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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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의 가이드북 혹은 축약본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이다.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역사작가 프랑수아 미쇼의 글에 귀스타브 도레가 19세기 후반기에 삽화를 그린 '십자군의 역사'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물론 그 책을 발견하고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무려 30년이라는 기다림이 동반된다.
긜고 이제 그녀의 다른 저작물들이 차례대로 마쳐지고 '십자군 이야기' 차례가 닥쳤을 때 도레의 그림이 다시금 빛나게 되었다.

모든 페이지의 그림을 다 사진으로 옮기진 못하고 열 컷만 찍어보았다.

오리엔트의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십자군 전사들의 모습이다.
중세에 동양과 서양의 경제적 규모는 전적으로 동양의 우위였다.
오리엔트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에 십자군 전사들의 눈과 속이 함께 뒤집혔을 것이다. 당시에 유럽은 시골 촌구석이라고 해도 무방했을 정도니까.

'불의 시련'에 도전하는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이다.
자신이 한 말이 옳은지 그른지 신의 증명을 받기 위해 타오르는 불길 속을 맨발로 지나가는 것을 '불의 시련'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촉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바르톨로메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창촉이 가짜로 의심을 받자 신의 증명을 받겠다며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심한 화상을 입고 9일 후에 죽고 만다.
그 자신 홀로 망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겠지만, 그를 믿어준 툴르즈 백작 레몽까지 망신살을 뻗치게 했으니 김어준 표현으로 하면 그레이트 빅엿쯤 되겠다. 십자군의 아이콘이 되려다가 꼬깔콘이 된 모양새다.

예루살렘 공성전의 모습이다. 성벽과 같은 높이의 목재 탑을 만들어 공격하는 전법인데 사막에서 나무를 구하기란 별따기! 베네치아 상인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공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두번째 총공격도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을 끝내 차지한 제1차 십자군 되겠다.

포로의 몸이 된 서유럽의 여인들이다. 제1차 십자군과 그 이후 십자군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제1차 십자군을 따라나선 여자가 주로 순례자나 창부였던 데 반해 그 이후의 십자군 원정에는 대부분 고위층 여자들이 동행했다는 것이다.
특히 제2차 십자군 원정 때는 프랑스 왕 루이의 왕비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동참했다. 왕비가 움직이니 당연히 시중을 드는 시녀들도 따른다. 이들은 이슬람군과의 전투에 패하면 이슬람측의 포로가 되어야 했다.
이슬람에서는 몸값을 치르면 풀어주는 관습이 있기에 지위가 높은 여인들은 몸값을 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돈을 지불할 능력도 없고, 대신 지불해줄 사람도 없는 여인들의 운명이란 가혹할 뿐이다. 이들은 먼저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를 강요받은 뒤에 어느 태수나 장군의 하렘에 넣어졌다. 코란에서는 이교도와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병자호란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무수한 여인들과 가난한 이들이 떠오른다.

처음 십자군과 맞닥뜨렸을 때 이슬람 세력들은 그들이 내세운 '성전'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컷 분열되어 있어서 자기들끼리 다투기 바빴던 이슬람 세력들을 통합해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게 만든 이가 살라딘이었다.
그가 등장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한판승부가 가능해질 것이다. 제1권에서는 아직 그 내용까진 나오지 않았다.

십자군이 활용한 갖가지 공성기들이다. 이런 식의 공성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무기에서도 곧잘 보여지던 것들이다.
이런 공성기를 사용하려면 현지에 가서 만들기보다 본국에서 제조해서 현지로 옮기는 것이 나았다. 이때 크게 활약한 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도시국가라서 인구가 적었다. 영토형 국가인 프랑스나 영국에 비하면 10분지 1밖에 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인데 꽤 약해진 모양새지만 아직까지는 철옹성을 유지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무너지던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중 제1편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프랑수아 미쇼의 책 '십자군의 역사'에 백여 장의 삽화를 그린 귀스타브 도레가 그중 단 한 장도 그리지 않았던 것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끈 제6차 십자군이라고 한다. 프리드리히가 이끈 제6차 십자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십자군이었다. 그러나 파문을 당한 황제가 주도한데다 이슬람교도를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로마 교황은 제6차 십자군을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나 독실했으면 그것을 존중하여 그 후 600년 뒤의 사람이었던 도레는 프리드리히 2세를 그리지 않았을까?
그를 소개하기 위해서 시오노 나나미는 상(像)으로 대체했다. 그나마도 어느 열혈(!) 그리스도교도가 집요하게 부숴버린 상으로 말이다. 이집트의 신전에서 자주 보았던 십자가 형상의 파괴된 자국이 떠오른다.

사진이 흔들렸지만 아쉬운대로 쓰자.
주인공은 이집트의 여자 술탄이다.
이슬람 왕조가 들어선 이집트이기에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등장하던 때의 복식이나 느낌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교도의 땅에 버려진 성묘교회다.
1291년, 오리엔트의 그리스도교도들이 마지막으로 농성을 벌이던 도시 아코가 함락되었다. 제1차 십자군으로부터 벌써 2백 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렇게 2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귀스타브 도레는 아코의 아비규환을 그리는 대신 처연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성묘교회를 그렸다. 그의 신심은 참으로 깊었나보다.

총 4권의 책으로 이 시리즈를 구상한 시오노 나나미는 뒤의 3권을 1막,2막,3막으로 구성하고, 맨 앞에 이 책을 냄으로써 프롤로그의 성격을 더했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배치하고 그 옆에는 그림이 진행되고 있는 곳의 지도와 설명을 더했다. 모든 페이지가 다 이런 식의 구성을 따른다.
그림이 왼쪽에 배치되고 지도와 설명이 오른쪽이었다면 우리나라 사람의 읽는 방향으로는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일본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읽어서 이런 방향이 된 것이 아닐까? 뭐, 나의 상상이다.
재밌게 읽은 이 책에서의 유일한 옥의 티랄까.
아, 오타도 하나 있었다. '목재'를 '목제'라고 쓴 것. 위 세번째 그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어찌 보면 두꺼운 양장본으로 폼잡고 펼쳤는데 너무 심심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십자군 이야기의 전체 실루엣을 잡아주는 가이드 역할로서 꽤 훌륭했다고 여긴다. 이 책에 이어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으니 먼저 만났던 그림과 설명을 떠올리면서 이해를 도왔다. 자신의 의도를 충실히 담아 만든 책이리라.
개인적으로는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보다도 짧게 설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글들이 더 눈길을 잡았더랬다. 역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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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10-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차라리 이 책을 살 걸 그랬군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저를 실망시켰어요.ㅜㅜ

그림은 낫겠군요....

마노아 2011-10-12 09:43   좋아요 0 | URL
이 책 별로라는 리뷰도 보긴 했는데 저는 괜찮았어요.
그림도 좋았고, 간략한 설명도 쉽게 이해가 되고 지도도 있고요.
책이 좀 비싸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