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843 호/2013-04-10

  • 적자생존 NO!! 이제 낙(樂)자생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휘파람이 절로 나올 것 같은 흥겨운 노래, 가사에서처럼 벚꽃이 폴폴 휘날리는 분홍빛 거리,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4월의 동물원은 사랑스러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태연이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태연아, 왜 그래? 동물원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 무슨 일 있어?”

“아빠, 작년 말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 설문에서 한국이 97위를 기록했다는 사실 아세요? OECD 국가 중에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된지는 이미 오래고, 이제는 통계가 잡히는 나라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돼 버렸죠.”

아빠는 태연의 말에 깜짝 놀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왕따가 아이들을 자살로 내몬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 아닌가!

“무슨 일 있어? 혹시 하루 종일 조증 걸린 사람처럼 헤헤 웃고 다닌다고 애들이 왕따 시키냐? 그러게 적당히 좀 웃으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배고파요! 그것도 베리 어~엄청!! 아빠는 ‘동물원 나들이도 식후경’이란 얘기도 못 들어보신 거예욧?”

“그럼 너의 극단적인 우울함이 단지 배가 고파서였단 말이냐? 넌 어쩌면 그리도 단순하고, 말초적이며,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냐.”

“저만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 낙타, 이구아나, 구렁이도 모두 먹을 거 하나만 생각하고 살잖아요!”

“세상에, 별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같은 얘기를 다 들어보는 구나. 동물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아.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고. 예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동물학, 뇌 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동물의 의식과 감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다 PET, MRI 같은 뇌 영상 기술 덕분에 동물의 뇌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다시 말해서 표현방법이 다를 뿐 동물 역시 감정을 느낀다는 거야. 실제로 기니피그의 어미와 새끼를 떼어놓을 때 이들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뇌 부위는 사람이 슬픔을 경험하는 뇌 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는 실험결과도 있단다.”

“정말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심지어 조너선 밸컴이라는 저명한 동물행동연구학자는 동물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즐거움을 느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거야. 너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애기는 들어봤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체계가 무너져 쉽게 병에 걸리지만, 반대로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오피오이드(opioid)나 엔도르핀(endorphin) 같은 스트레스 감소 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면역력이 강해지고 어지간한 병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되지. 동물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한다는구나. 즐거움이야말로 진화와 생존을 위한 최고의 원동력이라는 거야.”

“와, 진짜 신기하다!!”

“저 앞에 있는 이구아나를 한 번 보자꾸나. 햇볕 있는 쪽으로 꼼짝도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지? 이구아나 같은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햇볕을 쪼여야 하는데, 저렇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 기분까지 좋아진단다. 실제로 햇볕을 쬘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은 인간이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거의 일치하지. 또 얼마 전 파우나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협회는 고양이가 만족스러워 할 때 보이는 그르렁거림에 무의식적인 치유 효과가 있어서, 부러진 뼈와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촉진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내놓았단다.”

이구아나가 햇볕 좋아하는 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그 덕분에 면역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생존에 더 유리해지고…. 저 행동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흔히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글이라고 생각하지. 수많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는 동물의 세계를 봐 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야. 하지만 조너선 밸컴은 동물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즉 면역력이 강한 신체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애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한단다.”

“와~ 동물의 세계는 놀랍고도 신비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여자들에게 좋아하는 이성 타입을 물어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의 입장에서 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가 보다 많이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더 탄탄한 면역체계를 갖췄을 테니, 더 강한 녀석일 가능성도 높은 거야. 어쩌면 우리의 똑똑한 뇌가 더 강한 녀석을 배우자로 삼기 위해 웃긴 사람을 좋아하도록 일부러 조종하는 건지도 모르지. 아빠 생각에 태연이 넌, 아마 나중에 숙녀가 되면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많을 거야.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웃고 있잖니. 네가 어지간하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게 다 웃음 덕분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도 매일 웃고 계신 거였구나. 지난번에 엄마랑 엄청 싸우고 쫓겨나신 날도, 정말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셔서 참 신기했었어요. 밖은 영하 10도인데 그 추위 속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게 맑은 미소를 짓고 계시다니, 그게 다 면역력을 강화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셨군요?”

“무, 물론이지!!”

“근데 엄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아빠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웃는 상이라서, 별명이 ‘고사상의 웃는 돼지’였다고 하시던데요? 초상집에 가서도 계속 웃고 계셔서 상주한테 주먹질을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시던데….”

“우하하하하~! 너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으니 또 다시 웃음이 나는구나. 오~ 콸콸콸 넘쳐나는 나의 엔도르핀이여!!”


관련서적: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조너선 밸컴.
(ISBN : 9788972202172 (8972202177))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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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4-14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자생존'이라는 이름을 못붙여서 그렇지, 이거 정말 저의 평소 생각인데!! ^^
기계, 물질 문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능력,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갈수록.

마노아 2013-04-14 16:11   좋아요 0 | URL
'적자생존'이라고 소리내어 말해 보면 꼭 루저가 된 기분이 드는데, '낙자생존'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요. 아자아자 낙자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