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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평점 :
1권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파리와 노트르담 성당, 고딕양식과 건축, 철학... 이런 분야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아주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 지루함에 거름을 준 것은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번역 때문이었다. 사실 훨씬 재밌게 읽은 2권에서도 별을 다섯 개 줄까 말까 잠시 망설였던 것은 번역 때문이다. 지나치게 옛날 말, 지금은 쓰지 않는, 국어사전 찾아봐야 되는 말들이 등장하는 것은 둘째 치고, 문장도 무척 어색하게 들린다. 입말도 아니요, 문어체도 아니요, 이 어정쩡한 조합들에 민음사 책을 고른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2권은 무척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보다 인물 중심이고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어서 그런가 보다.
1권에서 군인 페뷔스와 사랑에 빠진 이집트 아가씨 에스메랄다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 프롤로 신부가 저지른 살인 미수의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졌다. 잔혹한 고문에 바로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한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페뷔스는 약혼녀에게로 돌아간다. 약혼녀의 집에서, 식도 올리기 전에 그녀의 육체를 먼저 탐하려던 이 젊은 군인은 광장에서 벌어지려고 하는 에스메랄다의 처형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 몹쓸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외도가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을 뿐이다. 죽을 뻔한 에스메랄다를 구한 것은 노트르담의 종지기, 꼽추 콰지모도였다. 그가 여자를 처형장에서 구출해 내는 장면은 좀 설득력이 없었지만, 아무튼 그는 에스메랄다에게는 구원의 존재였다. 그녀는 그 고마움을 그다지 알지 못한 것 같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프롤로였다. 이 똑똑한 신부는 이제까지 종교와 학문과 명예의 전당에서만 살았다. 그가 살아온 세상을 한순간에 버리게 한 것은 에스메랄다,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한순간의 욕망의 화신으로 돌변한 이 부주교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를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서 그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래놓고는 그녀에게 목숨을 구해줄 테니 자신의 여자가 되라고까지 한다. 이 놀랍도록 뻔뻔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심지어 그는 콰지모도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자신의 양아들을 질투한다. 외모상으로 흠없는 페뷔스에 비하면 귀머거리에 애꾸눈에 절름발이에 꼽추이기까지 한 콰지모도는 연적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또 그의 오만함과 교만함에 비추어 보아 그가 기분 나빠했음은 물론이다.
콰지모도에게만 그랬던 건 아니다. 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에게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거지패들에 의해서 에스메랄다의 남편이 되어버린 그랭구아르에게는 그의 가난함을 들어서 찍어누르려고 했던 프롤로. 그러나 그랭구아르는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다고 했다. 그 당당함이 프롤로를 더 역정나게 했을 것이다.
이 뻔뻔한 사내는 그랭구아루에게 여장을 한 채로 에스메랄다 대신 죽으라고 한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자 어쩌면 이렇게 배은망덕하냐고 욕을 하기까지 한다. 하하핫, 이 양반 정신분열증이 심하군!
"그 여자가 없었더라면 자네가 지금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자네는 그 여자가 죽기를 바라나, 자네게 살아 있는 건 그 여자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여자가, 그 아름답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 여자가, 이 세상의 광명에 필요한 그 여자가, 하느님보다도 더 거룩한 그 여자가 말이다! 그러는 반면 자네는, 반은 현명하고 반은 미치광이 같은 자네는, 어떤 것이 되다 만 자네는, 스스로 걷고 있는 줄 알고 생각하고 있는 줄 아는 초목 같은 존재인 자네는, 그 여자한테서 훔친, 대낮의 촛불같이 무용한 목숨을 가지고 계속 살고 말이다!" -298쪽
신부의 위치에서 하느님보다 더 거룩한 존재라고 떠받든 에스메랄다에게 프롤로는 어떻게 했는가. 내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이렇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성직자였다. 임금은 또 어떻던가? 어리석은 군주는 신하의 혓바닥 위에서 놀아났고, 신하는 군중들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한다. 에스메랄다의 친모는 어떠했던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잃어버린 아이가 그녀인줄도 모르고, 그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잡아두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 얄궂고도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라니!
에스메랄다는 아름다웠고, 착했지만 현명하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찾아온 단 한번의 구원의 기회를 망나니라는 이름도 아까운 페뷔스의 이름을 부르다가 날려버렸다. 안타까운 여심이여!
작품의 마무리가 여운이 있었다. 콰지모도가 죽음으로써 완성한 사랑이, 그 흔적이 애잔했다.
얼마 전에 과천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 광고를 보았다. 콰지모도가 프롤로의 명을 받고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한 원작의 내용을, 납치 당할 뻔한 에스메랄다를 콰지모도가 구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흠, 이건 아니잖아. 내용을 축약해도 이렇게 왜곡하는 것은 곤란하지!
1권을 워낙 건성으로 읽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책으로 다시 읽지는 못하겠다. 혹여 시간이 더 흘러서 다시 이 작품을 찾는다면 그때는 다른 사람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음반 예약 판매 소식을 들었는데 금세 품절로 바뀌었다. 다시 풀렸는지 확인하고 주문해야겠다. 문학과 음악이 만나면 이렇게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반갑다 노트르담, 반갑다 콰지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