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사랑의 순간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품절


"이번 시집은 사랑의 길이 써준 시의 집이다. 바람 부는 들길을 지나 해질녘에 찾아든, 따뜻한 새집. 속눈썹이 떨렸던 날들...... 그 연애의 기록이다."
-표지앞날개쪽

자서(自序)

사랑은 떠나고
빈집에서 나와 노래한다.

사랑 말고
우리가 노을 아래 엎디어 울 일이
또 무엇이 있을꼬.
어느 날의 일이었던 사랑이여!
또 어떤 날의 이별이었던 노을이여!
삶이 어찌 그것들을 다 이기겠는가.

2011년 가을
김용택
--1쪽

처음 본 날

처음 본 날 웃었지요.
먼 데서 웃었지요.
가만가만 웃었지요.
꽃잎 내린 강물처럼 잔물결이 일었지요.
발밑에서 일었지요.
날리는 꽃잎처럼 발길에 밟혔지요.
한 잎 한 잎 또 한 잎 뚝 뚝
떨어져 내 눈에 밟혀서
오!
봄이여!
꽃구경 가다가
날 저물어
길 잃고
나는
너를
얻었네.
-15쪽

속눈썹

산그늘 내려오고
창밖에 새가 울면
나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두 눈에
그대가 가득 고여온답니다.
-16쪽

그 꽃집

그대가 가만히 바라보는
그 꽃이 나여요.
그 꽃이 나랍니다.
웃어주세요.
"여긴 사람이 없네."
그 강길 호젓한 산길 모퉁이 돌아서며
입 맞출 때, 눈이 감겨오던 그때,
물에 내리는 물오리 소리 가만히 들렸지요.
사랑합니다.
그대가 지금 가만히 바라보는
그 꽃이 나랍니다.
그 꽃집에
그 꽃들

웃어주세요.
-17쪽



꽃은 피어 있는데
피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꽃이 졌는데
지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아무도 못 본


-25쪽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
-38쪽

배반

봄이 와 있다.
잔디밭에 봄이 와 있다.
어, 어, 저것 봐!
저 햇빛 좀 봐!
매화가지 끝에 꽃망울이 터지잖아?
내가 나를 배반할 것 같은
봄이

나는 무섭다.
-43쪽

보름달

달이 밝습니다.
어제가 보름이었지요.
행복합니다.
이렇게 밝고 큰 달을 다 차지하고 혼자 볼 수 있어서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아 좋습니다.
늘 그리운 사람 있습니다.
힘이 들 때, 보고 싶은 사람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46쪽

문득

햇살 좋고
바람 붑니다.
꽃 피겠네요.
남쪽으로
멀리 떠나고 싶네요.
보고 싶답니다.
-57쪽

통영의 밤

당신은 싱그러움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요.
살아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늘 죽지 않는 감성, 세상에 대한 관심, 예술에 대한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지치지 않는 영혼을 가진, 예술을 품은 가슴은 빛납니다.
예술은 손에 잡힌 현실이 아니고 온몸에 스며들게 하는 현실이지요. 나는 스며드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느끼고 스며드는 것들은 떼어낼 수 없습니다.
꽃이, 바람이, 봄비가 세상으로 스며들 듯이 나는 당신에게로 스며들고 싶었지요.
지치지 않는 사랑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끝이 없는 방황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좁은 골목길 사람들 틈에 꽃잎처럼 날아든 당신의 얼굴, 나는
떨렸습니다.
아름다운 골목이었습니다.
당신은 배우처럼 빛이 났지요.
떨리는 사랑을, 세상을 향한 그리움을...... 당신은 아는 사람이었지요.
그 비릿한 골목의 불빛들, 그 불빛 속의 사람들을...... 나는 기억하게 되었답니다.
봄바람 부는 거리에 꽃잎처럼 날아온,
그대 얼굴을,
그 그리운 통영의 밤을.
-78쪽

바람

바람도 없는데
창문 앞
나뭇잎이 흔들리네요.

나를 안아주세요.
-80쪽

오월

연보라색 오동꽃 핀
저 화사한 산 하나를 들어다가
"이 산 너 다 가져" 하고
네 가슴에 안겨주고 싶다.
-85쪽

감잎

마른 감잎처럼
바스락거립니다.
세상이 이리 넓은데
앉을 곳도
서 있을 곳도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86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2-05-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통째로 옮겨오실 생각입니까? 네? 그런겁니까? ㅋㅋㅋㅋ

전 남동생이 여친에게 시집을 선물로 주고 싶다길래 이 시집을 추천했거든요. 그리고 제 책장에서 꺼내서 주며 이걸 갖다줘, 라고 했는데, 그 뒤로 다시 사질 않아서 이제 제 책장에 이 시집은 없네요. 그러고보니 제가 아끼는 책이 제 남동생의 여친에게 가는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네요. 몇년 전 다른 여친(응?)에게 빌려주라며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를 건네줬는데(1판 1쇄였어요 ㅜㅜ), 여자친구가 다 읽고 돌려주기도 전에 둘이 헤어져서 ㅠㅠ 차마 헤어져도 그건 받아와라, 라고 할 수가 없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은 어느새 산으로..........)

마노아 2012-05-11 13:46   좋아요 0 | URL
나름 엄선해서 추린 거예요. ㅋㅋㅋㅋ

남동생의 여친에게로 건너간 책들... 정말 다시 찾아올 수도 없고..ㅎㅎㅎ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을 앞둔 사람 모두에게 고루 어필할 것 같아요.
아, 읽으면서 내 눈썹이 파르르 떨릴 것 같았어요. 사랑이 고픈 5월이에요. 야옹.....ㅜ.ㅜ

... 2012-05-12 11:53   좋아요 0 | URL
남동생 여친에게 빼잇긴 새벽세시 ㅎㅎㅎㅎ

이 시집 좋죠, 마노아님?

마노아 2012-05-13 11:40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그림이랑 종이 질감까지, 물론 시도 포함해서 다 좋아요, 참 고운 시집이에요. ^^

2012-05-13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