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그랬어요 - 열일곱을 위한 청춘 상담, 2011년 문광부 우수문학도서
문경보 지음 / 샨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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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보 선생님의 책은 이전에도 자주 나를 울렸다. 이번에도 피해갈 수 없는 코스였는데 하필 그런 책을 지하철 안에서 읽은 게 실수였다. 그날은 언니가 준 메이크업 상품권으로 모처럼 풀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나는 내내 훌쩍였고, 화장을 마친 뒤에도 콧물이 나와서 혼이 났다.  

문경보 선생님은 대광고등학교에서 22년 동안 국어 교사를 맡으셨다. 내가 교생실습을 갔던 곳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글은 더더욱 현장감 있게 그려지고 다가온다. 건강의 악화로 한 템포 쉬어갈 짬을 만든 선생님은 상담심리학을 공부하셨고, 이젠 학교를 떠나서 전문 상담가의 길을 걷고 계시다. 이 책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 '효도의 길'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부모님을 비롯한 보호자를 모신 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미리 작성한 편지글을 읽을 때면 학생도 참관한 가족도 모두 눈물 바람이 되기 일쑤였다. 

진수가 쓴 글은 짧았다. 글씨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 엉망인 글씨를 쓰기 위해 뇌성마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진수가, 손을 사용하기가 부자연스러운 진수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나는 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저를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110쪽

평범하게 사는 일이 모두에게 어렵긴 하지만,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진수에게는 '평범'이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아득한 거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것을 온몸을 던져 일궈주신 할머니의 헌신과 그에 대한 고마움이 짧은 글속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도 뇌성마비를 앓는 학생이 있는데 수업시간에 엄청 집중해서 듣고 시험기간이 닥치면 엄마가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서 모두 필사를 해주신다. 그리고 그걸 통째로 외어와서 시험을 본다고 하는데, 학급에서 줄곧 탑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결석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그 위에 더 큰 노력을 더하고 있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아들! 울지 마! 난 네가 담배보다 소중해. 왜 담배 때문에 우리 아들이 울어야 해? 괜찮아. 울지 마. 엄마 괜찮아!” -141쪽

고생고생하며 자신을 키우신 엄마에게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편지를 읽다가 울어버린 아들에게 뒤에서 듣고 계시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괜찮다고 말하는 이 장면도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맞는 얘기다. 담배보다 당연히 아들이 더 소중하다. 야단만 치고 다그칠 일이 아니라 먼저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게 우선이었다. 레벌루션 넘버0에서 아들이 교사에게 맞아 이빨이 나갔는데도 으레 아들 잘못이겠거니 여기며 왜 맞았는지 묻지도 않던 아빠가 떠오른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저는 제 아들들이, 그리고 여기에 앉아 있는 노민이 친구들이 모두 앞으로 더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부모님 때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들들의 등에서 히말라야 산을 오른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린 것처럼, 여러분 자체로 우리 부모들은 이미 충분히 부자가 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우리 부모들에겐 최고의 보석이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건강한 부자들이 되기 바랍니다.-150쪽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업고서 등산을 했던 이야기가 나온 뒤 아버지가 아들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전해주신 얘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 왜 그 학교에 가고 싶니, 너 왜 그 학과에 진학하고 싶니,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이런 질문들을 받는 학생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다. 열정보다 중요한 것이 열정을 쏟는 방향이라고, 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모님께 보석이라는 것도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건강한 부자가 되기를! 그것이 물질적인 의미뿐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로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추천사에도 나오지만, 선생님의 상담 공부는 아직 시작 단계인지라, 때로 열정이 앞서서 아주 적합한 조언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면에 깔린 학생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뜨거운 우정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열일곱 새파란 청춘들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마음에 기대었을 것이다. 

제목처럼, 아이들의 많은 일탈들은 외로움에서 기인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싶게 가혹했고, 세상은 이 상처입은 아이들에게 늘 차가운 등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그 아이들에게 슈퍼맨처럼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능력이 누구에겐들 있을까. 그렇지만 그 아이들의 거친 손을 보듬어 주며, 네가 외로워서 그랬구나, 속상해서 그랬구나...라며 그 마음부터 인정해주고 다독여주는 일은 고맙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어린 학생들 뿐아니라 이미 다 큰 어른들도 늘 마음으로 필요로 한다. 그만큼 외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학생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제 비록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셨지만,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외로운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줄 길을 모색하고 계실 것이다. 다음엔 교단 에세이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주지 않으실까.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무르며 가슴 적시는 이야기를 해주셔야하니, 당신의 건강도 꼭꼭 챙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새 힘을 얻은 제자들이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게 훌륭한 멘토가 있었다는 걸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덧글)예쁜 책에 오타가 몇 개 있다.  

51쪽 세 번째 줄 사의 화원 >>천사의 화원
72쪽 쌩까고 지네요. >>>지내요.
152쪽 윤향기 작사작곡>>>윤항기
185쪽 처리해야 한 가지 일>>>처리해야 할 한 가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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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9-3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단락이 또 제멋대로 이동했어..ㅜ.ㅜ

개인주의 2011-09-3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이랑 가까운 곳에 있습죠..
학생들 지켜보면..ㅆㄱㅈ 생각이 들다가도
금방 '불쌍한 것들' 생각이 들어요.
교사와는 다르니까 친근하게 혹은 만만하게 일상을 까놓는 위치다 보니..-ㅗ-
고놈들....외로움.
털어버릴 수 있는 대안이 없어서 더 외로워하고 날카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당..
이럼서..
애들 보면 짜증냄.;


마노아 2011-10-02 23:11   좋아요 0 | URL
학교 현장에선 그 두 마음이 늘 부딪혀요.
한숨도 나오고 안타깝기도 하고요.
우리 마음도 갈대 같아요.^^;;

같은하늘 2011-10-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도 이런 시기를 거쳐갈텐데...
미리미리 읽어보고 공부(?)해둬야 할라나 보다.

마노아 2011-10-02 23:12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에요. 문경보 샘의 다른 책들도 같이 읽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