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권이다. 20부작 마지막의 제목은 '망국'이다. 오백년 왕조가 저무는 모습을 지금껏처럼 최대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이미 '실록'이라고 부를 만한 재료가 없어진 상태이므로 다른 자료들을 참고해야 했다. 여전히 성실하게 기술했지만 19권과 마찬가지로, 아니 19권보다 더 '요약'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럼으로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재미가 덜하진 않다. 물론, '유머'는 다소 잦아들었다. 웃어가며 읽을 내용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깨알 같은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폭풍흡입'하는 장면이다. 소화불량 걸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 그리고 백성에게서 걷은 온갖 세금들이 중앙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새는 장면을 그려냈다. 쪼옥쪼옥쪽옥!!! 귓가에 쪽쪽거리는 소리가 울릴 것 같다. 명성황후 시해 주도세력들의 면면을 살피는 장면에서 저 노래가락을 들어보시라. '독도는 우리땅' 곡조에 저 가사를 맞춰부르면 딱 맞겠다. 어이쿠, 끔찍한 가사다. 그리고 마지막에 원조 '일진회'를 바라보는 학교 일진들의 모습이다. 찌질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_-;;;


19편에서 갑신정변으로 끝났으니, 그 다음 대목부터 20권이 시작한다. 삼일천하로 끝난 개혁세력의 쿠데타는 조선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가까이 있는 주변국뿐 아니라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나라들까지 호시탐탐 저울질을 해가며 간을 보았다. 심지어 영국은 거문도에 불법 정박해서 무려 2년이나 버티는 안하무인을 보여주었다. 그나마다 청나라의 중재로 물러가는 사태가...ㅜ.ㅜ 나라꼴이 정말 한심하게 돌아가고 있다. 



러시하의 남하 기미에 영국이 발끈하는 것에서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의 활용가치에 주목했다.(인아거일!) 그리고 왕과 왕비의 이런 행보에 청 측이 발끈했다. 임오군란 때 납치한 대원군을 귀국시킨 것은 바로 그 '경고'일 것이다. 연금상태로 보낸 수년의 시간 동안 대원군은 그 원망을 누구에게로 향했을까? 필시 며느리에 대한 분노가 컸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그 분노를 좀 더 생산적으로 돌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이후 갑오개혁 때와 을미사변에 이르기까지 대원군이 보여준 족적은 무척 실망스럽다. 과거 카리스마로 이루었던 개혁의 성과마저 희석시킬 만큼. 둘 모두 빼어난 지략과 정치감각을 지닌 영걸들이었건만, 그 에너지를 서로를 할퀴고 깎아내리는데 소모적으로 써버렸다. 나라가 풍전등화였건만...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갑신정변으로부터 갑오개혁까지는 꼬박 10년의 간극이 있다. 그 기간동안 애초에 개화에 관심 많던 왕과 왕비는 이것저것 다채로운 시도들을 많이 하였다. 외국어 교육을 담당할 육영공원이 세워졌고, 기독교 포교도 허용되었으며 외국 선교사들이 세운 사립학교도 곳곳에 세워졌다. 근대식 병원 제중원도 들어섰고, 전신이 가설되어 빠른 통신이 가능해졌다. 경복궁에는 처음으로 전깃불이 들어왔으며 곳곳에 양옥집도 늘어났다. 이렇듯 겉으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황금같은 10년의 시간 동안 조선은 크게 변신하지 못했다. 개혁 주체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화에 맛들인 왕과 왕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왕실의 유지였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고종이 죽을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조선이 곧 자신이었고, 제국 역시 곧 황제였다. 조선을 지킨다는 건 자신의 왕권을 지킨다는 거였고, 그러니 왕권을 위협한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배척되어야 했다. 개혁 주도세력의 마음이 이럴진대 온전한 개화가, 개혁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물론, 조선은 근대화를 목표로 했던 나라가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근대화에 다가가는 기미는 보였지만 그게 목표가 아니었으니 그걸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흉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두질 않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며 마수를 뻗치는데 좁은 우물에 갇혀서 왕권 타령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갑신정변의 실패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보여주는 한계를 실감했다. 그러니 십년 뒤 동학농민혁명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주체적으로, 민중과 함께 하는 혁명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종은 자국 백성을 제압하기 위해서 외국 군대를 끌어들였다. 전근대적 사고를 가진 인물의 한계성을 아무리 염두에 두더라도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이다. 


조선의 국운이 기우는 과정 속에서 양반 사대부들은 꾸준히 나라의 독립과 자주성을 위해 싸웠다. 그 공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신분제 사회 속에서 절대적 '갑'의 위치를 휘두른 것은 사실이지만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이미 망한 나라를 되살리려고 재산도 목숨도 내던지며 싸워온 공도 큰 게 사실이다. 기왕에 전근대성도 좀 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농학 농민국은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그들이 의병전쟁에 제대로 합류해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면 일본과의 싸움은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반들은 천한 잡것들을 자신들의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다. 어이 없는 역량 분산이었다. 


개인적으로 명성황후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종과 함께 먹어야 마땅한 욕을 그녀가 독박쓰듯이 과하게 욕먹는 것도 인정하지만, 안 먹을 욕을 먹는 것도 아니다. 세조가 꽤 정치를 잘 하고도 안하무인 공신세력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본인의 면죄부를 스스로 구겨버린 것처럼 명성황후 역시 민씨 척족의 전횡으로 백성의 고혈을 짜냈다. 집안 단속 못하고 그 장단에 춤을 춘 죄는 충분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조선 백성의 몫이었지 일본의 야만적인 테러로 갚을 게 아니었다. 조선의 처지만큼 비참한 왕비의 죽음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공식적인 사과 한자락이라도 받아본 일이 있던가? 


제 나라의 궁궐 안에까지 쳐들어와 왕비를 시해하는 놈들에게 둘러싸인 고종의 공포가 충분히 그려진다. 오죽하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을 갔을까. 박수를 치긴 어렵지만 인간적인 동정은 일어난다. 일년 만에 환궁한 고종은 새로운 조선을 표방했다. 이른바 대한제국, 황제의 나라를 만든 것이다. 황제의 나라는 점점 번쩍거리게 되었고 그만큼 필요한 자금도 많았다.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다 매뉴얼이 있다. 그동안 매관매직을 비롯한 각종 불법으로 내탕금 쌓아두던 전력이 있지 않은가. 바로 이 과정에 적극 투입된 인물이 이용익이다. 



당장 주머니에 현금은 만들었지만 모두가 대한제국의 미래에 먹구름을 뿌리는 조치들이었다. 저런 걸 허용하는 황제나, 그걸 부추기는 신하나 오십보 백보다.



황제는 3만의 상비군을 만드느라 국가 재정의 40%를 소비했다. 그러나 이 정도 숫자는 국가 안보는 택도 없고 정권 안보를 위한 군대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일본은 육군만 120만이었다. 하아...;;;;


현실적 힘의 불균형을 인정한 고종은 중립화 국가론에 관심을 쏟았다. 이 시기 열강들로 하여금 온갖 이권들을 넘긴 것은 그렇게 해서 중립화를 이루려는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씁쓸하다. 줄 것 다 내주고 그 다음은 어찌하려고? 조선에 무한대의 금과 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 다 빼먹은 뒤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아느냐는 것이다. 고종은 이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제국주의 국가들의 본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애석하고 답답한 일이다. 



이후 러일전쟁, 을사조약,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정미 7조약 그리고 한일 강제 병합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쭈우욱 보아온 일련의 사건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사건의 요약에 집중해서 이전 편들에 비해서 저자의 빼어난 통찰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교과서 수준의 요약으로 그친 것은 절대 아닌다. 시간 순서야 맞아 떨어지지만 보다 인과 관계가 뚜렷해서 이해를 크게 돕는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지친 수험생들은 조조록 20권으로 수능을 대비해도 좋겠다. 흐름을 쫘아악 파악하고 그 다음에 교과서로 돌아간다면 이 시기를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나라 팔아먹는 놈들을 반복해서 보니 울화는 좀 치미겠지만.



우유부단의 아이콘 고종이 모처럼 단호한 모습을 보인 것은 강제 퇴위 때였다. 황제 자리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 일본의 의도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왕권과 황제권을 지키기 위해서 그동안 보여왔던 행보를 생각한다면 이때만 단호한 고종에게 고운 말은 나오지 않는다. 진작 좀 제발, 부디, 꼭 필요한 때에 그렇게 결단력과 행동력을 보였어야죠!!!


임진왜란 때도 그랬지만, 이 시기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이런 조상을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으로 거사를 앞두고 귀가한 일은 참...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조선이여, 조선이여...ㅜ.ㅜ


안중근 의사는 꼭 현장 사진을 갖다 놓은 것 같은 생생함을 안겨주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간지난다!라고 속으로 말해버렸다. 아, 이럴 때에 튀어나온 말이 간지라니...ㅜ.ㅜ 의사님께 면목 없습니다.



백발백중의 실력을 자랑했던 그는 이토에게 세 방을 먹이고, 혹시 그가 이토가 아닐까 주변에 있던 사람도 같이 저격했다. 저 중에 한 인물은 훗날 안중근에게 매료되어 자신에게 총알을 먹인 상대를 존경하기까지 했다.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뮤지컬 '영웅' 속 재판 받는 안 의사님!)


이토 히로부미는 죽었지만, 제2의 이토는 많았다. 조선은 끝내 일본에게 먹혔다. 500년을 넘게 이어온 왕조가 그렇게 스러져 갔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다. 쓰러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제 한몸은 물론 가족 모두를 희생하며 애써온 애국지사들이 넘쳐났다. 그후 35년 동안 쭈욱!



그렇게 힘써준 그 분들 중에는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해방된 조국을 만났으나 오히려 그곳에서 더 핍박받고 암살당한 인물들도 있다. 뿐인가. 친일파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조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여전히 이어지는 가난과 모욕의 시간을 견디는 분들도 있다. 자랑스러운 조상님들 앞에 부끄러운 현실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또 다시 이런 국난이 닥친다면 그때 그분들처럼 온몸을 사르며 독립운동을 할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럴 가치는 있는지도 묻게 된다. 씁쓸하고 고약한 오늘날이다. 


20권 시리즈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작가님처럼 독자도 역시 가슴이 벅차다. 이 시리즈를 십여 년간 지켜봐 오면서 많이 감동받고, 많이 웃었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 작가님께도 독자로서 빚을 진 셈이다. 



원래도 좋아하는 역사지만 이 책으로 더 좋아졌다. 그리고 더 가까워졌다. 이토록 생생하게, 이토록 설득력 있게!

조선의 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맨 왼쪽부터 재위 순서대로 서 있다. 누가 제일 잘 생겼나~~~


정식 출간본이 나오기 전에 '스토리북'을 먼저 받았다. 이렇게 생겼다. 


똑같은 책인데 고종 그림만 빠졌다. 내부에 목차나 부록 등등이 빠져서 쪽수도 조금 부족하다. 



그림의 차이를 보시라. 색을 입힌 것과 입히지 않은 차이는 무척 크다. 게다가 기본 골격만 입힌 스토리 북에는 지도나 사진 등도 빠져 있어서 저 상태로는 확실히 완성에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렇지만 독서는 정간본으로~


예약도서로 구매했는데 배송 지연으로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오래 기다린 만큼 더 꼭꼭 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쓰고 독했지만 영양가 있었다. 몸에 좋은 약이다. 


이 시리즈가 끝나갈 때마다 이 작품 이후의 박시백 화백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지금껏 실록 공부하면서 쌓아둔 역량이 아쉬워서 이 기세를 좀 더 몰아 역사책 좀 더 써주셨으면 좋겠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나, 해방 이후 정치사라든가... 관련 책은 많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만화 교양 서적은 드물었다. 긴 시간 고생하신 작가님께 휴식은 필수지만, 충전이 된 다음에는 꼭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다. 


조조록은 진정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생산시킨 기본 시작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상님들의 놀라운 기록 정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한 축이 바로 이 대단한 역사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현 시대의 역사기록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하아... 역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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