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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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책을 즐겁게 보고 있다. 앞서 읽은 책들도 재밌게 읽었는데, 그래도 다시 볼 것 같진 않아서 이 책까지 보고 묶어서 중고로 팔까 생각했다. 헌데 이 책을 보고 나니 더더 좋아져서 그냥 모두 소장하기로 했다. 더불어 지금 장바구니에는 채 구입하지 못한 마스다 미리 책과 이번에 나오는 예약도서 두권도 담겨 있다. 송삼동 표현으로 농약같은 가시네 마스다 미리다. ^^


하야카와는 시골에 집을 얻었다. 동기는 간단했다. 잡지 응모로 하이브리드 차가 생겼는데 도시에서는 주차비가 엄청 들었던 것이다. 마침 그녀의 직업은 번역가여서 출퇴근이 필요 없으므로 숲이 있는 시골 마을로 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깡촌도 아니다. 역에서 아주 가깝다. 산책으로 숲을 갈 수 있고 호수에 카약을 띄우고 놀 수도 있지만 불편한 전원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누구나 예상할 만한 텃밭도 없이 식사는 도시에서 배달시켜 먹을 때가 많다. 친한 친구 둘이 주말이면 자주 놀러오는데, 올 때마다 도시의 명물 간식을 사갖고 온다. 친구들의 짐은 점점 많아지고 각자의 카약과 서랍장도 갖추게 된다. 그야말로 '주말엔 숲으로' 체제가 되어 버렸다.


하야카와가 원래 철학적인 인물이었는지, 혹은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며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대화 중에 그녀가 정리하곤 하는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시간이 아깝잖아.

-하지만~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12쪽


현대인들, 특히 도시민들은 얼마나 바쁘게 살던가. 잠시 잠깐의 시간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뭘 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아니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그렇다. 시간이 남으면 뭐라도 읽어야 하고, 뭐라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침묵 속에서 나를 방치하고 좀 더 비울 생각을 해보지 못한다. 그렇게 달려나간다고 원하는 곳에 빨리 가지도 못한다. 앞만 보고 달릴 게 아니라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아이쿠! 위험했어!!

-세스코~ 헤드라이트는 2~3미터 앞을 비추는 거야.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32쪽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정작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넘어지기 일쑤고, 죽어라 달려온 방향이 잘못 들어선 길일 수도 있다. 좀 더 멀리 내다보자.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오래오래 바라보자.


누가 보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렇지만 기왕 피는 것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마음을 먹지 않던가. 


-이곳에 오면 흙 위를 걷는 게 참 기분 좋은 거구나 느껴.

-도시에 있으면 몇 개월이고 흙을 밟지 않을 때도 있지.

-, 맞아.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도 좋아. 또각또각 하고.

-그 소리, 성인의 소리지.

-성인이란 좋은 거지.

-그렇지. 싫은 것도 많긴 하지. 싫은 일이나 귀찮은 일은 전부 사라지면 좋을 텐데.-100쪽


흙을 밟는 기분은 싱그럽다. 그렇지만 하이힐을 신었을 때는 흙바닥이 불편할 것이다. 그럴 땐 깔끔하게 정리된 아스팔트 위가 더 편할 테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친구가 생각이 났다. 예쁜 하이힐을 신으며 또각또각 걷는, 그렇게 스스로가 여자임을 만끽하는 내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 덕분에 원피스 입는 게 즐거워졌고, 높은 굽의 신발을 신는 불편함도 감수할 만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여자로 태어났는데, 기왕이면 그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혹은 즐기면서 사는 게 더 멋지지 않은가. 그런게 청소년 때는 하기 힘든, 성인이어서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나름의 특권 아니던가.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모르는 게 산더미처럼 많아. 뭔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122쪽


친한 언니가 있다. 언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스물 셋이었고 언니는 스물 여덟이었다. 스물 셋의 나는 스물 여덟의 언니가 굉장한 어른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스물 여덟이 되었을 때, 나는 그다지 어른스럽지 않아 보였다. 그 후 또 한참 나이를 먹은 지금 생각해도 스물 여덟은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스물 셋의 나도, 스물 여덟의 나도 모두 이미 어른은 어른이었다. 내가 그다지 어른스럽지도 않고, 모르는 것도 잔뜩 있는, 그렇게 나이만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른됨의 한 증거일 테지.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거울 속에서 확인하는 것은 다소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보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차곡차곡 쌓인다고 생각하면 나이 먹는 게 나쁘지만도 않다. 좀 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는 별개의 마음으로 말이다.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기꺼이 작은 선행 하나를 베푸는 마음으로의 연결이 곱다. 그러면서도 이 장면을 누군가 보고 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귀여운 생각도 한다. 이런 깨알같은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저런 마음을 먹더라도 그냥 슥 지나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산으로, 숲으로 들어가면 저렇게 열린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까. 구성애 씨의 방송 중에서 그런 대목이 있었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이제 헤어질 사람이니 온갖 미움 애증 다 내려놓고 산을 올랐는데, 그 높은 산 위에서 별의 정기를 가득 받고는 오히려 감정이 풀어져서 다시 잘 살게 되었다고... 모두 그럴 수는 없겠지만, 산의 기운이, 숲의 기운이 그런 힘을, 용기를 줄 것만 같다. 집에서 북한산이 아주 가까운데 좀처럼 가는 일이 없다. 당장 산으로 올라야 할까? 아웃도어부터 장만하고? ㅎㅎ


상상력이 과연 인간에게만 있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상상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상상력 없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길 가다가 봉변을 당한 세스코가 로또 한장을 샀다. 거기에 방금 전 만난 그 나쁜 인간에 대한 저주를 담아 숫자를 기입하다가, 이런 곳에 인간의 좋은 상상력을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여기고 로또를 찢어버린다. 이 부분이 참 예뻤다. 그 좋은 재능을, 머리를, 능력을 엄한 데 쓰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세스코의 마음가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숲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덕분에 다른 친구들도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 서로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 있으면 있다고 선을 그어서 자신의 시간을 지키는 하야카와가 현명하다. 


눈덮인 산 위에서 눈토끼를 만들고 낙엽으로 귀를 장식하는 장면이 나왔다. 작가도 직접 연출해 봤나 보다. 이 귀여운 사진이라니!



눈밭에 벌렁 누워버린 세 친구가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  두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니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이 숲엔 눈이 1미터가 쌓여 있고, 이들은 땅 위에서 1미터 정도는 높은 곳에 있는 거였다. 참새만큼은 아니지만, 이들도 하늘을 날고 있다. 아, 근사해!


동경하게 만들지만 모두가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하야카와의 경우 직업이나 성향이 이런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유홍준 교수님은 도시에서 닷새를 살고 촌에서 이틀을 사는 '오도이촌'을 외치며 실제로 부여에 있는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신다. 두집 살림이 가능한 경제적 뒷받침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의지도 중요한 것 아닌가. 집 바로 뒤에 있는 산도 안 오르면서 숲에서의 생활을 동경하는 건 어불성설! 


-하야카와, 저 새는 뭐야?

-세스코, 저건 참새야.

-, -

-아는 새가 처음 본 새처럼 보이는 건 새의 아름다움이 보였다는 거야, 분명. -151쪽


나태주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상큼한 책이었다. 나의 주말을 풍요롭게 해준 고마운 책에게 이 시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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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3-1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다들 하야카와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했을껄요?
자신이 직접 시골 가서 살수는 없으니 그런 친구가 있어 이렇게 주말엔 숲으로~ 놀러가고 싶은 그런 맘.

오오 요기 밑에 광고창에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있군요.
이게 저희 첫 '순정'만화였어요. ^^

마노아 2014-03-10 22:08   좋아요 0 | URL
하하핫,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 친구가 이집트로 코이카를 다녀온 덕분에 제가 이집트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거든요.
친구한테 아기 다 키워놓으면 코이카 한 번 더 가라고 했어요. 덕분에 여행 가자고요.ㅎㅎㅎ

미스터 블랙이랑 아뉴스데이가 저의 황미나 만화 입문이었던 것 같아요.
순정 첫 입문은 김동화의 아카시아가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추억 돋는 제목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