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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어쩌다 보니 연속으로 하드고어에 속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예전에 마태우스 님의 리뷰를 통해 책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아주 불편했다.
이 작품의 소재는 사실 실화에서 따왔다. 열여섯 소녀를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이코패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소설에서는 14세 소녀로 나온다.) 책에서 소녀가 지하실에 감금당하고 학대를 당하기 시작하는 것은 100여 쪽이 훌쩍 지나서의 일이었다. 앞부분은 다소 지루한 편이었고, 이웃집 소년 데이비드가 소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의 화자가 소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시골 외곽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소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짐작할 수 있고, 또한 바로 그 사회경제적 환경이 이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서 여러 동조자들이 나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지적장애 소녀를 마을 어른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윤간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이 소설에서 소녀를 상대로 '친구'들이 수십 일에 걸쳐서 학대를 했고, 심지어 거기에는 남매도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 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남자건 여자건, 하나같이 주인공 소녀를 괴롭히며 즐거워 했지 이 비상식적이고 끔찍한 일에 대해서 제동을 걸지 않았다. 집단 광기에 다름 아니다.
이웃집 소녀 맥은 다리가 불편한 여동생 수전과 함께 루스의 집에 맡겨졌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맥은 꾸준히 루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왔지만 초반에는 그 사실들을 밝히지 않고 버텼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경찰은 어른 루스의 말만 듣고는 맥의 말을 무시했다. 어린 아이가 그냥 반항하는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이 된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고 한다. 학대받은 소녀의 자매가 편지를 받고는 찾아왔지만 만나지 못했고 다른 수를 내지도 못했다. 이때의 막막함이란...
루스는 대체 왜 맥을 그토록 괴롭혔던 것일까? 그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자신과 달리 젊고 아름다운 맥을 질투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성적 결핍을 맥을 창녀로 만드는 것으로 채우려고 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들을 동원해서. 나아가 이웃집 아이들까지 끌어들여서. 그 아이들은 한때 맥의 친구들이기도 했다. 맥을 좋아했던 데이비드는 폭력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방조함으로써 공범이 되었다. 심지어 지하실에 묶인 채 발가벗겨진 맥을 보면서는 몽롱해지기까지 했다. 그녀를 좋아했고, 사춘기에 다달은 소년의 욕망까지도 이해한다고 해주어도 이건 아니었다. 맥이 나에게 뭐 바라는 것 있냐고 쏘아붙였을 때 데이비드의 뜨끔했을 얼굴이 제대로 그려졌다.
실제 사건은 소설보다 더 끔찍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 아이들은 맥의 얼굴에 오줌을 쌌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소녀에게똥을 먹였다고 한다. 또 자신들이 저지르는 폭력 행위에 실비아(실제 사건의 피해자)의 동생 제니도 동참하게 협박했고, 끓는 물을 붓고는 소금으로 문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순진하거나 순수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가져야 할 기본 덕성이라는 것은 있지 않은가. 루스 아줌마는 정신 이상자였다. 이렇게 정신이 이상한 엄마 밑에서 자란 세 아들도 당연히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럼 이 가족은 모두 비정상이라고 해두더라도, 나머지 아이들은 무엇일까? '집단 광기'라는 말로 다 설명이 되는 것일까? 하긴, 히틀러는 무려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을 학살하지 않았던가. 현실은 소설보다 더 공포스럽고 잔인한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었던 일로 둔갑하지는 않는다. 무섭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그나마 소설이 실제의 이야기보다 나았던 것은 결말이었다. 적어도 루스 아줌마에 대한 '심판'은 이뤄졌으니까. 비록 그것이 충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아마도 작가 역시 이 짐승(짐승, 미안해!)만도 못하고, 벌레(벌레 미안미안!!)만도 못한 인간 쓰레기에게 '자연사'라는 선물은 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동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데이비드는 두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세번째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언으로 참여했던 폭력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짓을 했는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바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스크랩해둔 신문 기사를 찾게 된다. 거기에는 루스의 세번째 아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이 담겨 있었다. 루스가 뿌려놓은 왜곡의 씨앗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데이비드의 엄마는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라고 적어 놓았다. 거기에는 다른 이웃집 남매의 이름도 추가되어야 하고, 데이비드의 이름도 추가되어야 마땅하다. 그가 평생 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참회하고, 또 괴로워하면서 갚아야 할 빚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갚을 대상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대신 싸워줄 만큼의 용감함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신고라도 해주는 용기는 내주며 살았으면 한다. 모두들 그만큼씩의용기만 내주어도 이 무서운 세상이 조금은 더 안전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모두가 한발자국 씩만 용기를 내준다면.
헐리우드에서 두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듯하다. 아마 너무 끔찍해서 그런 게 아닐까. 작품을 보고 나서 영 기분이 안 좋다. 무서운 책이었다.
덧글) 9쪽 마지막 줄
우리나라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 17개월 전인 1946년에 태어났다. 마티스가 막 여든 살이 되던 해이기도 하다.
>>>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은 1945년이다. 마티스는 1869년 생이다. 연도가 이상하게 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