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아스와 수호천사 읽기의 즐거움 2
수산나 타마로 지음, 우테 크라우제 그림, 유혜자 옮김 / 개암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열 살 마르티나는 세상의 수많은 말들에 대해서 고민한다. 사람의 언어, 동물의 언어, 그리고 사물들의 말까지...
수줍은 소녀 마르티나는 학교에서 좀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말 못하는 사물들과 대화를 하는 마르티나, 그러면서 급우들과 선생님께는 말도 잘 하지 못하는 마르티나가 그들 속에서 외톨이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마르티나가 이렇게 된 데에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 실직 상태에 계신 아빠와 청소부로 일하는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시기에 바쁘다. 서로의 불행으로 가라앉아 있는 두 부부는 어린 딸의 심리 상태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아이가 보내는 무언과 유언의 신호를 모두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감정에 치우쳐 아이를 나쁜 딸로 느끼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마르티나에게 유일한 힘이 되어준 존재는 외할아버지다.   

 

마르티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유일하게 할아버지만이 뒤죽박죽 시끄러운 말과 날카로운 화살말, 그리고 얼굴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무서운 말을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집에 와서 마르티나의 숙제를 봐주고, 마르티나와 놀아주고, 마르티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소중한 할아버지.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소식도 없이 오시지 않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할아버지가 오는 것을 싫어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큰일이 난 것은 아닐까. 어느 쪽도 마르티나에겐 상상하기도 싫은 이유들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었지만 마르티나의 집 재정 상태로는 무리수였다. 그러다가 마르티나가 금붕어를 데리고 왔는데 이 야만스런 부모님은 금붕어를 변기 속에 흘려버리고 말았다. 백번 양보해서 실수였다고 해도 마르티나가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컸겠는가. 이때도 할아버지가 나서서 금붕어가 더 넓고 좋은 곳으로 갔다고 마르티나에게 일러주었다. 언제든 그렇게 질문에 답해 주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던 소중한 할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부모님의 연이은 싸움과 학교에서의 부조화까지, 모든 것이 마르티나를 힘들게만 한다. 결정적으로 이 무식한 부모님들이 서로 거칠게 싸우고는 열살 짜리 아이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아무도 남겨질 아이를 책임지지 않았고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집을 나간 것은 엄마와 아빠지만, 마르티나가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결국 마르티나는 집앞 밤나무의 조언에 따라 집을 나서기로 했다. 밤나무는 네 운명을 찾으라고 했다. 운명이 뭐냐는 질문에 밤나무의 대답은 훌륭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운명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근사하다.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니! 그렇게 말해 준다면 '운명'이라는 말이 덜 무섭고 덜 고단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어깨 움츠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살 짜리 아이가 추운 겨울에 집을 나서서 갈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마르티나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쓰레기통 안에서 잠이 든 마르티나를 찾아낸 것은 트룰라 부인이다. 본인의 가혹한 기억으로 살짝 정신줄을 놓은 이 아주머니는 마르티나를 잃어버린 물건의 나라로 데려온다. '잃어버린 물건의 나라'란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있는 트룰라 아줌마의 움막집이다. 엄마 아빠에게 자신이 나쁜 애로 통했다는 아이의 고백이 참 마음이 아팠다. 나쁜 아이의 정의라는 것이 엄마 아빠가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갖고 결혼 생활을 하게 된 부모는 채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큰 책임을 맡게 되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발목을 잡은 아이라고 은연중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분명 전염병처럼 아이에게 옮겨갔을 것이다.  

마르티나는 트룰라 부인 집에서 아토스라는 토끼와 친구가 된다. 토끼와도 말이 통하는 마르티나. 여기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제가 등장한다. "계속 도망치는 사람은 그 어느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다라는 게 진리라는 것."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 아토스는 말한다. "진리는 너를 네 운명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야." 

밤나무가 토끼가 되어 다시 마르티나를 격려해 주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제목에도 등장하는 '수호천사'도 만나게 된다. 가장 어렵고, 가장 외롭고 힘든 시간, 그래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마르티나는 수호천사를 만났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천사는 설명했다. 아이들의 수호천사는 아이가 위험에 빠질까 봐 몹시 긴장된 모습으로 대기 중이라나. 

수호천사도 마르티나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들은 자신이 지키는 상대가 옳은 결정을 내리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때의 결정이란 운명을 만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 반복해서 운명이 등장한다. 아직 어린 마르티나에겐 벅찬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어린 아이도 제 운명에 지쳐서 지금 나름대로의 개척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맺음글에서는 아이를 통해서 집안에 행복이 찾아온다.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철없던 부모가 얼마나 놀랐을까. 영영 아이를 찾지 못하면 자기 자신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마르티나는 행복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동안 오시지 못했던 거였는데, 어린 마르티나는 할아버지의 부재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에 노출되고 겪어야 했다. 시련은 왔지만 그 고비가 현실을 이겨낼 새 힘이 되어주었다.   

수호천사의 부모님에 대한 진단이 마음에 남는다.

   
 

"너의 부모님은 그동안 너무 불행해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잘 모르고 살았어. 나쁜 사람들은 아니고, 너를 사랑하면서 그것을 너한테 잘 보여 주지 못한 것뿐이야. 두려움의 포로가 된 거지."

"왜 두려워하는데요?"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안타까워하는 거야. 그들의 미래는 바로 너야. 인간은 행복에 대해 종종 두려움을 느끼지. 행복이 바로 앞에 있어도 그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지 않아. 행복을 식인종보다도 더 무서워하지."

 
   

비록 잃어버려본 다음에야 소중한 것의 존재를 깨닫는 어리석은 인간들이지만, 늦더라도 다시 시작하려는 기특한 마음을 가진 게 또 인간이다. 마르티나의 말은 엄마와 아빠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이제 아이에게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은 분명 그들 사이의 소통의 벽을 허물어 줄 것이다.  

번역을 맡은 유혜자 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말도 수줍음을 타고 겁쟁이에 낯가림도 많이 한다고 표현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말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같은 감정적 표현도 가능하고, 또 그렇기에 말을 얼마나 가려서 잘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새겨본다. 마르티나의 부모님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되니까... 

 

그림이 정겹고 따스하다. 색채도 포근하고, 제목의 어감도 참 좋다. '토비아스'는 할아버지의 강아지란 뜻에서 마르티나가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원제는 Tobia E L'Angelo이다. 

덧글) 65쪽 마지막 줄에 "아예 먹지도 하지 않았어."는 의도된 것인지, 단순히 비문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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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3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순오기 언니 서재에서 본 책인데
예쁜 그림이 있었네요... 파스텔 톤의 스며들 듯 부드러운 그림이군요.

마노아 2011-07-31 21:51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 작가의 글에 독일 작가의 그림이 조화를 이루었어요. 그림이 참 따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