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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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나라는 선진국이 되면서 자국의 통화가 강해졌다. 전후 일본의 복구 과정과 엔화 가치의 끝없는 상승 국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외국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화 시절 독일이 그랬고, 프랑화 시절 프랑스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프랑이 그렇다.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자국 화폐가 그에 반비례해서 약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중앙은행, 그곳은 바로 자국의 돈을 지키는 곳이 아닌가! 어떻게 그곳에서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그것도 경기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오래된 사기극을 새로운 정부에서, 시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할 수 있는가?
-22쪽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권력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 강한 사람들의 큰돈이 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55쪽

그는 지금 청와대에서 왕따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레토릭 즉, 수사 가득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필요까지 있나 하고 스스로 반문할 만큼 그들의 말은 너무 어렵고 권위적이었다. 수치가 어렵고, 수치에 대한 해석이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말 자체를 일반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장벽을 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에게도 그럴 필요가 있는가?
-73쪽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대통령을 위해 급전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이제 IMF와 같이 정부가 급하면 돈을 가져다 쓰라고 만들어놓은 공식적인 기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파산을 공식화하는 선언이었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모든 돈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국가부도의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모두가 고생을 하는 것 같지만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IMF 경제위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통칭해서 강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그 위기 한가운데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왜곡이나 과장 없이, 정말로 그래TEk. 새로운 정권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은근히 IMF 같은 경제위기가 한 번 더 와서, 정치적 문제도 풀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았다.
-116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프리카를 만난 사람들은 원시림 등 정글이 울창한 지형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숲이 무성한 정글은 국가가 보호하는 자연공원뿐이다. 아프리카는 거의 사막에 가깝고 가끔 키가 작은 관목들이 서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바오밥나무는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런 관목지대 특히 사막화로 점점 더 관목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수종 중 우점종인 나무는 바로 아카시아이다. 아카시아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프리카의 건기에도 능히 버틸 수 있는 나무이다. 인류는 바로 그 바오밥과 아카시아가 있는 곳에서 첫 출발을 하였다.
-147쪽

그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유럽 평원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만주 벌판이다. 이곳 역시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만큼 황량한 지역이다. 이곳에 버티고 있는 또 다른 대형 수종이 바로 버드나무이다.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살 수 있고, 줄기만 꽂아도 번식할 수 있는 버드나무는 만주에서 한반도 남쪽은 물론 심지어 일본 본토까지. 이 드넓은 땅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평양의 옛 이름 ‘류경柳京’은 바로 버드나무들의 서울, 버드나무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북한이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류경호텔도 버드나무에서 온 이름이다.
-148쪽

버드나무. 그것은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이다. 박정희는 특히 버드나무를 싫어했다. 그는 이 나무를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흔히 보던 가난의 상징으로 여겼다. 박정희는 버드나무 대신에 아프리카에서 아카시아를 들여왔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결국 아카시아의 나라가 되었다. 한강에 있던 버드나무들은 더 이상 서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반면 대동강 강변과 그 상류인 보통강에는 여전히 버드나무가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북한 천연기념물 2호인 옥류능수버들은, 평양냉면 전문 체인점으로 유명해진 옥류관과 옥류교 사이에서 주로 자란다. 버드나무와 아키사아나무가 바로 우리 미래에 대한 질문이 아니겠는가?
-148쪽

김철용은 공손하기는 했지만, 예전의 북한지도자들처럼 경직된 모습은 아니었다. 버드나무는 부드러움으로 태풍을 이겨낸다. 과연 북한은 그런 부드러움으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164쪽

지금 대통령은 조선조의 왕들이 수렴청정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유폐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극심한 견제 속에서 그는 한 발만 잘못 벗어나면 언제든지 이 나라가 지급불능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아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집권 첫해에 의미 있는 정책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그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컨베이어 벨트와 조립용 기계가 끊임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해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어쨌든 노동자들의 대통령이고, 시민들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지해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는 대한민국 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아니, 큰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덩치가 큰돈들은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푼돈들이 모여 큰돈이 된 것 아닌가? 큰돈들이 왜 그렇게 큰돈이 되었겠는가? 큰돈은 뭉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조각조각 모인 돈들이 자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작은 돈들은 부수어지기 쉽다. 그게 작은 돈의 속성이자, 약점이다.
-172쪽

사람들 사이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들이 보였다. 보통은 ‘해결하라’ 혹은 ‘철폐하라’ 같은 명령조의 반말투로 적은 플래카드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해라체가 글자 수가 적어 팻말이나 플래카드처럼 많은 글자를 적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유리한 이유도 있지만,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늘 외치는 사람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의 적대적 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영어나 불어는 존대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에서 사용되는 명령형의 문구가 반드시 하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회에서 종종 존재어로 된 피켓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만든 정부라는 열망감도 반영된 것이었다. 말이라는 것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연스럽게 존칭과 존대가 피켓에서 공공의 언어로 돌아오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닌 사회,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 속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174쪽

몇 달간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대통령이 움직임을 보이자, 총리실 밑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경제 부처 관료들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들의 임명권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시민들이 만든 권력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힘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지환이 준비한 카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큰 카드 옆으로 작은 카드들을 몇 개 더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간 금지하는 법안을 포함한 법률회사 관리에 관한 제도와 국회 등 로비에 관한 제도 정비였다.
-231쪽

오지환이 무장한 국정원 요원들과 외환은행 본사 딜링룸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저녁이 있는 삶’ 작전이 시작되었다.
-304쪽

한 국가의 돈의 운명은 그 나라의 경제적 운명과 일치한다. 그 나라의 경제가 강해지면 당연히 그 나라의 돈도 강해진다. 그리고 그 돈의 힘은 구매력 즉, 환율로 표시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딱 한 나라, 그러한 돈의 법칙과 거꾸로 간 나라가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던 시절 250원이던 달러화와 대비한 원화 환율이 그가 죽을 때에는 600원이 되었다. IMF 때는 평균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980원 수준까지 내려갔다가,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다시 1,200원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한국의 GNP는 1인당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지만, 몇 백 달러 시절보다 원화는 몇 배로 약해졌다. 원화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국민들의 구매력도 약해진다. 그 대신 대기업 특히, 수출을 하는 기업들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대한민국은 경제가 강해져도 원화는 더욱 약해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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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7-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무척 덥습니다.ㅠㅠ
너무 더워서 나가기가 싫네요...
더위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마노아 2013-07-26 23:4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서울도 불타올랐어요. 33도였는데 후끈후끈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또 비가 온다고 하네요. 변덕스런 여름 날씨입니다.
우리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이 여름을 잘 견디어 보자구요. 후애님도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saint236 2013-07-2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요? 예전에도 리뷰에서 썼지만 우석훈이 쓴 소설은....

마노아 2013-07-26 23:46   좋아요 0 | URL
소설은 소설가에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욕심이 앞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