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고양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7
피터 콜링턴 글.그림, 김기택 옮김 / 마루벌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냐용이는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누군가 자기를 봐 줄 때까지 기다렸다.



주인 아저씨는 회사 늦는다며 비키라고 했고, 주인집 딸과 아들도 모두 바쁘다며 냐옹이를 귀찮아 했다. 

냐용이는 여전히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마침내 밥을 챙겨 주었지만 너 때문에 지각한다며 짜증을 냈다.


그렇게 날마다 기다리기만 하던 냐옹이는 어느 날 더 이상 기다리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선반으로 올라가 통조림을 꺼내서 직접 밥을 챙겨 먹었다. 

식구들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순식간에 귀찮은 골칫거리 고양이에서 '똑똑한 고양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주머니는 냐옹이에게 열쇠를 맡겼다. 똑똑한 냐옹이는 현관문을 직접 열었다.

이튿날 아주머니는 아예 현금카드를 내주었다. 고양이밥 사둔 게 없으니 돈을 찾아서 통조림을 사먹으라는 것이다. 

냐옹이에겐 문제 없었다. 돈을 직접 찾았고 장을 보았다. 산책을 나갔고, 돈을 찾아서 근사한 식사를 주문했다. 

통조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내친 김에 쇼핑도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별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영화도 보러 갔고, 카지노도 가면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퍼펙트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냐옹이는 현금카드를 아무 생각 없이 써버렸고, 그 바람에 주인집 가계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말했던 것이다. 너도 돈을 벌라고! 똑똑한 고양이였으니 돈을 버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단골 식당의 지배인을 찾아가서 일자리를 부탁했고 이내 서빙직을 얻었다. 

냐옹이는 하루종일 일했다. 나르고, 나르고, 나르고... 그렇게 쉴 새 없이 일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제 손으로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일해서 받은 급여는 모두 카드 대금과 집세로 나갔다.

남은 돈은 통조림 한 통 살 수 있는 금액이 전부였다. 

제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노동자가 된 순간, 냐옹이는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일꾼이 되고 만 것이다.



피곤에 지쳐 늦잠을 잔 게 사단이었다. 재고의 여지 없이 일자리를 빼앗긴 냐옹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해고된 냐옹이를 그다지 딱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일을 어서 찾아보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온 냐옹이는 계단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 자는 다른 고양이들을 쳐다보았다. 

지금껏 지나다닐 때마다 일도 하지 않는 한심한 녀석들이라고 혀를 찼던 그 친구들이었다.

똑똑한 냐옹이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후 냐옹이의 기다림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스스로 현관문을 열지도 않고, 아침밥을 챙기지도 않고, 일자리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했다.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답답해 하며 혀를 차고, 또 한심스러워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국, 아주머니는 다시 냐옹이에게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챙겨준 밥을 맛있게 먹고 냐옹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제껏 냐옹이에게 한심스럽다는 시선을 받았던 고양이들은 그제야 냐옹이가 똑똑한 고양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풍자가 기막힌 작품이다. 이 짧은 그림책에서 자본주의와 노동자가 모두 보이고,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도 떠오르고, 진짜 똑똑이와 헛똑똑이가 누구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행동하고 일을 하고... 그러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는 영물이어서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도 든다. 내가 똑똑한 척 해봤는데 그거 피곤하더라고. 진짜 똑똑하게 사는 건 따로 있다니까... 이러면서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상상도 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기적'의 작가 피터 콜링턴 작품이다. 절판되어서 검색해도 잘 나오지도 않는다. 그게 제일 애석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4-02-27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풍자적인 내용이겠지만
어찌됏건 어째 나보다 더 고양이 그림책을 많이 보네요^^

마노아 2014-02-27 19:37   좋아요 1 | URL
고양이의 생태가 실제 고양이와 닮게 그렸는지 나중에 알려줘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