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밤의 산책자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2
전경린 외 지음 / 강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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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긴 숨을 쉬어요. 오후가 저녁으로 기우는 시간에 날마다 뼈들이 아파왔어요. 존재가 인내하던 불안의 끈을 놓쳐버리고 안도감 같은 공허의 검은 안개 속으로 실려 가는 거예요. 꾸물꾸물 저녁을 챙겨먹고 원고를 보거나, 서랍 정리 같은 것을 하거나,텔레비전을 보며 밤 시간을 보내고 세수를 한 뒤 커튼을 내리기 위해 창으로 다가가면, 밤이 보였어요.

밤은 검정색 헝겊으로 귀를 틀어막은 짐승 같았지요. 그 실어와 난청의 밤 저편에 낙산 언덕이 안개 속에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 아련히 반짝거렸어요. 낙타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하죠.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뿌려진 불빛들이 모여 낙타의 형상을 이루고 내 창을 향해 걸어올 것만 같았어요.-21쪽

나는 미소까지 지으며 고개를 까닥했어요. 그리고 마취된 입술을 겨우 움직여 말을 걸었어요. 카페를 하나봐요...... 하지만, 여자는 냉담했어요. 순간적으로 나를 밀어내고 돌아서는 작은 도마뱀 같은 초록빛 시선이 당황스러웠지요. 나를 가만히 놔둬요. 나도 당신들을 가만히 놔둘 게요...... 나는 그녀들의 꽃말을 생각했어요. 그녀들과 나의 닮은 점을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이웃들과 달리,우리는 서로 심판하지 않아요. 그 여자들에게 우리는 자기들의 카페와 주방 바깥의 사람, 인생 바깥의 사람,스쳐갈 뿐 알고 싶진 않은 외국인,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서로의 증인이 되지는 못하는 사람들, 그녀들과 우리, 서로가 무채색 배경에 지나지 않는 타인들이었지요. 서로 심판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무관심해진 타인들,그것이 이웃이었어요.-25쪽

어느 날, 세월이 흐른뒤, 어느 날 말이에요, 당신이나 내가 세상과 작별했다면,우리, 홀러다니는 소문으로 그 소식을 알리지 말아요. 예의를 갖춘 정식 부고를 주고받고 싶어요. 별세의 날이 다가올 즈음 비밀스러운 주소 하나를 누군가에게 맡기는,그 정도 부탁은 가족에게 할수 있지 않을까요......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에 말이에요. 우리가 낙엽처럼 가벼워져서 한걸음으로 훌쩍 공기 속으로 넘어가게 될 때요.-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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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1-0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쪽, 제가 밑즐 그은 부분에 마노아님도 밑줄 그으셨네요.
:)

마노아 2011-11-06 22:16   좋아요 0 | URL
헤헷, 통했어요. 찌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