니까. 어쩌면 영상으로 만나는 작품은 좀 더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혹여 기회가 된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일단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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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0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 저도 읽었어요. 어릴적에. 라디오에서 엄청 광고했잖아요. 게다가 사춘기 소녀들을 흠뻑 빨아들일 제목이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읽고 나서 되게 황당했던 기억이 나요. 여자가 남자를 찾아갔는데 마지막에 법정인가, 거기에서 눈 딱 마주치고 그냥 끝나버리는.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는 게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이었는데 남자는 그렇지 않다, 뭐 이런 말 하는것 같아서 다 읽고나서 `이게 뭐여..`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노아님도 읽으셨군요, 그 책을.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4-12-02 10: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책은 제목이 90% 먹고 들어간 것 같아요. 굉장히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용두사미였죠.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티가 이렇게 나요. ㅋㅋㅋ
다락방의 꽃들도 그때 그렇게 광고했는데...^^ㅎㅎㅎ

다락방 2014-12-02 10:45   좋아요 0 | URL
라디오에서 했던 광고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게 영화 [엔들리스 러브(영원한 사랑이었나)] 에요. 톰 크루즈랑 브룩 실즈 주연이라고 광고를 엄청 했는데, 그당시 톰 크루즈 인기가 하늘을 찔렀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그 영화 보니까 톰 크루즈는 브룩 실즈의 오빠로 나오는 조연이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미친 광고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노아 2014-12-04 06:50   좋아요 0 | URL
저 작년에 정은임의 영화 음악을 오래오래 들었거든요. 이게 20년 전 방송인데 광고 듣는 재미가 아주 컸어요. 손발이 완전 오그라들고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런 제품들이 마구마구 나오더라구요. 격세지감을 느꼈달까요. ㅎㅎㅎ

[그장소] 2014-12-0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시의 라디오 광고를 성우분이 하셨는데..그 목소리가 굉장한...!! 주말의 명화에나 나오시고 라디오도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하시던 그런분..였는데..갑자기..이름이..(이...뇌를!!)암튼, 그 목소리에 혹해 외국번역서 사다 몇 번 읽었는데..
아닌말로..딱~로맨스소설 삘~ 다니엘 스틸,쥬드 데 브르, 피에르 뒤쉔느...앤 타일러 등등..
책값이 5000원 일때!

마노아 2014-12-04 06:51   좋아요 0 | URL
그 성우분 누굴까요. 저 한때 성우 목소리에 꽂혀서 마구 파고 다니던 때가 있었거든요. 지금도 장세준 씨의 죽음이 가슴아프답니다.ㅜ.ㅜ
책값이 5천원을 넘기지 않던 시절의 문화생활, 아 정말 아득하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