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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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시체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의대생들이 친 장난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체의 조각을 싼 방수천이 동일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묘하게 흘러갔다. 조각을 짜맞추자 한 사람의 몸이 되었다. 그렇지만 머리는 없었다. 중요한 단서가 되었을 법한 몸통의 문신도 제거된 상태였다. 이 남자는 누구인가? 누가 이 남자를 죽인 것인가? 이 남자는 어쩌다가 이렇게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 것인가?

 

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다. 이 책은 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1897년 6월 25일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당시의 언론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뉴욕을 온통 들었다 놨다 했던 세기의 살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흐름을 주도했던, 아니 흐름을 '창조해 낸' 두 축은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유명한 신문사다. 1883년에 조지프 퓰리처사 가들인 신문사 <뉴욕 월드>와 1895년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사들인 신문사 <뉴욕 저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하나 더 깃들인다면 허스트가 추가로 발행한 석간 신문 <뉴욕 이브닝 저널>을 들 수 있겠다.

 

앞서 '황색 언론'이란 말을 썼다. 퓰리처와 허스트의 악연은 앞세대 인물인 퓰리처의 과거로부터 이어진다.

 

퓰리처는 <선>의 옛 동료들을 ‘공룡’이라고 공격하면서 재산을 모았고, 그다음에 마찬가지로 명망 높은 신문인 제임스 고든 베넷의 <뉴욕 헤럴드>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문을 내놓아 <뉴욕 헤럴드>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 <월드>에서 수련을 받은 허스트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89쪽

 

퓰리처가 그랬듯이 허스트 역시 똑같은 길을 밟아 퓰리처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이 난 시점은 허스트가 석간 신문인 <뉴욕 이브닝 저널>을 막 창간한 시점이었다. 안 그래도 자극적인 <저널>보다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뽑던 <이브닝 저널>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었다. 그러니 허스트가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것은 안 보고도 뻔한 일! 계속해서 허스트에게 추격을 당하느라 자존심이 상한 퓰리처도 지고 있을 수 없다. 이들의 과열된 취재 경쟁은 셜록 홈즈보다 치밀했고 괴도 루팡보다 더 과감했다. 게다가 지저분하기까지!

 

때는 19세기 말. 기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달렸다. 청동 전조등을 달고 도시를 질주하는 자전거 군단은 폭주족을 연상시켰다. 심지어 허스트는 신문사에 '자전거 사고 전담 변호사'까지 데리고 있었다. 뿐이던가. 혹여나 <월드>에서 취재 과정 중 알게된 새로운 사실을 전화로 전달할까 봐 해당 구역의 모든 공중전화를 점거하고 전화선도 끊어놓았다. 이 정도면 거의 범죄 수준 아닌가! 그러나 아직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의 기막힌 보도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끔찍한 토막 살인 사건보다 더 무서울 때조차 있으니까.

 

퓰리처는 독자들에게 포상금을 걸었다. 시체 토막 사건에 관한 미스터리를 정확히 푸는 사람에게 500달러를 금화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셜록 홈즈가 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러나 퓰리처가 이런 묘안을 짜낼 때 가만 있을 허스트가 아니다. 자수성가한 퓰리처에 비해서 광산왕을 아버지로 둔 허스트의 자금 동원력은 압도적이었다. 퓰리처의 <월드>가 500달러를 제시한 기사가 나온 직후 <이브닝 저널>은 '포상금 천 달러'를 내걸었다. 허스트 다운 전략이다.

 

 

 

이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평범하지 않은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낵 부인의 초상화다. 당시엔 삽화를 전문으로 전담한 기자가 재빠르게 그림을 스케치하고 그것을 신문사로 보내어서 이렇게 인쇄했다. 책 속에서, 그러니까 당시 실제 신문들이 묘사한 낵 부인은 뭔가 팜므파탈적인 느낌의 여인이었다. 글쎄, 사진으로 느끼기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건 때문인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여자 혼자 시체를 토막냈다고 여기기는 아무래도 힘든 일. 사건에는 배후자이거나 공모자이거나 아니면 뭔가 관련이 있는 남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마틴 손이다.

 

이 사건은 판결이 나오기까지 반년 정도를 끌었는데 그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내가 뉴욕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매일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으리라. 요즘 모든 사건 사고를 윤창중 기사가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이 무렵의 기사들은 이 토막 살인 사건이 모두 덮어버렸다.

 

저자가 놀라운 것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정말이지 당시의 보도 자료와 수기 등만 참고해서 재현해 놓는데도 그 긴박감이란 드라마의 '다음 주 이 시간에'라는 문구를 보며 시청을 마치는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쯤 가서는 시체의 주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만 같고, 또 얼마쯤 가면 죽었다고 알려진 그 사람이 다음 재판정에 나올 것만 같다. 반전의 반전의 또 반전! 이건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죽은 사람에겐 미안!) 그걸 글로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 덕분이다. 웬만한 추리 소설이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그리고 무려 19세기의 이야기이다. 아직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 있고,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익숙한 시절이다. 사진보다 삽화가의 활약이 더 컸던 시대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흥미롭게 보인다.

 

몇 주 전에 인도 총독은 나선형이라든가 고리 모양 등 지문의 모양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채택했지만, 오브라이언 경위를 비롯한 미국 사람들은 인도 경찰이 고안한 이런 괴상한 아이디어에 관심이 없었다.  -144쪽

 

오호라! 지문식별이 인도에서 시작되었구나. 초기에는 이것이 얼토당토 않다고 여겨졌구나!

 

이 토막 살인 사건 때문에 허스트의 신문 판매 부수는 드디어 <월드>를 눌렀다. 탄력 받은 허스트는 흥미진진한 연재 소설을 싣게 되었다는 것을 크게 광고했따. 바로 웰스의 "우주 전쟁"이다. 아핫, 그래, 바로 그 시대였지!

 

하나 더 있다.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서 쿠바에 정박 중인 미 해군 전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어 배와 승무원들 대부분이 아바나 바다에 수장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사건은 스페인의 짓이 아니건만, <저널>의 허스트는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는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건 자체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쟁만큼 확실한 이슈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타블로이드 전쟁'을 이미 하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허스트는 정말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어가 현장을 살피고 오기도 했다. 포탄과 총알은 그를 비껴갔지만 그가 사명감으로 살아남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선정적인 보도에 있어서는 뱀같은 감각을 지닌 이 언론사 사주와 맞먹을 만큼의 배짱과 수완을 가진 이가 바로 낵 부인이다.

 

“난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낵 부인이 여간수에게 쏘아붙였다. “날 구경할 수는 없다고 말해줘요. 난 전시물이 아니라고.”
그러다가 낵 부인은 다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저널>과 에덴 박물관이 사건을 가지고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박물관에서 입장료로 50센트를 받는다니, 낵 부인은 시물감에서도 가격에서도 박물관을 누를 수 있었다.
“잠깐만요.” 낵 부인은 자리를 뜨려는 여간수를 불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와서 구경하라고 해요. 한 사람당 25센트를 낸다면요.”
오거스터 낵은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174쪽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낵 부인이라니!! 희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살인 사건의 중요 피의자를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서 돈을 낸다. 놀라운 일이건만, 이 관광(?) 수입으로 낵 부인은 짭잘한 수익을 올리고, 그 돈을 이용해서 감옥 안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구해 주고 세력을 구축한다. 바로 그 권력을 이용해서 마틴 손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의 내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짐작하는 낵 부인의 심정과는 많이 다르다. 이 편지에는 또 다른 음모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마틴 손의 답장을 보시라. 찢어진 흔적이 있다. 그가 답장을 쓰면서 겪었을 고뇌가 느껴진다. 이 사람은 살인을 주도한 악마인가. 아니면 여자에게 이용당한 순정남인가.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궁금하게 만든 대목이다.

 

작품의 배경에서는 전기의자에 앉혀서 사형을 시키는 제도가 등장한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입증되지 않은 사형 방식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형 방법이 토막 살해된 어느 남자의 죽음과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는 소름이 돋았다. 법정 안에 낵 부인의 전 남편과, 현 애인과, 그리고 약품처리된 토막 시체로 참여한 옛 동거남까지 함께 모여 있던 순간처럼.

 

선정적인 기사의 배후에는 선정적인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 여자들은 마틴 손의 인물에 반해 그의 무죄를 외쳤고, 법정 안에는 한껏 차려입은 여자들이 참관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꽃밭'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모든 분위기들을 즐기면서 더욱 부채질하는 언론사들 때문에 이 비극적인 살인 사건은 마치 '축제의 장'이 되고 말았다. 그 현장에서 가장 화려한 칼춤을 춘 것은 당연히 허스트다. 퓰리처는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 한 세대 더 앞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건강도 잃고 타블로이드 전쟁에서도 계속해서 물을 먹고 있는 츌리처의 <월드>는 더 많은 돈과, 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비윤리성으로 무장한 <저널>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결말이 오기까지는 퓰리처가 뿌린 죄값이 있었던 거지만...

 

이 책을 보는 동안 100년 이상의 간극이 있음에도 많은 기시감을 느꼈다. 범죄의 잔혹성과 그 범죄를 유발시킨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 그리고 그것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까지, 모든 게 21세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천박한 호기심도 판박이였고,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약삭빠른 인간들도 당연히 있었다. 중간중간에 함께 소개되는 희대의 사기꾼들과 여러 놀라운 살인 사건들의 충격적인 모습도 역시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장 사악한 자가 언론과 종교의 이름으로 죄를 세탁하고 새삶을 사는 기막힌 풍경도 역시 이곳에서도 이미 선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함 때문에 희생되는 인물도 당연히 뒤따른다. 자극적인 살인 사건은 모방범죄를 불러왔고,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기사와 표제에 익숙해져갔다. 포털에서 우리가 지겹도록 보는 '충격', '경악'과 같은 그런 단어들 말이다. 이 얼마나 우리 사는 세상과 닮아 있는가.

 

 

 

살인 사건과 타블로이드 전쟁이라는 두 축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이 작품은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역사를 짚어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일석다조의 효과가 아니던가!

 

자, 이제 정리를 해보자. 이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부수 전쟁으로 이야기한다면 단연코 허스트가 이겼다. 무려 400만 불을 투입시키고도 아직도 500만불의 재산이 남아 있던 허스트의 금력을 퓰리처가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하지만 퓰리처는 현명했다. 그는 황색 언론 대신 이름을 남겼다. 그것도 고상한 이름을!

 

그래도 <월드>는 자발적으로 선정주의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조지프 퓰리처로서는 허스트의 공격적 마케팅에 허덕허덕 끌려다니는 게 늘 못마땅했었다. 말년에 퓰리처는 <뉴욕 타임스>의 냉철한 신뢰성 쪽으로 끌렸다. 1911년 사망한 뒤에 퓰리처는 역사적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황색 언론 전쟁은 잊히고, 컬럼비아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고 작가와 기자들에게 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상이 제정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허스트는 반성할 줄 몰랐다. -390쪽

 

오늘날 '퓰리처'의 이름은 황색 언론을 낳게 했던 극단적인 보도 전쟁보다 '퓰리처 상'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 반성할 줄 몰랐던 허스트를 결국은 그가 이긴 것이다. 막차는 제대로 탔구나 싶어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그 박수는 이 책의 저자에게도 나눠야 할 듯! 

 

우리의 언론 환경을 생각해 본다. 주식회사 프레시안 대신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선언한 진보 언론 매체도 떠오르고, 지난 대선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준 쓰레기같은 언론사들도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판을 받았던 언론인 부역자들도 떠오른다. 그만큼 막강하고,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큰 소명의식을 필요로 하는 자리임이 자명하다. 그래서, 즐겁게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쓰다. 오늘 주진우 기자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우리의 언론 환경은 19세기보다 못한 것은 아닌지......

 

우리가 소망하고 기대하고 지켜야 할 언론의 모습을 마음 속에 새기며 좋은 책을 추천해 본다. 당신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분히 채우면서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들을 넘치게 남겨줄 것이다. 그래야 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덧글) 몇 군데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들이다.

79

오브라이언을 20년 넘게 경찰 일을 하면서 >>> 오브라이언은

153

두 번째로는 꾸러미를 무겁게 만들지도 않았는데 오거스터 빨리 처리하라고 닥달을 하는 바람에>>> 오거스터가

198

그녀가 마틴 손에을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 마틴 손을

266

증인이 굴든수프를 쏘지 않았습니까! >>> 큰 따옴표 방향이 뒤집혔다.

382

위장내막을 얇게 저며 끓여 잿물과 벤젠과 섞은 용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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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3-05-1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어보았는데 언론이라는 무기로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와 형사들의 활약으로 당시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그리고 사건 언론의 변천사를 짧게 이야기하는 당시의 언론의 모습을 볼수 있는 사건의 진실보다는 그사건을 수사하는 기자들이야기가 더 인상적인

마노아 2013-05-15 22:02   좋아요 0 | URL
기자들의 행태와 기사 자체가 엄청 선정적이더라구요. 거기에 달려들어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충격적이구요. 100년 전 모습같지가 않았어요. 말 그대로 리얼다큐더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