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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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제법 지난 책이다. 그때는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하기 전이었고, 지금처럼 18대 대통령이 결정되지도 않았던 때이다. 그러니 보다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제 정치판에 뛰어든 안철수를 경험하고, 또 선거의 결과까지 알아버린 시점에서 그가 쓴 글을 다시 들여다 보니 어쩐지 서글픔이 몰려온다. 안철수가 주장한 내용들은 특별히 혁신적이거나 아주 가파르게 진보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그 상식적인 주장들이 '퍼주기' 식으로 오염되어 통용되기 일쑤다. 가슴 아픈 일이다.

 

자살률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전체 중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비해 10배나 높아요. 거의 매일 40여 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1년이면 1만 5,500여 명이 비극적 선택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가를 보여주는 수치죠. 출산율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낳은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기대에 따라 출산율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거의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얘기가 아닐까요?  – 83쪽

 

선거 끝나고 고작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벌써 다섯 명의 노동자가 생을 달리 했다. 이 절망의 죽음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들은 죽을 이유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복지국가는 정치·사회 세력 간에 대립이 아니라 소통과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수, 진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저는 이 두 진영이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라는 것은 그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새롭게 도전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세력이죠. 양쪽이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도전과 발전의 기회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 확충, 경제 민주화 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90쪽

 

건전하고 건강한 보수를 대선 막바지에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보수를 만나기까지 몇 십년이나 걸렸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김구 선생님이 천수를 누리셨다면, 극우 성향을 가진 분들 중에서도 건강한 보수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역사의 슬픔이다.

꼭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민간의 다세대주택을 사들여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정책 같은 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많은 재원을 갖고 있는데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미래가 불안정한 오피스빌딩을 매입하기보다 국가 보증하에서 안정적이고 공공성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 106쪽

은평 뉴타운의 실패로 분양되지 못하고 놀리던 집들을 박원순 서울 시장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글을 보았다. 누군가는 얼토당토 않다는 반응을 보이던데 나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었다. 비록 아주 가까이에 대학교가 있지 않아서 거리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은평구에서 서대문구 신촌은 그다지 멀지도 않다. 일년 만에 서울시의 부채를 1조 2천억이나 갚아낸 시장님의 능력을 믿는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의 모든 장단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고 사실 많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부패에 대해 엄격한 법과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의 건강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본시장이나 기업 범죄, 탈세 등에 대해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나 병합선고, 즉 모든 죄의 형량을 합산해서 처벌하는 방식으로 엄벌을 내리죠. 기업 간의 공정거래를 해치는 범죄행위도 강력하게 처벌하고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통령까지도 하야시킬 수 있는 법으로 부패를 막고 있죠.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도를 많이 들여왔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 144쪽 

제발, 정말 제발이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재벌들만 살만한 나라 말고, 국민 모두가 살맛 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정치 때문에 신명나는 대한민국 말이다.

 

북한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과 평화적인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내수시장이 확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우리 경제는 현재 성장이 정체된 상황인데 북한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북한 내 지하자원, 관광자원,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위한 길이 열릴 수 있고 육로를 통해 부산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연결될 수도 있죠. 지금은 북한에 막혀서 남한이 사실상 섬나라와 같은데, 대륙이 연결돼 원자재와 수출품 등의 수송이 쉬워지는 거죠. 그러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면 서독과 동독이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 비용을 줄인 것처럼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 152쪽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그리하여 북한 퍼주기가 겁나 겁나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가 정말 슬픈 세월을 살았다는 게 실감나는 대목이다.

 

여러모로 되새겨볼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과, 이런 정치를 해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테지만, 안철수가 건강한 정치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그가 부르짖었던 상식과 소통이 건강하게 진행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주역으로 말이다. 이번 대선은 그에게도,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을 것이다. 그에게 남아있는 어떤 의구심마저도 모두 걷어낼 수 있는, 그런 진정성 있는 정치인으로 다시 조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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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12-27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는 현실이 참 서글프죠.....
대단한걸 바라는것도 아니고 그저 상식적인 사회를 바라는건데 말입니다.
솔직히 안철수씨가 정치를 하지 않길 바랬던 사람중에 하나지만
본인이 정치를 꼭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좋은 정치인의 모습을 기대할뿐입니다.


마노아 2012-12-28 01:47   좋아요 0 | URL
상식적인 일을 간절히 소망해야만 하는 처지에 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막막하게 만드네요.
안철수 씨에게 희망을 걸었던 많은 분들이 실망하는 일이 없게, 이런 정치인도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으면 해요.

순오기 2012-12-2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사회인데.... 우린 그걸 소원하는 나라에서 살아요.ㅜ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고 불끈 힘을 내자고요!!
안철수~~~ 5년 후는 어떨지 기대해봅니다.

마노아 2012-12-28 01:49   좋아요 0 | URL
오늘 곽노현 교육감 헌재 판결 보고서 또 주르륵....ㅜ.ㅜ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사실에 또 놀라면서 좌절감이 들지만,
그조차도 사치스러워서 다시 불끈 힘을 내봅니다.
5년 후, 이 나라의 정치 지형이 '상식'적으로 바뀌기를 소망해요. 그날까지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