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537 호/2012-02-03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벨이 아니다?

오늘날 통신 세상이 열릴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전화’가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선물이다. 요즘은 휴대전화에 그 자리가 많이 밀렸지만 여전히 전화는 전 세계 가정의 필수품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발명이기에, 누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인지에 대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뜨거웠다.

다음은 영국 태생의 미국 과학자·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미국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 입장에서 각색한 것이다.


[그림 1] 1876년 2월 14일, 같은 날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좌)과 엘리샤 그레이(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제가 바로 인류 최초의 전화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저는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고, 다음 달인 3월 7일 ‘전기 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로 특허(번호 174465)를 받았습니다.

굳이 이런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도 길을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세요, 전화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마 열에 아홉은 바로 이사람, ‘벨’이라고 답할 게 분명하다니까요.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돼 있는 저야말로 의심할 여지없는 최초의 전화 발명가지요.


그레이 : 최초의 전화 발명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저 역시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하기 두 시간 전, 벨이라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저보다 덜 유명한 발명가가 먼저 특허 신청을 했다더군요. 결국 특허 사무국은 두 시간 빨리 도착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전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1874년부터 이미 전화를 공개적으로 시연했는데도 말입니다. 단 두 시간 차이로 전 남은 인생을 평생 억울하게 살았습니다.

: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보컬 생리학이나 연설 수정, 청각장애인 교육에 전문가였던 부친의 영향이 컸지요. 이에 소리를 전달하는 기기를 개발하는데 전념한 결과 전화 발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레이 : 전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학교를 그만두면서 정식 교육을 많이 받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 ‘전기’가 등장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가졌어요. 1868년 33살 때 개량 전신 계전기로 첫 특허를 따내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농사일과 전기 실험을 병행했지만 이 특허를 취득한 후 전신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 설립을 도우면서 제조업자 겸 발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벨이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그의 전화는 단지 이론에 불과했어요. 실제로 특허를 획득하고 사흘 후에나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고요.


: 그래도 전 소송에서 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무리 논란이 많아도 결국 공식적으로 법은 제 손을 들어줬단 말입니다. 이래서 ‘법대로 해~’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1876년 2월 14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는 두 시간 차이로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특허 사무국은 벨에게 전화 발명 특허를 주었다. 이후 미국 전역에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해 10년 후인 1886년엔 15만 가구가 전화를 소유하게 됐다. 오늘날 전화는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화는 소리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도구다. 말의 음파를 전류, 또는 전파로 바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달하고 이것을 다시 음성으로 바꿔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벨이 특허를 받은 전화는 자석식 전화기로 전자석에 전류를 흘려주면 자석의 성질을 갖는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송·수화기에는 모두 전자석의 극(極) 근처에 얇은 철로 된 진동판이 있다. 소리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해 전자석이 끌려갔다 멀어졌다 하면서 진동을 한다. 이 진동이 수화기 끝에서 다시 소리로 재생되는 것이다.

이후 벨은 진동판의 크기와 종류, 자석의 형태 등을 바꿔가며 실험해 1877년 영구자석을 사용한 전화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현재의 수화기에 가까운 모델이다. 같은 해 5월에는 5개 은행이 가입한 세계 최초의 교환국(交換局)이 설립됐다.

[그림 2] 엘리샤 그레이와 벨의 전화 발명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자료. 흰색 박스 안은 그레이가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비밀 서류로 발명 특허권 보호 신청서 3쪽에 실린 도안 중 일부. 바닥의 노트는 그레이엄 벨의 실험 노트 중 1876년 3월 9일자의 기록으로 미국 특허청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세계 최초로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종전까지는 벨이 전화 발명자로 알려졌으나, 이탈리아의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1808~1889)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무치는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한 뒤 특허를 내기 위해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Western Union Telegraph Company)와 의논하는 동안 설계도와 전화기 모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벨이 무치가 발명한 것과 비슷한 전화기로 특허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2002년 6월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안토니오 무치를 최초의 전화 발명자로 인정했다. 이로써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는 타이틀은 126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최초의 전화 발명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벨을 떠올린다. 전화 발명 특허 사건은 인류는 맨 처음 최초라고 밝혀진 사람만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또 그 인식이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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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2-08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초의 전화 발명가, 알아 두어야겠네요.

마노아 2012-02-08 15:57   좋아요 0 | URL
유익한 정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