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최후의 1인, 아니 최후의 1충(蟲)이 문제다! 보이는 녀석들은 에어로졸 살충제를 뿌려 추락시키고, 간혹 후미진 곳에 숨어 있다가 용감히 진격하는 녀석들은 잔인하게 전기모기채로 찌직찌직 화형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하게 살아남은 모기 한 마리가 새벽 2시 태연의 행복한 꿈나라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단잠을 방해하는 모기를 잡겠다고 잠결에 자신의 얼굴과 팔뚝에 무한 주먹질을 해댄 탓에, 태연의 얼굴은 KO패 당한 격투기 선수처럼 팅팅 부어올랐다. 결국 견디지 못한 태연, 거대한 고함과 함께 벌떡 일어난다. 고함 소리에 잠에서 깬 아빠,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태연 방으로 급히 뛰어간다.
“악!!!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그래 이판사판, 너 죽고 나 죽자.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아니, 태연아! 대체 얼굴이 이게 뭐냐. 왜 이리 자해를 한 것이야~. 넌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이야. 그렇게 자해할 이유가 하등 없어요.”
“아빠, 오늘 제가 이 녀석을 잡지 못하면 아빠 딸이 아니라 모기 딸이 되겠어요!”
태연, 빛의 속도로 창문을 닫고 전기 코드마다 6개의 전자모기향을 꽂는 동시에, 모기향 15개에 불을 붙인 다음, 에어로졸 살충제 한 통을 모두 뿌린다. 화생방 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태연의 방.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태연의 표정만은 세계를 정복한 듯한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켁켁~. 태연아, 넌 왜 그리 극단적인 것이냐. 그러다 모기 잡기 전에 귀한 내 딸부터 잡겠다. 살충제에는 적은양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너처럼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사용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단다.”
“예에?? 살충제가 모기만 잡는 게 아니었어요?”
“가정용 살충제는 대부분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란다. 벌레를 없앤다는 이름의 제충국(除蟲菊)이라는 꽃에서 나오는 피레트린(pyrethrin) 성분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인데,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 성분을 분해 할 수 있는 효소가 있어 크게 해롭지는 않아요. 하지만 피레스로이드 가운데서도 퍼메트린 같은 성분은 신경 세포막의 나트륨 투과성을 높여 신경을 과도하게 흥분시킨단다. 그래서 퍼메트린에 사람의 중추신경계가 과다 노출되면 팔다리가 저리거나 호흡기 장애, 현기증을 느낄 수 있지. 퍼메트린은 발암물질과 내분비계장애추정물질로 분류돼 EU나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독물질로 지정돼 있어.”
“그런데, 발암물질이며 내분비계장애추정물질인 동시에 유독물질인 그런 성분이 사람이 사용하는 살충제에 들어있단 말씀이세욧!?”
“설마 그걸 그냥 쓰라고 하겠냐. 0.25% 이하의 농도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그 이상을 사용한 살충제들은 모두 회수 조치했단다. 또 재채기나 비염, 천식, 구토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알레트린이라는 성분은 0.5% 이하로만 쓸 수 있게 제한했어요. 이것 역시 기준치를 넘긴 제품은 모두 회수 조치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이트에 들어가면 회수 조치된 제품들이 어떤 건지 나와 있단다.”
“에이, 그럼 상관없잖아요. 나라에서 다 인체에 해롭지 않을 만큼만 쓰라고 했겠죠.”
“적당량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면 물론 해가 없겠지. 그렇지만 태연아, 지금 너의 방을 살짝 열어 보렴. 자욱하고 매캐한 저 연기가 과연 적당량으로 보이냐?! 살충제에는 퍼메트린과 알레트린 말고도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실내공기질 권고기준 보다 수십 배가 더 들어있어요. 문을 꽁꽁 걸어 닫고 저렇게 온갖 살충제들을 가득 채워놓으면 그걸 네가 다 마셔야된다는 건데, 그러다간 모기잡기 전에 널 먼저 잡을 수도 있다고!”
“흑, 알겠어요. 그럼 살충제는 어떻게 써야 하는데요? 모기는 잡아야 할 것 아녜요….”
“가장 중요한 건 밀폐된 공간에서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야. 특히 전자모기향은 냄새도 강하지 않고 연기도 안 나니까 문을 닫고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단다. 전자모기향에도 앞서 말한 살충제 성분이 들어있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꼭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사용해야만 해. 또 에어로졸 제품은 사람을 향해 직접 뿌려선 안 되고, 분무된 살충제를 흡입해서도 절대 안 돼. 특히 음식이나 식기, 아이들이 입에 넣고 빨 수 있는 장난감에 닿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단다.”
“와~ 정말 조심해야 할 게 많네요. 상당히 귀찮기는 하지만 모기도 쫓고 몸에도 해롭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죠 뭐. 그런데 그건 모기에 물리기 전 일이고, 지금의 저처럼 모기 한 마리 때문에 폭풍 간지러움을 겪게 돼 버린 사람은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야 하나요? 아무래도 손톱으로 십자가를 내는 게 최고겠죠? 이렇게 침부터 바른 다음에….”
“안 돼! 십자가를 냈다간 그 고운 얼굴에 심각한 흉터를 만들 수도 있단 말이야! 너의 손톱에는 단언컨대 언제나 수 억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단다. 또 침에도 1㎖ 당 1억 마리 이상의 세균이 있지. 그런데 침을 바르고 손톱으로 십자가 상처까지 내면 어떻게 되겠냐. 피부 속으로 세균이 들어가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고, 간지러움도 오히려 더 심해진다고! 모기에 물렸을 때 가려운 건 모기가 피를 빨아먹을 때 내뱉는 침 때문이야. 그러니까 모기에 물리면 그 부위를 빨리 깨끗이 씻어서 모기 침을 최대한 줄이고 얼음찜질을 해서 가려움증을 줄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그러니까 빨리 샤워를….”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지식이 풍부하시지만, 딱 하나 모르시는 게 있네요. 아버지 딸은 단언컨대! 이 밤에 샤워를 하느니 그냥 모기에게 장렬히 몸을 바치고 말 아이랍니다. 샤워를 하느니 얼굴에 십자가 백 개를 찍을 아이지요. 단언컨대 아버지의 딸은 세상에서 가장 씻는 걸 싫어하는 아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시는 거예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