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까미 황마훔 책내음 창작 1
이성자 지음, 김창희 그림 / 책내음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규에게 새 짝꿍이 생겼다. 눈이 크고 얼굴이 거무스레한 여자 아이. 아주 짧은 머리는 젤을 발랐는지 소나무 이파리처럼 뻣뻣하게 솟은 아이였다. 친구들은 서로 잘 알고 있어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는데, 이 아이는 자기 소개가 유별났다. 

"내 이름은 황마훔이야.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지.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특히 달리기를 잘해. 별명은 까미. 안양 할머니 집에 가면 까미 소나무도 있어. 작년 식목일에 삼촌이 심어 준 거야. 그리고 난 돼지고기 절대 안 먹어!"

 

색깔이 분명한 자기 소개다. 모두가 궁금해 할 피부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고,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도 밝혔고, 자신에게만 있는 독특한 특징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에겐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도 같이 밝혔다.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마훔'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밝히지 않아서 아쉽다. 순수 우리말인지, 필리핀의 어떤 말인지 궁금했는데 말이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이렇게 각별한 느낌을 담아서 하는 조건을 내주면 좋겠다. 당장에 머리는 아플 수 있지만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재밌고 유익할 것이다. 아이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텐데,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자신의 별명을 '까미'라고 했던 마훔이는 현규에게도 대뜸 별멸을 물었다. 현규의 별명은 '쌩영감'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쌩~하니 제 할일 하는 현규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짧은 문장 받아쓰기는 아이들에게 대재앙이다. 게다가 마훔이에겐 날벼락 수준. 우리 말을 제법 잘 하지만, 받아쓰기는 만만치 않다. 세종대왕님께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시험지를 보니 억울하게도 생겼다. 파랑이나 파란이나 의미는 같은데 점수는 빵점! 그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을 포함, 어른까지도... 대개의 사람들이 평생 영어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의 총합을 생각한다면 일방적인 설움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 한글은 도대체 네모랑 동그라미가 왜 이렇게 많아요?"

라고 따지듯 묻는 마훔이. 그러게! 생각해 보니 한글에는 네모도 많고 동그라미도 많고... 이미지로서 떠올려도 훌륭한 디자인이 되는 예쁜 한글이다. 그제야 다들 놀랐다는 듯 네모와 동그라미를 세어 본다. 내가 방금 읽은 첫번째 문장에도 벌써 9개나 들어 있다. 재치가 넘치는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읽기 책의 문장 한 줄을 정해서 네모와 동그라미를 세는 게임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네모 동그라미 찾기' 게임! 

 

복도에서 뛰어놀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내는 이 창의력 넘치는 아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세종대왕께서도 대견해 하실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마훔이는 급식을 배식 받고서 탕수육을 모두 버리는 바람에 아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자신들에게는 더 먹고 싶어 안달인 맛있는 탕수육이었으니 수근거림이 더 컸을 것이다. 아이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 속에서 담임 선생님은 꽤 지혜롭고 공정하게 문제들을 해결해 가셨다. 그래도 누군가는 불만이 남았겠지만, 줄곧 보아온 바로는 꽤 근사한 선생님이시다. 어쩐지 부럽다!

 

현규는 탕수육 사건을 고자질 하는 바람에 토라진 마훔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 바람에 '마늘 사건'도 벌어졌고, 이래저래 속이 상한다. 급기야는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둘은 다시 사이 좋은 친구로 돌아간다. 함께 숙제도 하고, 곧 다가올 생일 잔치에 초대도 한다.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서 하림이네 짜장면 집에서 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마훔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받아본 생일 초대장인데 친구들과 다른 메뉴를 먹고 싶지는 않은 마훔이 때문에 현규는 고민이 크다. 그렇다고 생일의 주인공인 자신이 손해를 보고 싶지도 않다. 이는 곧 엄마들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는데, 비교적 잘 넘어갔다. 조금 토라지는 녀석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들에서 아이들은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을 것이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지만 친구를 위해서 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참 즐거웠던 부분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아주 적절한 곳에서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짜장면을 '잘근잘근' 씹으며 연방 웃고 있는 마훔이라든가, 볼이 터지도록 자장면을 불근불근 씹는 현규, 쫄깃쫄깃 맛있는 짜장면 등이 그렇다. 다같이 먹는 똑같은 짜장면이지만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의성어와 의태어가 변한다. 우리 말의 묘미다.

 

또한 캐릭터 역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줄 만큼 차별화 되어 있고 그마저도 또 성장한다. 귀엽다는 칭찬에 그런 소리 많이 듣는다며 넉살 좋게 굴던 마훔이는 친구의 생일에 자신만의 특수성을 내세워 요구하는 바가 많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그런 것이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과할 줄도 알게 된다. 현규와 다른 친구들도 서로 견제하며 토라지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기쁜 일이 내게도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예쁜 녀석들이다.

 

돌아온 식목일에 까미네 할머니 집에서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이름을 건 소나무를 심는 아이들. 소나무와 함께 아이들의 우정도 식목일에 새롭게 태어났다. 부디 이 아이들의 우정이 소나무처럼 늘 푸르게 자랐으면 좋겠다. 비록 아주 천천히라 할지라도!

 

'우정은 배려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작가님 또한 후기에서 밝히셨다. 당연히 동감한다. 비단 어린이들 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배려를 통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덧글) 오타가 있다. 후기에 '산에 사는 사무들이'라고 나온다. '나무'라고 고쳐야겠다. 요며칠 동안 읽은 책 중에서 오타가 없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누가누가 더 많이 틀렸나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끙!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2-04-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줄줄이 오타 발견했어요. 왜 그렇죠. 편집자들이 과도한 업무에 짓눌리고 있는 걸까요? 중학년 정도 읽기에 좋을 동화로 여겨지네요.

마노아 2011-12-19 10:30   좋아요 0 | URL
편집자님들의 직무유기 같아요.ㅎㅎㅎ 실수는 가능하겠지만 심하게 오타와 비문이 많으면 성실성을 의심하게 되어요. 저는 이책 초등 고학년이면 되겠다 여겼어요. 등장인물들이 초등학생이면 으레 그리 생각하게 되나봥.^^

희망찬샘 2011-12-19 18:23   좋아요 0 | URL
저도 오타 투성이군요. 왜 그렇죠--->? 추가 / 과도한 업문--->업무 !!! ㅋㅋ~ 물론 다 이해하고 보셨겠지만요. 지금 초등 저학년 중학년 도서 찾고 있거든요. 안 읽은 책인지라 마노아님 의견 따를래요. 초등고학년!

마노아 2011-12-19 23:24   좋아요 0 | URL
조카가 이제 초등4학년이 될 차례인데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줄 책에 포함시키려고 해요. 이해할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헤헷^^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