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 미국 군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나 존경은커녕 오히려 더 엄한 벌을 주는 빌미가 되었다. 흑인 전쟁 용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았다.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거부당했다. 조국을 위해 싸웠다고 해서 ‘무례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흑인들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45쪽
미국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는 운송 회사에 흑인 승객을 존중해 달라는 청원서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청원서를 내야 할 때가 되자, 로자는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신념이 굳은 로자는 종이 한 장 달랑 들고 백인을 찾아가서 애원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당히 맞서 싸워서 권리를 찾아야지, 친절을 조금만이라도 베풀어 달라고 구걸하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60쪽
로자는 창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작정이었다. 너무 늙어서도 아니었고,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몇 정거장도 서서 갈 수 없을 만큼 피곤해서도 아니었다. 로자가 정말로 진저리가 난 것은 백인들의 횡포에 흑인들은 언제나 항복하거나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70쪽
버스는 이제 반쯤 비어 있었다. 겁에 질린 흑인 승객 몇몇과 화가 치민 백인 승객들만이 조용히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의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남부의 방식대로였다. "왜 잘에서 안 일어났죠?" 경찰 한 명이 로자에게 매섭게 물었다. 그러자 로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왜 당신들은 우리를 학대하는 거죠"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경찰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요." 경찰은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법은 법이니까 당신을 체포하겠어요." -71쪽
경찰차 안에서, 두 경찰 중 한 명이 로자에게 다시 물었다. "왜 안 일어났죠?" 그러나 이번에 로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로자는 아주 위대한 행동을 했다. 비록 얼핏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결정적인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로자는 아직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로자는 자신을 순교자나 영웅으로 여길 만큼 건방지지도 않았다. 그저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로자는 포기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흑인 여성이었을 뿐이다. -73쪽
닉슨의 말이 옳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인종 분리 버스를 타서는 안 되었다. 로자가 자기 자리를 내주는 걸 거부한 것은, 그날 그 버스에서만 그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러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이었다. 그 자유란, 미국의 역사가 로자에게 가르쳐 준 대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였다. 그러한 행동을 한 이상 이제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81쪽
여러분은 100년 전부터 로자와 같은 불쌍한 여자들 덕에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겁에 질린 학생들처럼 굴지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는 평생을 교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복을 벗어 버릴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이 되려면, 지금 당장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96쪽
(마틴 루서 킹) "오랫동안 우리는 정말 놀라울 만큼 큰 인내심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우리는 자유와 평등보다 덜 소중한 것에 만족하려는 우리의 인내심에서 벗어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러분이 용기 있게 싸운다면, 우리가 우리의 존엄성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함께 싸운다면, 우리의 투쟁을 역사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것입니다. ‘위대한 민중이 살았다. 그들은 문명의 핏줄에 새로운 의식과 존엄성을 가져온 흑인 민중이었다.’라고.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요, 우리가 꼭 이뤄 내야 할 책임입니다." -99쪽
사실 로자는 이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말은 이미 지난 목요일 버스에서 다 했기 때문이다. 그 확고하고 절대적인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이제는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2쪽
1975년 12월, 승차 거부 운동이 일어난 지 20주년이 되던 해에 로자는 마침내 몽고메리로 돌아갔다. 로자의 나이 62세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몽고메리 시 당국의 초대를 받아서였다.
-123쪽
로자의 유해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비행기로 몽고메리로 옮겨진 뒤에 다시 워싱턴으로 옮겨져 국회 의사당의 원형 건물에 안치되었다. 여성을 이처럼 우러러 받드는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해가 놓였던 바로 그 관대 위에 놓인 로자의 관을 보초병이 말없이 지키는 가운데, 5만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다가가 ‘민권 운동의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그로부터 3년 뒤에, 검은색 피부를 가진 남자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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