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도세자는 가시 같은 이름이다. 그의 진실이 무엇이건간에 일단 아프고 시작하는 이름이다. 그같은 감정은 정조에게도 동시에 이입된다.

 

이 책은 사도세자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비극적인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과 거기서 비롯된 역사에 대해서 무척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집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사료는 '한중록'이다. 원전을 꼼꼼히 살펴서 번역한 이전 저서(한중록)가 이 책의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이덕일 씨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면서 사도세자는 정신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다. 제시하는 사료들의 근거를 보다 보면은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영조가 더 큰 정신병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뒤주에 갇혀 죽기 전에 이미 사도세자는 고사된 상태였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아들을 저주하고 핍박하고 학대할 수가 있었을까.

 

심지어 영조는 백성들이 얼어 죽거나 주려 죽거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생겨도 “소조에게 덕이 없어 이러하다”고 꾸중했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는 날이 조금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라도 치면 임금이 또 무슨 꾸중이라도 할까 사사건건 두려워하며 떨었다.
– 142쪽
영조는 특별히 중요한 일로 질책하지도 않았다. 간병하는 세자의 옷매무새나 행전 친 모양 등을 가지고 꾸짖었다. 어머니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울부짖으며 정신을 못 차리는 세자에게 영조는 사소한 트집을 잡았다.
– 145쪽
궁궐이 피로 물든 시기였다. 영조는 이렇게 좋지 않은 자리에는 꼭 세자를 불렀다. 자기가 일을 끝내고 들어갈 때 세자가 없으면 늦은 시간이라도 꼭 불러 인사를 받았다. 그때 영조가 던진 인사는 고작 “밥 먹었냐”였다. 이는 영조가 그날의 불길한 기운을 씻으려는 행동이었다.
– 154쪽
영조는 세자의 외출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 161쪽
사도세자는 스물두 살이 되도록 능행 수가를 한 번도 못했다.
영조는 사형죄인을 심문하거나 죽이는 불길한 일에는 자주 세자를 불러 곁에 앉혔지만, 밝고 빛나는 경사에는 부르지 않았다.
– 162쪽
평소 영조는 미신적인 조짐이나 금기를 강하게 믿었는데, 그 속에서 세자는 늘 ‘재수 없는 존재’였다. 어쩔 수 없이 불길한 세자를 거둥에 끼웠더니 아니나 다를까 재변이 생겼다. 이에 세자를 향해 “날씨 이런 것이 다 네 탓이라, 도로 돌아가라”고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 166쪽
『이재난고』 등에 의하면 영조는 환궁하면서 개선가를 연주하게 했다고 한다. 자식을 죽여놓고는 마치 적국을 평정한 것처럼 승전가를 연주하게 한 것이다. 신하들이 극구 말리는데도 영조는 듣지 않았다. 서울 사람들은 아들을 죽여놓고 역적을 토벌한 것처럼 개선가를 울리며 대로를 행진하는 득의양양한 영조를 보았다.
– 227쪽

 

 

액받이 무녀라도 되는지, 온갖 재수없는 액은 아들에게 모두 돌리고, 심지어 아들을 죽여놓고는 개선가를 연주하게 했다. 이 멘탈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에서도 이같은 영조의 정신 상태를 정신병으로 진단하는 것을 보았다. 사도세자에 앞서 그쪽이 내게는 더 설득력이 있다.

 

권력이라는 것이 참으로 비정하다. 나로서는 영조가 즉위하는 과정도 수상한 점이 많았고, 그랬기 때문에 더 비정상적으로 권력에 집착한 게 아닐까 의심이 간다. 정통성이 있었더라면, 스스로 콤플렉스에 잠식되지 않았더라면 사도세자가 그렇게 못마땅했을까 싶다. 더 큰 비극은 대를 이을 세손(정조)이 없었더라면, 영조가 이같이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짐작에 정조가 가엾고, 지나치게 장수해서 아들 잡아먹기까지 오래 산 영조의 질긴 명줄도 얄궂다.

 

저자는 객관성과 사실적 분석에 대해서 무척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는데, 비판하는 대상들에 대한 근거들을 따져본다면 반박할 거리가 그다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본인도 좀 치우치는 감은 있어 보였다. 경종의 불임에 대해서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기 전 하초를 잡아서라는 설이 있었다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대목을 써넣은 것도 그랬고, 정조의 즉위 일성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를 해석하면서 ‘내가 비록 사도세자의 아들이긴 하지만, 영조께서 효장세자의 아들로 만들어놓았으니, 그것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써놓았는데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좀 작위적인 느낌이다.

 

이 책을 읽은 지는 몇달이 지났는데, 뒤늦게 짧게나마 리뷰가 쓰고 싶었던 것은 대선을 지나면서 느낀 권력의 무참함 때문일 것이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 그래서 권력을 가지면 모두를 얻고, 권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이 살벌한 싸움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식마저도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비정함 말이다. 씁쓸하고, 슬프고, 갑갑하다.

 

책을 무척 꼼꼼하게 집필한 느낌이다. 근래에는 좀처럼 오타 없는 책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우 치밀했다.

 

65쪽 명나라에게 죄를 얻지도 않고 청나라를 화나게 하지도 않으려는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비판하면서 >>>후금

318쪽 정순왕후는 권력을 놓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인지 수렴청정을 끝낸 일여 년 후 죽고 말았다.>>>'일년 여'가 더 자연스럽다.

 

딱 이 정도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원고도 완벽하게 쓰려고 했다는 느낌이 들고, 편집자도 무척 꼼꼼성실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작년에 저자분과 문학동네 회원들과 함께 창경궁과 창덕궁을 함께 거닐었는데, 그때 연재되었던 이 원고들을 먼저 읽고 보았더라면 좀 더 많은 것들을 담아 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공부가 많이 되는 시간이었다. 뒤늦게 책을 읽어 복습을 했고, 더더 늦게 리뷰 도장을 찍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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