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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휴먼어린이 / 2013년 11월
평점 :
샤를리는 키우던 개를 안락사 시켰다. 병이 들었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가 검은 털을 가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갈색이 아닌 개는 모두 없애라는 법을 만든 탓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는 갈색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고양이를 제거하라고 했다. 독이 든 고기를 나눠주는 정부였다. 이유는 이러했다. 고양이가 너무 많이 불어나서 도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갈색 고양이들만 살려두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 가장 알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헐!이다. 갈색 고양이는 새끼도 조금만 낳고 먹이도 많이 먹지 않는다나...
얼마 뒤에는 '거리 일보'가 폐간 되었다. 직원들이 파업을 했다든가 회사가 망하기라도 한 건 아니었다. 이른바 '갈색 개' 사건 때문이었다. 거리 일보가 갈색 개를 제외한 나머지 개를 죽이라고 한 법을 비판했던 것이다. 거리 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정부를 비판한 대가로 거리일보는 폐간되었다. 등골이 서늘하다. 이거 우화 속 이야기 맞아??
이후 필요로 하는 정보는 '갈색 신문'에서 제공하는 것만 봐야 했다. 이 도시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신문은 갈색 신문뿐이고, 그 결과 갈색 신문만 살아남았다. 다른 신문들은 모두 폐간 조치되었다. 하아....
신문만 손을 봤겠는가. 도서관에서는 책이 검열되었다. 출판사들은 줄소송에 휘말렸고, '갈색'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폐출되었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모든 말에 '갈색'이란 단어를 붙였다. "갈색 커피 한 잔 주세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고 불안에 떨었다. 갈색 개는 자신이 갈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주 기고만장해졌다.
갈색 개가 아닌 개를 키우다가 어른들에 의해서 개가 죽임 당하자 한 소년은 거리에서 슬피 울었다.
어른들은 소년의 슬픔에 동조하지 않은 채 갈색 강아지를 키우면 편하다고 충고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갈색으로 덮였는데 갈색 법의 무시무시한 횡포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예전에 갈색이 아닌 개를, 고양이를 키웠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갔다. 너 좌익이었지! 너 빨갱이였지! 이런 문장으로 바꿔 들린다. 동물 뿐이던가. 바로 그 갈색이 아닌 동물을 키웠던 가족을 둔 죄로, 이웃을 두었다는 죄로 너도나도 잡혀가는 세상이 와버렸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보수(라고 쓰고 수구꼴통이라고 읽는!)로 변신하고 나면 더 극성 맞게 진보 쪽을 탄압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갈색 아닌 것은 오늘날 '종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람들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고 여겼을 때 행동해야 했었다. 의심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순응한 대가는 이렇게 공포정치로 돌아왔다.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여러 나라로 번역된 이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우리나라에 상륙한 듯 보인다. 갈색 아침....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어제는 신촌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강북 삼성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조카가 장염으로 입원한 탓이다. 버스가 서대문을 지날 때 벨을 눌렀는데 기사님이 버럭 성을 냈다. 어디서 내리려고 벨을 누르냐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강북삼성병원에 간다고 하니 거기 안 서는데 왜 일어났냐고 또 화를 낸다. 왜 나한테 화를 내냐고 맞받아치려다가 잠시 참았다. 그러면 어디서 서냐고 하니 종로 6가나 가야 세워준다고 한다. 지금 데모 중이어서 길을 통제하고 있다고...
울컥! 했지만 일단 기사님을 달래서 서대문 역에서 내렸다. 거리엔 전경들이 가득했다. 병원까지 걸어갔다가 조카랑 잠시 놀아주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여전히 전경들 차지였고, 닭장차로도 모자라서 관광버스를 대거 동원해서 길을 다 막아놨다. 시간도 늦었고 몹시 추웠던 터라 집으로 바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 전경들을 보고 있자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시청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도 다 막아놔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걷는 내내 두려웠다. 혹시 중간에 막으면 뭐라고 하지? 이쪽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났다. 왜 이 나라의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시민을 발목을 잡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훼방 놓지?
시린 귀를 부여잡고 부지런히 걸음을 놀려 시청 광장에 도착했는데, 애석하게도 이미 집회가 끝난 뒤였나 보다. 8시 30분... 스케이트 장 주변에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여기서 떠밀리면 다음엔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끔찍하다. 처음엔 고양이, 그 다음엔 강아지, 그리고 신문과 출판사 도서관.... 우린 이중 몇 번째 순서에 닿아 있는 것일까. 짧은 우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서늘하고 무겁다. 온통 갈색인 세상에서 눈을 뜨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