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박노해라는 이름이 본명인 줄 알았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지은 필명이라고 한다. 그의 온 삶으로 증명해 낸 이름이라 하겠다.
2월 18일에 본 그의 사진전에서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대부분 흑백사진이었는데 영혼이 들여다보이는, 영혼을 담아온 듯한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 자신의 사진도 청명해 보인다. 이 전시회에 재능기부를 해준 많은 분들이 계셨지만 사진이 유독 마음에 들었던 두분 배우만 찍어왔다. 특이하게도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소리나지 않게 찍으라는 당부가 있었다. 뭐 플래시는 기본으로 잠재워야 했고... 핸드폰의 스피커를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찍었더니 책에 다 나와있다고 해서 주춤했다.
커다란 양장본 책은 정말 훌륭했지만 십만원 이상의 고가라서 나는 반양장본으로 작은 책을 구매했다. 이 책도 훌륭하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버마, 인디아, 티벳의 가난한 사람들을 담아냈다. 가진 것 없지만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땀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든 사진에 녹아 있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해지게 되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이 컷들은 전시장에서 부스를 구분하던 안내판이었다. 책에는 다른 사진이 들어 있다.
벽과 기둥과 집에도 정령들이 살아있어 서로 말을 한다고 믿는 인디아 농민들이 흙집 벽에 정성껏 그린 그림들이다. 모두가 예술가고 모두가 성직자로 보이는 인디아 사람들이다. 시골 마을 집집마다 여신을 상징하는 차나무 '둘씨'가 심어져 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바친다. 하루 일을 마친 여인은 둘씨 앞에 맨발로 서서 한 손에는 불을 들고 한 손으론 종을 흔들며 하루 생에 대한 감사 기도를 바친다. 날마다 하루의 삶을 감사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네 전쟁 같은 일상들이 보다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30년 동안 빈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왔다는 한 남자. 그 주에 천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총칼이 번득이는 카슈미르에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작지만 위대한 일을 끝까지 꾸준히 해나가는 사내의 수고에 고개가 숙여진다.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바닷가에 내내 나무를 심었던 그 청년의 마음과 닮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기적을 포기하며 살았던 게 아닐까.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전에......
만년설산의 가장 높은 오두막 집에서 엄마가 저녁밥을 지으며 노래를 불러준다.
"딸아 사랑은 불 같은 것이란다.
높은 곳으로 타오르는 불 같은 사랑.
그러니 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
아들아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란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강물 같은 사랑.
그러니 네 눈물을 고귀한 곳에 두어라.
히말라야의 흰 눈처럼 언제까지나
네 마음의 빛과 사랑을 잃지 말거라."
대구가 훌륭하게 이어졌다. 낮은 곳에 사랑을 두라는 가르침이 긴 여운을 준다.
이런 노래를 들으며 자란 아이 역시 이런 노래를 들려주는 어버이가 될 테지.
6개월간 일당 1만 원의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모은 돈의 절반을 시주하러 떠난 청년의 오체투지다. 그리 힘겹게 번 돈을 어찌 내놓을까 싶은데 그의 말은 우문현답이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내 영혼을 위해 순례길에 나섰습니다.
돈은 빛나도 내 마음이 어둠이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렇게 심신의 극한으로 오체투지 순례를 하다 보면
나를 괴롭혀온 욕망과 미움의 찌꺼기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 그저 텅 빈 몸과 마음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대한민국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은 이유를 알겠다.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공기도 희박한 티벳의 대지.
경운기와 트랙터가 있지만 동력기계를 쓰면 땅이 굳고 생명력이 죽어가기에
말이 끄는 작은 쟁기질로 대지에 말랑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 지켜야 하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들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끄러워진다.
언덕에서 관광객을 말에 태워 산정 전망대까지 데려다 주는 티베트 여인이 해지는 언덕에서 주저앉아 있다.
종일 숨찬 걸음을 내딛었음에도 손님을 태우지 못한 모양이다.
집에는 가족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말조차도 주인을 위로하는 듯 아련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돌아앉은 등의 침묵이, 깊은 한숨이 사진 너머로도 느껴진다.
전시회 마치고 나오면서 사왔던 엽서 중의 하나다. 많지 않았던 컬러 사진 중 하나다.
작품은 구입 신청을 하면 새로 인화를 해주는데, 여러 사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팔려 있었다. 사진이라 한장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장 인화할 수 있는 게 좋았다. 그 수익금으로 많은 곳에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 있다.
사진을 살 수 있는 돈이 내게는 없었지만 호기심에 가격을 물어보았다.
가장 작은 크기가 1,650,000원이었고,
중간 크기가 4,400,000원
그리고 가장 큰 사진이 7,700,000원이었다.
하하핫, 이런 사진 사갈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 ㅜ.ㅜ
내가 가장 탐냈던 사진은 '내가 살고 싶은 집'이었다.
스티커가 아주 많이 붙어 있었는데 나같이 느낀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인도네시아 토착민인 가요족 전통 모자를 쓴 마르야나(20)는 엄마 아빠를 따라 커피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증조할머니가 심은 이 나무는 백 살이 넘었다고 한다.
커피 체리를 딸 때마다 안개 너머 지금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누군가를 떠올린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커피를 마셔야겠다. 이 커피를 만들기 위해 수고한 누군가의 건강한 노동을...
그러기 위해서 공정거래 커피만을 마셔야...;;;;;
세계 최장기 군부 독재의 총칼 사이로 피어나는 미소의 나라 버마. 그러나 굳게 닫혀있던 아시아의 마지막 빗장이 풀리자, 버마에는 지금 느슨해진 독재권력의 자리에 더 무서운 자본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자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전 세계 어디에서건 확인할 수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가난 속에서도 소득의 십일조를 들여 아침마다 불전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 밥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영혼이 없는 밥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들. 훌륭한 깨달음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디아 여성 농민은 누구나 최고의 건축가라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손수 디자인해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고쳐 나간다고 한다. 어느 한곳에서도 똑같은 집이 없는,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자연을 닮은 집들... 닭장같고 성냥갑같은,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줄지어 늘어선 대한민국의 집과 크게 비교된다.
이미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도시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들의 자연속에 녹아든 삶은 동경하고 경이롭게 바라볼 수는 있어도 따라갈 자신은 없다. 그저 이렇게 조금 엿보는 정도로, 조금이라도 내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전시회를 다녀와서 책을 샀더니 전시회 티켓이 들어 있었다. 한번 더 보아도 충분히 좋을 자리였지만, 아직 보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야곱에게 표를 전했다. 그후 다시 보지 못해서 감상을 듣지 못했다. 다음 번에 다시 만나면 어땠는지, 얼마나 좋았는지, 어떤 사진이 최고였는지 묻고 싶다. 얼마나 통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