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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최규석 작가의 우화집이다. 아주 직설화법으로 무장한!
뭐든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대표를 뽑을 때는 물론이고,
집이나 음식을 나눌 때도,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할 때도 사람들은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연달아서 이기거나 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규칙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영원히 지기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 사람, 이 규칙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마을의 위험한 일을 맡았다가 손을 다친 후로 주먹을 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동안은 주먹만 내는 것으로도 웬만큼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그가 주먹밖에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그와의 대결에서는 모두가 보자기를 내었습니다.-45쪽
마을의 위험한 일을 하다가 다친 거였는데 마을의 누구도 그의 억울함을 돌보지 않는다. 억울하면 법을 바꾸라고 한다. 근데 그 법을 바꾸려면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야만 한단다.
결국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의 법같지 않은가. 가진 자를 위해서만 굴러가곤 하는 그런 법들 말이다. 오늘 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기업에서 보낸 협상가는 정치가 본질이 아니라 경제가 본질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경제를 주름 잡는 대기업이 하는 일에 너희 먼지 같은 것들은 밟혀 죽어도 끽 소리도 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 회장님은 법을 어기고도 대통령 특사로 친절하게 풀려난다. 영화 속에선 그 장면을 합법적 탈옥이라고 명명했다. 주먹을 펼 수 없는 상대를 향해서 오로지 보자기만 내면서 억울하면 이기라고 말을 하는 이 가혹한 사회. 저 무서운 법을 고집하는 인물의 옷차림이 성직자로 보인다는 것이 더 아찔하다.
검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힌 흰쥐를 향해 멍청하다고 일갈하는 하얀 고양이가 있다. 어차피 잡아 먹힐 바에는 자기처럼 고귀한 자에게 먹혔어야지 족보도 없이 천박한 검은 쥐를 먹는 검은 고양이에게 먹힌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명예롭게 죽기 위해서 흰쥐들은 자체 회의를 거친다. 그 결과 스스로 나서서 흰 고야잉에게 잡아 먹힌다. 흰 고양이가 힘을 내서 검은 고양이를 물리쳐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정작 그들은 몰랐다. 옆집에 진짜 검은 쥐가 있기나 한 건지... 걸핏하면 종북 빨갱이를 내세우며 가상의 적을 무장시켜서 공포를 조장하는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런 자들의 경박한 목소리에 달떠서 스스로 제 목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투표 때만 되면 이런 사람들이 늘어난다. 멀지 않은 지방 선거에서 이런 장면을 다시 목격할 것만 같아 벌써 숨이 막힌다. 옆집에 있다는 검은 쥐, 정말 보기나 한 거니? 흰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면 더 명예로운 것 확실하니?
잿빛 늑대는 숫자적으로 더 적은 흰 염소만 골라서 잡아 먹었다. 처음에는 늑대만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도망치던 검은 염소가 차차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여기며 경계를 게을리 했다. 뿐만 아니라 흰 염소가 여기 있다고 일러 바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흰 염소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다음 사냥감이 된 것은 당연히 그들이었다. 연대해야 할 때 나 몰라라 한다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라는 것... 당신은 늑대가 아니라 염소라는 것... 기억해야 할 것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 편도 인상 깊었다.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개구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민한 개구리처럼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가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152쪽
냄비의 물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데 인내심 강하다고 자부하는 개구리는 이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예민한 개구리 하나만이 이건 그저 고통일 뿐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대해서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을 하면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일축해버릴 때가 많다. 더군다나 각 개인도 그걸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고 비관하며 스스로 낮아진다. 내일을 소망하며 오늘을 포기할 때, 결국 내일도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가?
까마귀들은 자신과 달리 포인트가 있는 깃털을 가진 새들을 동경했다. 그들을 따라하느라고 자신을 내팽개쳤다. 꾀꼬리는 따라할 만했다. 닭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새들을 모사했다. 그러나 공작이 나타났다. 이제 어쩔 것인가.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격이다. 까마귀는 까마귀여서 당당하고 멋진 것이다. 어울리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공작을 꿈꾸지 말자. 공작은 공작 나름의 열등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오늘의 현실을 과감히 꼬집고 비틀어버리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곳에 권력과 자본의 횡포가, 대기업의 폭력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우리가 몸으로 체험한 용산의 참사가, 쌍용자동차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없어져야 할 이야기들이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도 되지 말고, 개돼지도 되지 말고, 내것이 아닌 깃털로 위장한 까마귀도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다. 은유도 아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이고 투시경이고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