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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봄 - 숭례문 600년 이야기
이현숙 지음, 유기훈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3년 1월
평점 :
조선에 이어 대한민국까지 600년을 이어온 숭례문의 이야기다. 숭례문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600년의 삶을 이야기 했고, 그것을 아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숭례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데, 그 각각의 이야기를 사계절에 맞추었다.
파루, 새벽 4시다. 종루에서 시작된 종소리가 서른 세 번 울리고, 꽁꽁 닫혀 있던 남대문이 열리면 통행금지가 해제된다.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이 문을 통과한다.
사대문과 사소문을 표현한 그림이 정겹다.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자그마했던 서울의 옛 모습도 그려보게 된다. 서울을 둘러싼 네방위의 산 이야기도 같이 해주면 좋겠다. 유난히 지대가 낮아서 한글자를 더 보태어 '흥인지문'이 된 동대문 이야기도 덧붙이면 또 좋겠다.
지붕 위 잡상 친구들을 소개해 주자.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와 사오정이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이 작품에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이들 잡상 친구들의 추임새가 양념처럼 끼어드는데, 각각의 캐릭터를 잘 살려서 필요한 말들을 해주고 있다.
지금이야 광화문 앞 세종로 주변에 큰 건물들이 많아서 남대문이 보이지도 않지만, 그 옛날에 높은 건물 없던 시절에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다 보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주작대로의 느낌으로! 여유가 있다면 피맛골과 같은 짜투리 이야기도 더 보태주면 좋겠다.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지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밀렸던 적도 있고, 국난도 몇 차례 겪었다. 한마디로 한양의, 조선의 희노애락을 모두 지켜본 남대문 되겠다.
거드름 잔뜩 피우며 남대문을 통과했을 사신행렬들. 잡상 친구들은 구경거리가 많아서 신났겠지만, 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사람들은 무지 힘들었을 것이다.
남대문의 개축 공사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었다. 세종임금님, 성종임금님...
비가 오지 않아서 모두가 고생하던 시절에 남대문을 닫고 시장을 옮겨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는 작가님이 실록에서 남대문으로 검색을 해본 다음에 발췌한 게 아닐까, 혼자 짐작해 보았다. 하핫^^
과거 급제자들이 벌이는 시가행진 삼일유가. 임금이 내려준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하얀 말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누빈다. 광대들이 재주 넘고, 악공들은 풍악을 울린다. 동네방네 사람들 몰려와서 구경을 하고, 남대문의 지붕 위 잡상들도 구경에 여념이 없다. 과거 급제를 이야기하면서 슬쩍 사림 이야기를 내비친다. 그렇게 성종 시절까지 진행된 것이다.
남대문 앞에 있었다던 연못 그림도 예쁘다. 이런 풍경을 날마다 보았다면 남대문은 하루도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 편에서 등장한 용 그림이 무시무시해 보인다. 나름 민심을 반영한 그림?
하지만 아무렴 전쟁 때의 민심 같을까?
어느새 시간은 조선이 세워지고 200년 뒤로 흘렀다. 임진왜란이 난 것이다. 도성이 불타고 궁이 불타고, 백성들이 피흘리는 온갖 모습들을 남대문은 그 자리에 서서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마음이 많이 아팠을 테지...
전쟁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묘호란도 모자라 병자호란까지...
한겨울에 길게 이어진 피난길이 차갑고 서럽기만 하다.
조선백성들, 임금 복도 참 없지...
다시 시간이 흘렀다. 전쟁의 상처도 아물고 남대문 앞 시전은 활기를 되찾았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시전 상인들은 선금으로 물품을 사오니 얼마나 신이 나는 거래였을까.
영조 임금은 자주 시전 상인들을 만나는 자리를 갖곤 하셨다. 그때 올랐던 곳이 남대문의 문루. 남대문은 백성을 바라보는 임금님과, 임금을 바라보는 백성의 모습을 모두 목격했을 것이다. 임금님의 잦은 눈물까지도...
화성으로 곧잘 행차하곤 했던 정조 임금님, 그럴 때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이 벌어지곤 했다. 이 요란하고도 놀라운,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모두 지켜보았을 남대문! 배다리 구경은 나도 해보고 싶구나...
엄마 손 잡고서 장구경 하다가 엄마를 놓쳐버린 어린 아이 하나. 남대문 칠패 시장에서 벌어진 놀이패의 재주넘기를 넋을 잃고 본다. 엄마 찾을 생각도 안 하고 저래도 괜찮나 싶었는데, 다행히 아이가 사라진 걸 알아차린 엄마가 남대문 앞으로 온다. 혹여 놓치기라도 하면 이 앞에서 만나자고 미리 약속해 두었나 보다. 그 시절이라면 무엇보다도 더 찾기 쉬운 이정표가 되어주었을 테지. 남대문은 이런 상징으로도 꽤 중요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구나. 우리 역사 속에서...
시간은 어느덧 고종 시절까지 흘러왔다. 고종 임금님과 흥선대원군. 서로 등동린 부자의 모습에서 골 깊은 애증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일본의 침략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남대문의 '겨울' 시절이다.
전차가 깔렸고, 그 전차에 아이가 깔려 죽었다. 남대문에서는 백성을 향한 대포가 설치되었고, 성벽이 허물어지기까지 했다. 일제의 만행이다. 뿐인가. 학생들이 끌려가고 소녀들이 정신대로, 위안부로 끌려갔다. 비참하고 끔찍한 역사의 흔적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 해방을 맞았고, 새 나라가 들어섰다.
전쟁이 있었지만 다시 회복의 시간이 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2008년 2월 10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대문은 까맣게 타서 재가 되어버렸다.
온 국민의 마음도 까맣게 타버렸다.
늘 말없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지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존재였다.
전 국민의 관심 가운데 남대문은 다시 세워졌다.
남대문의 진정한 봄이 온 것일까?
최근의 소식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좀 멀어 보인다.
한번 크게 사단이 났던 걸 생각하면 복원은 좀 더 세심하게, 신중하게 단계단계를 밟아야 할 터인데 그 놈의 조바심이 문제다. 공기를 단축시키고 무리를 한 터라 여기저기서 균열이 보인다. 제발, 한번에 제대로 하자. 사고는 그만 치고....;;;;;
남대문을 화자로 빌려서 사실은 조선의 역사, 그리고 오늘에 이른 우리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600년을 이어온 도읍 한양, 서울의 이야기 말이다.
조선의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이 읽는다면 재밌게 볼 수 있겠다. 아직 조선사를 전혀 모른다면 다소 지루할 수 있겠다. 사전 공부가 좀 필요하다.
그림이 아주 훌륭하다. 엽서 받고 싶었는데, 구입할 때 같이 받았다. 수채화가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기왕에 책을 보았다면 직접 남대문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너무 멀지만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