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 북한 아이들 이야기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이은서 지음, 강춘혁 그림, (사)북한인권시민연합 감수 / 국민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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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목 메어 부르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정부 차원에서 이미 '통일'에 대한 의지가 의심스럽고, 저 마다의 삶이 고단한 소시민들은 이웃의 삶을 돌아보기도 힘든 터,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에게 북한과 북한 어린이들의 인권이란 또 얼마나 멀고도 먼 존재일까. 

당위로는 인정하지만 선뜻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알기 어려운 북한과 통일,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얘기해주는 책이 나왔다. 글을 쓴 분은 남한 작가이지만,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보면 무수한 탈북주민들과의 인터뷰가 뒷받침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분은 실제로 탈북주민으로 현재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계시다 한다. 그림의 숨결 하나하나에 얼마나 진심을 담았을지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모두 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들마다 북한 어린이들과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실상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제목부터 보자. 

1. 도둑질을 해서라도 학교에 가고 싶어요
2. 죽어서라도 수용소에서 나가고 싶어요
3. "모두 다 김매기 전투에로!"
4. 단 하루만이라도 실컷 먹고 싶어요
5. 우리는 언제까지 유령으로 살아야 할까요?
6.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여행을 떠나요 

제목만 보더라도 마음이 무너진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아이의 열망이, 죽어서라도 탈출하고 싶은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삶이, 단 하루만이라도 실컷 먹고 싶은 간절한 열망에 글을 읽으면서도 몸둘 바를 모르게 한다.  

의무교육 연한이 남한보다 더 길다고 자랑하는 북한이지만, 그 실제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교과서도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는 '과제'라는 명목으로 땔감을 구해오게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업을 들을 수 없고, 배우고 싶어 목마른 아이들은 도둑질을 해서라도 목표량을 채우고자 발을 동동 구른다. 그 과정에서 몸 상하는 일은 다반사. 또 무엇을 훔쳐야 할지 막막한 이 아이들 앞에서 입시 교육에 찌들고, 조기교육 열풍에 내몰리는 남한 아이들의 삶을 겹쳐보니 답답한 한숨이 목구멍을 콱 막아버린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더 기가 막히다. 굶주린 아이가 들쥐를 발견하고 그걸 잡아 먹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은 어찌나 필사적인지 아찔할 지경이다. 

 

아이는 들쥐를 잡았지만 선생님에게 들켜서 몰매를 맞았고, 아이가 속한 조원이 단체 징계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수용소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금만이가 숨이 끊어졌다. 시체를 치우는 녀석에겐 강냉이죽을 한그릇 주겠다는 선생님의 얘기에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주춤주춤 앞으로 나온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는 선생이라는 작자의 행태에 울분이 끓어오른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제 주린 배를 앞서 걱정해야 하는 이들의 비참함을 이용해 그들에게 더 큰 모멸감을 주는 인간이 아이들 앞에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 멸시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아이들은 죽은 아이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입은 옷과 신발을 벗겨내어 헐벗은 제 몸에 두른다. 서둘러 묻힌 죽은 아이의 부모는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었다는 소리를 뒤늦게 들을 것이고, 아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찾지 못할 것이다. 이토록 비극적인 일들이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북한 사회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쪽의 삶과 비교한다면, 누구라도 앓는 소리를 쉽게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울음 섞인 목소리들도 들어보자.  

네번째 이야기에서 '꽃제비'가 등장한다. 엄마와 아빠를 연달아 잃은 명섭이는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서 꽃제비 노릇을 한다. 꽃제비는 어린 노숙자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굶주리는 사람이 너무 많은 터라 동정과 구걸에 기대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이제 아이는 도둑질을 해서라도 동생을 먹이고 싶다. 하지만 그런 꽃제비들이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장시장의 상인도, 손님도 이제는 그런 손길들에 대비를 하고 있고, 명섭이는 밥완자를 훔치려다가 죽도록 얻어맞는다. 

   
 

 “형, 많이 아프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붉게 얼룩졌어요.
동생이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어요.
“형, 우리 이다음에는 부자로 태어나자. 부자로 태어나서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동생을 보며 설핏 웃었어요.
“명환아 …….”
“응?”
목구멍이 울컥하더니 피를 한 움큼 토해 냈어요.
‘우리 다시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말자.’   -109쪽

 
   

고작 열 살 짜리 어린 아이가 다시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말자고 이를 악물게 만드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이 아이에게 이미 지옥이다. 그런 사회가 버젓이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수치이고 그런 체제를 조장하고 유지하는 독재자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탈북자 이야기도 이어진다. 어렵게 중국으로 탈출에 성공해도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힌 그들은 공안에게 잡히는 순간 북으로 송환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기로 결심까지 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수중에 독약까지 지니고 있는 그 불안한 모습에 함께 두 주먹을 쥐어본다. 아이는 중국 땅도 북한 입장에서는 낙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남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곳이야말로 지상 낙원이라고 상상한다. 단순 비교한다면 분명 북한의 굶주리는 삶에 비해서 남한은 지나칠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다. 그 안에서도 지옥같은 삶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탈북주민에게 있어서 그 다음의 문제는 아직 피부로 느낄 차례가 아니니까.  

글의 사이사이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토막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상의 유일 낙원을 표방하는 북한의 수도 평양에는 장애인을 모두 내쫓았다는 것에 히틀러가 바로 떠올랐고,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과 같은 이름은 쓸 수 없어서 먼저 태어났더라도 이름을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얘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조선의 임금들은 같은 이름이 겹쳐서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고자 외자 이름을 썼고 한자도 어려운 것을 골라 썼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이들 독재자 부자들은 최소한의 배려도 양심도 없다. 하긴,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통일의 당위성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내미는 것이 더 큰 교육적 효과와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두덩이가 뜨거워져서 숨을 골라야 했다. 학교에서는 단체로 읽을 수 있게 학급의 학생 수만큼 도서관에서 구입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반드시 4교시에 읽혔으면 한다. 오늘 받은 급식의 소중함과, 밥알 한알한알의 귀중함을 제발 깨달았으면. 버려지는 잔반을 보며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제발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그건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가슴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미룰 수 없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인간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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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1-10-30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학급의 아이 수만큼 학교 도서관에서 도서를 확보하여 점심 시간 전에 다함께 읽기! 너무 좋은 생각이네요. 책도 가슴 찡했지만, 리뷰는 한 번 더 가슴을 울리네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마노아 2011-10-30 17:40   좋아요 0 | URL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몰라요. 그러고 나서 급식을 먹었는데 어느 선생님이 지나치게 반찬을 많이 가져와서 다른 선생님이 너무 많이 가져온 것 아니냐, 다 먹겠냐 하시니, 어차피 남는 거라며 배부르면 먹고 남기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눈을 흘겼답니다.ㅜ.ㅜ
이런 책은 학교 차원에서 많이 구비해서 모두가 읽게 해야 해요. 그게 곧 평화교육 통일교육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