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파도
유준재 글.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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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서 태어난 파란 말. 사람들은 상서로움의 징조로 여겼고, 이 신비로운 갈기를 가진 말은 군주에게 바쳐졌다. 이때부터 군마로서 길러진 파란 말은 거침 없이 전장을 누볐다. 그 거침 없음에 파란 말은 '파란 파도'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파란 파도가 지나간 곳은 군주의 새땅이 되었고, 그 땅의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땅을 잃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파란 파도는 행운의 상징이 아니라 저주의 표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던 전장터에서 자신과 똑같은 눈을 한 소년병사를 맞닥뜨리고 만다. 맹목적으로 전쟁터만 누빈, 이기는 것만이 최우선이 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 거침 없는 눈빛이 무서웠다. 파란 파도는 자신도 모르게 멈추고 말았고, 그 순간에 화살을 맞고 다리를 크게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말에서 떨어진 군주, 게다가 전투에서도 지고 말았다. 군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파란 파도는 이제 목숨을 잃을 처지가 되었다. 지금껏 파란 파도가 자신에게 가져다 준 승리 따위는 기억에도 없다. 한번의 실수로 가차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군주로서는 그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파란 파도를 지금껏 돌보아온 노병은 차마 파란 파도가 죽도록 둘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성밖으로 몰래 도망치지만 추격해 오는 병사들의 화살에 온 몸이 찢기고 만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푸른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아기 엄마를 본다. 이제껏 전쟁을 지휘하는 군주만 태웠던 파란 파도가, 처음으로 진짜 자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람을 태웠다. 가난한 이들이었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마침내 강물을 건너고, 영원 속으로 사라진 파란 파도. 이제껏 저주의 이름으로 각인되었던 그의 이름이 다시 평화의 상징이 되고 마는 순간이었다. 


의도적으로 색을 많이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파랑색과 검은색, 흰색 정도만 다루었다. 거친 붓질에서 도도하게 달리던 파란파도의 힘찬 모습과, 군주의 꽉 찬 욕심, 그리고 사람들의 절망까지도 함께 읽힌다. 글과 그림의 분위기가 잘 맞는다. '마이볼'로 감동을 주었던 유준재 작가의 신작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소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 파도'라는 이름도 참으로 마음에 든다. 사람을 죽이는 칼이 농사 짓는 쟁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처럼 보게 되는 상서로운 말이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어서 아련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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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이볼의 유준재 글과 그림이라니 관심이 가네요.
내용도 주제도 썩 괜찮아보여요~

마노아 2014-11-16 16:58   좋아요 0 | URL
책 세권을 연달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좋았어요. 작가 소개에서 `마이볼` 보고서 더 반가웠지요.^^

서니데이 2014-11-16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가 파란 말의 해니까 올해와 잘 어울리는 책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마노아 2014-11-16 23:32   좋아요 0 | URL
아, 올해가 청마였나요? 제 띠이긴 했는데 색깔까진 기억이 안 났어욤.^^
듣고 보니 정말 맞춤한 책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