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53 호/2011-10-10

팔만대장경 1천 년 장수의 비밀은?
과학향기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9월 23일부터 열린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으로 한창입니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여든 현장입니다.

“목판 인쇄술의 극치다”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서 쓴 것 같다”

“세계의 불가사의다”

네~ 대장경을 감상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해인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이 간행된 지 자그마치 1천년이 됐다고요?

담당자 : 정확히 말하자면 2011년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고려대장경이 제작된 지 1천년이 되는 해입니다. 1011년 대장경을 제작하기 시작해 1087년 초조대장경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1232년 몽골군의 침입에 의해 불타 버렸지요. 현재의 팔만대장경은 1236년 새로 제작에 들어가 1251년 완성된 것입니다. 대장경은 역사와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자산이지만 과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계의 인쇄술과 출판물 발전을 가져왔지요.

유 기자 : 그런데 나무로 만들어졌음에도 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깨끗하게 보존돼 있다니, 어떻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걸까요?

종이 전문가 : 그렇죠. 습기에 뒤틀리거나 썩기 쉬운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사 결과 재목(材木) 선정에서부터 그 비밀이 숨어있었습니다!

건축가 :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대장경을 보관해 둔 곳인 장경판전을 보십시오, 이런 놀라운 건축법이 사용되다니!!

유 기자 : 아니, 도대체 어떤 비밀들인겁니까? 네?


팔만대장경은 1251년에 완성됐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은 8만 1,258판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양인가 하면 판들을 차곡차곡 쌓았을 때 높이가 약 3.2km로, 백두산(2.744km) 보다 높다. 총 무게는 무려 280톤이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대장경이 유명한 이유는 단지 양 때문이 아니다. 목판 하나하나,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일정한 판각수준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렇게 잘 만들어졌어도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장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를 따라가 보면, 곳곳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목재 선정과정을 살펴보자. 경판으로 쓰일 재목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40~50년씩 자란 나무 중 굵기가 40cm 이상으로 곧고 옹이가 없는 나무가 선택됐다.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가 사용됐다.

판각지로 옮겨진 나무는 바로 사용되지 않고 바닷물 속에 1~2년간 담가 뒀다. 그 후 경판 크기로 자른 뒤 소금물에 삶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금은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경판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건조할 때는 물이 잘 빠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가건물을 지어 약 1년간 정성을 기울였다.

경판에 글자를 새겼다고 작업이 끝난 게 아니다. 경판끼리 서로 부딪히는 것을 막고 보관 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마구리 작업을 했다. 마구리 작업은 경판 양 끝에 경판보다 두꺼운 각목을 붙인 후 네 귀퉁이에 구리판으로 장식한 것을 말한다. 그 후 옻칠을 했는데, 이 작업 역시 장기간 보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완성된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장소 역시 중요하다. 목판의 보존에 적합한 환경은 섭씨 20도 내외, 습도 80% 이하다. 그런데 장경판전의 기후는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판전 내부 습도는 여름 평균 89.09%, 겨울 평균 75.91%로 일반적인 목재 보존 기준보다 높은 편이다. 온도는 여름 평균 섭씨 19.81도, 겨울 평균 2.74도로, 겨울 옥내 온도 기준치보다 매우 낮게 나타났다. 적절한 목재 보존 환경 기준을 벗어나는 판전 내부의 환경 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경판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연환기’ 덕분이다.


[그림 ]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팔만대장경 목판을 들고 있는 팔만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성안 스님.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지역(해발 700m)에 지어졌다. 판전 건물은 네 방향으로 각각 마주 보도록 설계돼 건물 자체의 통풍이 원활하다. 또 가야산 지형의 특성 상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 환기가 가능한 곳이다.

건물 내부는 보관기능을 최대한 살려 단순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축기술은 살창에 숨어있다. 벽면의 위 아래,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다르게 해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만든 것이다. 이 간단한 차이가 공기의 대류는 물론 적정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건물 바닥은 땅을 깊이 파서 숯과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 등을 뿌렸다. 이는 비가 많이 와 습기가 차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고 반대로 가뭄이 들면 바닥에 숨어 있던 습기가 올라와 자동적으로 습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선조들의 지혜로 대장경이 1천 년간 잘 보존돼 왔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현대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양한 보존방법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경판 각각의 모습과 내용을 담는 디지털화 작업이다. 그 외에도 현재의 목판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면서도 폭넓은 활용을 위해 인청동으로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조성하기 시작했다.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은 오는 11월 6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국보 32호이자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 숨쉬는 이곳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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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10-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만대장경 목판으로 직접 찍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방에서(목판 보존을 위해 더이상 안찍는대요.) 차 마시고 놀았는데 막 만져도 보고 ㅎㅎㅎ 스님 이거 비싸요?, 이런 저질 질문이나 하면서요 ㅎㅎㅎ
응 다시 생각해 보니 좀 영광스러운걸요 ㅎㅎㅎ

마노아 2011-10-14 13:29   좋아요 0 | URL
오오오, 영광스런 자리에 계셨군요. 만져보기까지 했다니 부럽습니다아!!
그 방에서 마신 차는 더 깊었을 것 같아요.^^ㅎㅎㅎ

달사르 2011-10-1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인사 안 오시나요? 저 무료티켓 있는뎅.
하하하. 마노아님이 오실 생각이 있으심 티켓 슝~ 보내드립니닷!

마노아 2011-10-14 13:30   좋아요 0 | URL
아아, 근사한 곳이에요. 가보고 싶지만 넘흐 멀어요.
서울 안에서 출퇴근 하는 것도 체력에 부쳐하는 이 저질체력으론 엄두가 안 나요. 흑흑....ㅜ.ㅜ

차좋아 2011-10-14 15:58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해인사는 가야산 중턱에 있지만 버스가 절까지 들어가요. 버스타고 가는 것 자체가 힘들수도 있긴 하지만 산은 안 타도 돼요. 한 번 가보세요. 해인사 좋아요 가야산도 좋고 거기 해인사 마을에 삼일식당(맞나?) 능이버섯 정식도 좋아요.ㅎㅎ (막 아는 척..ㅎㅎㅎㅎ)
'...오실 생각이...' 달사르님 해인사 근처 사세요?ㅎㅎ

마노아 2011-10-14 16:01   좋아요 0 | URL
방학과 같이 평일에도 쉬는 날에 다녀와야겠어요. 근데 이러면 겨울에 춥다고 또 몸을 웅크리겠죠.
암튼 해인사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달사르 2011-10-14 16:15   좋아요 0 | URL
차좋아님; 해인사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살아요. ^^
오! 삼일식당. 저도 이번에 가게 되면 저기 들러야겠네요. 능이버섯 정식. 흐릅.
마노아님; 오실 계획 잡으시면 미리 연락 주시어요. 참고로 유료 티켓 값은 일만원입니당. ㅎㅎㅎ 한 서너 장은 여분이 있으니 언제라도!!!

마노아 2011-10-15 10:55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이 든든하게 남쪽을 지키고 계시네요.^^
달력을 뒤져보며 머리를 굴려봤는데 행사 기간 내에는 어림 없을 것 같아요.
이번주는 근무하는 날이고, 다음주는 결혼식을 가야 하고, 그 다음주는 또 근무하는 날인데 주일은 또 지켜야 하니까요. 역시 방학이 아니고는 갈수가 없겠어요. 무척 아쉬운 일이에요. ㅠㅠ

무스탕 2011-10-1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천 해인사는 어려서부터 가보고 싶었던곳중 한곳이에요. 그런데 나이 40이 넘도록 아직도 못가보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중국만하거나 미국만하면 말을 안해요. 이걸 어쩌면 좋아요 ㅠㅠ
정말 선조들의 지혜는 말문을 열지 못하게 만드네요. 천년전에 저런 과학적 원리를 어떻게 알아내서 만들고 보존하고 하였을까요? 그저 감탄이옵니다!!

마노아 2011-10-14 15:48   좋아요 0 | URL
다음 번 휴가는 합천으로 정하는 겁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예전에 처음으로 연구수업할 때 주제로 잡은 것 중 하나였는데, 장경판전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서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정말 선조들의 지혜에 무릎 꿇었다니까요.

BRINY 2011-10-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KBS에서 하는 '다르마' 봤어요. 묘하게 종교적 영감이 꿈틀대더라구요. 고등학교때 성 프란치스코에 맛이 갔었던 때처럼요.

마노아 2011-10-17 08:26   좋아요 0 | URL
오, 궁금해져요, '다르마!' 고등학교 때 이미 영감이 번뜩이는 사람이었구요, 브라이니님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