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4월에 본 첫번째 영화는 '그녀가 떠날 때'였다.(순간 '그녀가 눈뜰 때'라고 쓰다가 고쳤다..;;;;) 출근을 5호선으로 하는데,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고 커피 한잔 하고서 출근하면 딱 좋은 시간 대의 영화였다. 다만 영화 시작 시간을 잘못 알고 있어서 집에서 늦게 출발하고 앞에 5분 가량 놓친 게 무척 아쉽긴 했지만.

 

보고 나면 늘 좋았던 독일 영화다. 터키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배경은 독일이 맞다. 이스탄불에 살던 우마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아들을 데리고 독일의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오랜 관습을 지켜온 가족들은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려는 딸과 누이와 언니가 불편할 뿐이다. 자신과 아들의 삶의 새출발을 포기할 수 없지만, 가족과의 연대도 놓을 수 없던 우마이의 고군분투는 무척 슬프게 끝난다. 그런 관습을 인정하기도, 또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관객은 답답함과 무거움을 안고 의자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우마이가 업어 키우다시피한 남동생의 돌변이 가장 화가 났다. 독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가족들도 이렇다면, 이스탄불에 살고 있던 우마이 본가에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충분히 짐작이 간다. 제목만 보고서는 무척 희망적인 내용일 거라고 여겼는데 씁쓸하다.

 

(포스터 이야기. 우마이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손등에 키스를 하고 저렇게 이마에 대는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다. 경의와 존경을 담은 인사처럼 보여서...)

 

★★★★☆

 

25. 간기남은, cgv무료 쿠폰이 있어서 별 생각 없이 고른 영화다. 당연히 아무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대.박. 재밌었다. 깨알같은 애드립의 향연이랄까. 누가 더 센스 있게 대사를 치는가 대결이라도 벌인 느낌이다. 아무도 지지 않는다. 누구도 밀리지 않는다. 대단한 배우들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것은 없고, 그저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였다는 것! 박시연은 한국에서 뜨기 전부터 지켜본 배우인데 얼굴이 갈수록 인공적으로 보여서 안타깝다.

 

 

 

(봉구황 시절의 박시연. 지금보다는 자연스러운 얼굴... 붉은색 잘 받는다.)

 

★★★★

 

26. 헝거게임은, 나의 삽질이 최절정을 이루었던 날 극적으로 본 영화다.

 

 

왜 그랬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뒷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영화일까봐 좀 걱정이었는데, 시리즈물이지만 한 에피소드로 끝나는 영화였다. 무척 다행!

 

독재국가 '판엠'이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 '헝거 게임'
12개 구역에서 남녀 두명씩 선발되어 24명이 생존을 겨루고, 마지막 한명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게임이라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다. 어린 여동생이 추첨에서 뽑히자 대신 지원한 캣니스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활을 잘 다루고 씩씩하며 도도한 그녀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로웠는데, 그래도 수도 캐피톨에서 그녀의 옷을 지원해준 디자이너 시나의 호감은 잘 납득이 안 되었다. 뭔가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그게 잘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튼 영화는 무척 볼거리도 많았고 나름의 로맨스와 액션을 잘 버무렸는데, 내가 유독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독재 국가 판엠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식민지의 반란에 대한 본보기로 해마다 이런 헝거게임을 여는 것인데 '이키가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키가미는 '사망 예고장'이다. 목숨의 소중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국가는 8살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통해서 칩을 넣는데, 1000명당 한 명 꼴로 사망 예고장이 18세에서 24세 나이까지의 청년에게 도착한다. 누구라도 그 한명이 된다면 24시간 전에 사망예고장을 받고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생명의 경각심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무서운 시스템이다. 무척 극적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어떤 의미에서건 분명 이런 통제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 섬뜩함을 헝거게임에서 느꼈다. 비록 영화는 유쾌하고 신나게 해피엔딩이 될지라도.

 

★★★★

 

27. 은교는 그 다음날이 소풍날인 까닭에 평소보다 몇 십분 일찍 끝난 덕분에 역시 극적으로 보게 된 영화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영화 보는 로망을 꿈꾸었던 나는 맥주를 하나 주문했는데, 이게 캔이 아니라 컵에 담아 주어서 좀 놀랬다. 무엇보다 이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게 영화가 2시간을 넘겨 끝나기 때문에 후반 30분은 언제 끝나나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이 어찌나 생각나던지...ㅜ.ㅜ 이게 바로 맥주의 함정!

 

 멈출 수 없는 욕망에의 질주

 

책을 읽은 지 일년 반이 지났기 때문에 아주 자세하게는 생각나지 않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기억한다. 영화는 우려했던 것보다 볼만했다. 소소한 웃음거리가 있어서 객석의 관객들이 다함께 웃을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은교는 17세 고교생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반면 70대 노시인 역을 맡은 박해일은 좀 부족해 보였다. 일단 발성에서 그 나이대로 들리지가 않고 오랜 분장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주름 깊은 피부의 표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덕분에 지난 날 '불멸의 이순신'에서 청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이대를 연기한 김명민의 연기가 떠올랐다. 젊은 이순신은 목소리가 가늘고 높았지만 통제사 이순신은 목소리가 굵고 낮았으며 중후한 깊이감이 있었다. 연기 내공이 비교되는 순간이다.

 

서지우 작가를 분한 김무열의 연기는 좋았다. 특히나 마지막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 아주 느리게 화면을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거울'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공대생 취급한 것은 좀 웃겼다. 공대생이라고 그런 감수성이 없을 리 만무고, 작가적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특별한 물건에 대한 애착을 이해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은교가 자신의 섹스에 대해 외로움이 원인이라고 말한 부분도 불편했다. 잘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원작의 은교는 좀 더 발랑 까진(...;;;;) 느낌인데 영화의 은교는 보다 순수하게 가려고 애쓴 느낌이다.

 

원작에서 시인이 은교의 남자친구라고 사칭한 남자에게 모욕을 당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 깊었다. 시인의 노여움과 절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는데 영화는 들어낸 것이 꽤 아쉽다.

 

아무튼, 영화 은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래도 내게는 원작이 더 나았다.

 

★★★☆

 

28. 어벤져스 역시 극적으로(ㅋㅋㅋ) 본 영화다. 이날은 소풍 날이었는데, 비담임이었던 나는 교무실에서 온종일 전화를 받았다. 거의 12시간에 가까운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시간이 오후 7시 좀 넘어서였는데, 평소라면 맛볼 수 없는 거리의 공기를 즐기다가 충동적으로 극장에 갔다. 볼 수 있는 시간대의 영화가 어벤져스 뿐이었다. 그것도 3D! 다행히 나는 3D무료 쿠폰도 한장 있어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

 

 

 

 

 

 

 

 

오, 그런데 이 영화 끝내준다. 슈퍼 히어로가 떼거지로 나오는 영화가 어찌 재밌겠냐며,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게다가 촌철살인의 대사들! 역시 깨알같은 재미는 언제나 대사빨에서 나온다. 내가 영화로 만난 슈퍼히어로는 아이언맨 뿐이었다. 토르는 천둥의 신이라는 건 알았지만 작품은 보지 못했고, 헐크 역시 보지 못했다.(작품의 주인공이 '빤스'라는 내 친구의 명언만 기억할 뿐이다.) 특히나 캡틴 아메리카는 캐릭터 자체도 처음 본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가 좀 길긴 하지만 무척 통쾌하게 볼 수 있었다. 보고 나면 헐크의 팬이 될 수 있다. ㅎㅎㅎ 헐크가 나쁜 놈을 패대기칠 때 어찌나 시원하던지...^^ 얼마든지 2편이 나올 수 있는 구조인데 기꺼이 기다려보겠다. 특히나 스칼렛 요한슨은 아이언맨2에서도 그 액션에 홀딱 반했는데, 그 바람에 더 킹2하츠에서 하지원의 액션이 너무 비교되어 안타까웠다는 후문이다.^^

 

마블코믹스가 이리 뭉쳤으니 DC코믹스도 뭔가 한건 하지 않을까? 이미 나와 있는데 내가 모르나? 어쨌든 그리 되면 난 배트맨에 한표! ㅎㅎㅎ

 

★★★★★

 

29. 열두살 샘은 역시나 아침 7시 반에 진행된 회의가 있던 월요일에 보았다. 병원 진료가 예정되어 있어서 다시 집 주변까지 돌아와야 했고, 비어있는 시간에 이 영화를 보았다. 이날도 나 혼자 입장해서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피곤에 지쳐있던 나는 깜박 졸고 말았다. 홀로 극장을 전세낸 사람으로서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다.

비록 조금 졸긴 했지만, 그래서 열두 살 소년의 버킷 리스트를 몇 개 빼먹고 보긴 했지만, 영화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백혈병 치료를 열심히 받았지만 결국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만 샘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창의력이 넘친 샘의 버킷 리스트는 재밌고도 아름다웠다. 12년에 불과한 생이었지만, 샘은 진정 충만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이 놀라운 에너지는 샘의 가족에게도 큰 유산이 되었다.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생을 정리하면서 남겨진 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남다른 장례식에 대해서 이야기한 여러 작품들이 떠오른다. 영화 '청원'과 '레스트리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생각난다.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관련되었을 한국 영화 '네버엔딩스토리'도 생각나고, 어떤 면에서는 일본 영화 '굿바이'도 함께 떠오른다. 내게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다.

 

★★★★★

 

바빴던지라 4월에 본 영화 정리가 꽤 늦어졌다. 덕분에 며칠 뒤면 5월의 영화를 정리할 판이다. 5월은 첫주 5일 동안 영화를 세편이나 보았지만, 그후 2주 동안은 1편밖에 보질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뭔가 보려고 하는 중이다. 이틀 뒤에는 간송미술관에 갈 생각이다. 벌써 간송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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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2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두살샘, 은교 찌찌뽕 ㅎㅎ
마노아님도 은교는 원작이 더 좋다고 느꼈군요.^^
근데 간송미술관 시즌이에요? 가본 지 벌써 6-7년 아니 훌쩍 넘은 것 같은데.. 가보고 싶어요.
이틀 뒤 가보시고 페이퍼 써주세요^^

마노아 2012-05-21 13:44   좋아요 0 | URL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더 좋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봤을 때도 비슷하고요.^^

몇해 전부터 봄가을 꾸준히 간송 미술관 다녀오고 있는데 가장 보고 싶은 것들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될 테지요. 다녀와서 후기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