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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플까봐 ㅣ 꿈공작소 5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평점 :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제목의 글씨가, 가운데에 자리한 초록병의 색깔 배합이 예쁘다. 그리고 얼굴이 발갛게 물든 어린 소녀도. 아직은 병이 더 크다. 소녀가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어떤 이야기인지 들여다보자.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머릿속은 온통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밤하늘의 별에 대한 생각과 바다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녀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존재는 할아버지셨다. 의자 뒤로 가득한 책이 할아버지의 입술을 거쳐서 소녀의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모든 분야에 탁월했을 할아버지의 존재. 게다가 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얘기해주셨을 것만 같다. 참으로 다정하고 다정한 할아버지.
땅바닥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셨을 할아버지. 수영하는 손녀를 지켜봐주는 안전한 보호자.
소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에 겨웠다. 아무렇게나 그려진 낙서같은 그림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해줄 할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의자가 비어버렸다. 할아버지의 부재. 추억이 멈춰버렸다.
해는 졌고, 꽃은 시들 것이다. 의자는 비어 있고, 소녀는 마음을 다쳤다.
두려워진 소녀는 잠깐만 마음을 빈 병에 넣어두기로 했다. '마음이 아플까봐!' 그랬다.
마음을 담은 병을 목에 걸었다. 그러자 마음은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별에 대한 생각도 바다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비어진 마음은 이것들을 담아내지 못했다.
어느덧 소녀는 세상에 대한 열정도 호기심도 잊은 채 어른이 되었다.
마음은 자라지 못했고, 몸만 성장했다.
병은 점점 무거워졌고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소녀의 마음만은 안전했다.
두터운 벽에 갇혀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소녀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소녀도 아이의 물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따.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마음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갖은 방법을 썼지만 실패했다. 병은 깨지지 않았다. 그저 통통 튀어서 데굴데굴 굴러갈 뿐...
그런데 그 병이 임자를 만났다. 병에서 마음을 꺼내줄 아이에게로 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는 병속에서 마음을 꺼냈다. 마음에게 자유를 주었고, 주인을 찾아주었다.
이제 비었던 의자는 채워졌고, 잃었던 시간을 채워 갔다.
묻어두었던 많은 것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할아버지가 채워주셨던 그 추억이, 이제 소녀를 거쳐서 그 소녀만큼 작은 아이에게 전해질 차례다.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주셨다. 당신이 떠나셔도 사라지지 않을 많은 것을, 많은 마음을...
이제 병은 비었다. 그러나 마음은 채워졌다. 마음은 아프지도 무겁지도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유산이다.
책의 앞뒤 표지를 열면 나오는 속표지 모습이다. 작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이 보인다. 아마도 할아버지일 테지.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아이를 보며 얼마나 사랑스러움을 느끼는지 대사 없이도 전해진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고운 책이다.
유아용 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속에 깃든 이야기들을 어린이들이 잘 이해해줄지 모르겠다. 그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더 크게 다가갈 것 같다.
마음이 아플까 봐... 혹시 외면했던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시 마음이 아플까 봐 좀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또 생각해 본다. 내 마음 아픈 것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함으로 내가 더 힘들지는 않았는지... 이제 그 병을 비워야겠다. 마음은, 아프지 않아요. 내게 돌아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