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아이가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엄마는 암 투병 중에 돌아가셨지요. 소년은 장례식장에서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을 읽어줍니다. 황제에게 편안한 잠을 선사해 주었던 나이팅게일의 노래처럼 소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리며 엄마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이어 소년은 할머니의 시골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런던에서 지내던 아이가 덴마크의 전원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소년의 이름은 크리스티안. 새 학교에 가자마자 목격한 것은 엘리아스라는 동급생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출하지 못하는 슬픔으로 가득차 있던 크리스티안은 엘리아스가 답답합니다. 곁에 있다가 자신에게까지 폭력이 미치자 크리스티안은 더 큰 폭력으로 왕따를 주도했던 학생에게 되갚아줍니다. 그 바람에 부모님들이 다 불려오고 경찰관까지 동원되었지요.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이제 놈은 자신들을 괴롭히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게 마땅하다는 게 아이의 생각이니까요.  

엘리아스의 부모님은 현재 별거 중입니다. 두 분은 꽤 사이가 좋은 의사 부부였지만, 그래서 그것이 엄마의 큰 자랑거리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한때 외도는 엄마로부터 모든 신뢰를 걷어가게 했습니다. 아내 곁에 머물지 못하게 된 아빠 안톤은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가끔 엘리아스와 동생을 만나러 덴마크에 다녀가지만 그때도 엄마 집에 가지 못하고 별장에서 지냅니다.

 

엄마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것을 빼면 안톤은 이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하루는 크리스티안까지 포함해서 세 명의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가 막내 아이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와 시비가 붙습니다. 그네를 누가 타느냐와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지만 상대 아이는 다소 폭력적인 구석이 있었지요. 안톤은 두 아이를 말린 것 뿐인데 상대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다짜고자 안톤의 뺨을 몇 차례나 칩니다. 그리고는 제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아이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이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습관을 가진 것 같았지요. 안톤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되갚아줘야만 한다고 분개하는 모양새였지요. 특히 크리스티안이 그랬습니다. 앞서 엘리아스를 괴롭히던 아이에게 앙갚은 해주던 때와 똑같은 반복입니다. 두 친구들은 안톤에게 폭력을 쓴 남자가 일하는 자동차 정비소 주소를 알아와서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합니다. 안톤은 아이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 상대 남자를 찾아갑니다. 다짜고짜 폭력부터 휘두른 그 남자가 사과할 리는 만무지요. 안톤도 그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폭력이나 휘두르는 그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역시 상대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주먹부터 날립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전히 안톤이 저 남자에게 졌다고 생각합니다.  

안톤의 생각은 몹시 바른 것이었고 이상적이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것이 진정으로 이겼다고 납득할 수가 없었지요.  더 많이 분개한 것은 이번에도 크리스티안이었습니다. 아이는 창고에서 할아버지가 쓰던 폭죽을 찾아내었고, 화약을 추가해서 폭발하는 실험까지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엘리아스를 자극해서 그 나쁜 남자의 차에 복수하자고 주장하지요. 엘리아스가 주저하던 와중에 크리스티안이 과거 급우를 협박할 때 썼다가 선물로 준 칼을 엄마에게 들키고 맙니다. 엄마는 당장 크리스티안의 집으로 달려가지요.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당장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하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아빠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몰랐으니까요. 아이는 말합니다.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엄마가 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엄마가 죽어버렸고, 또 엄마가 죽기를 바랐다고요. 아빠의 마음이 찢어집니다. 암으로 고생하다가 암세포가 뇌에까지 미쳐서 스스로 죽고 싶어하던 엄마의 고통, 그래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외침, 하지만 그것이 곧 엄마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렸으니까요. 아이가 엄마를 잃은 것처럼 아빠는 아내를 잃었는데, 인생의 반려를 잃은 그 슬픔이 엄마를 잃은 것만큼이나 슬프고 아프다는 걸 알아차리기에 열 두 살 나이는 아직 많이 어리지요.  

안톤의 아프리카 이야기도 해보지요. 의료 캠프에는 매일같이 큰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게 중에는 반군 지도자에 의해 강제로 배가 갈린 임산부도 있었지요. 제 부하들과 함께 태아의 성별을 내기하다가 멀쩡한 임산부의 배를 갈라보는 게 그 반군 지도자라는 자의 행태였지요. 사람들의 그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는 총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의 부하들도 모두 무장을 했습니다. 맨 주먹의 주민들은 가족을 잃고도 억울하다는 표현조차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반군 두목이라는 자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캠프로 찾아온 겁니다. 안톤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무장을 해제한다는 조건으로 놈을 받아주고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아프리카의 간호사들은 안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겐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였으니까요.  

 

이제 엘리아스와 크리스티안은 자체 제작한 폭약을 그들의 공공의 적인 정비공의 차에 설치합니다. 불은 붙여졌고 이어서 화약은 터질 겁니다. 아이들의 순진한 기대처럼 차만 파괴하고 사람은 전혀 안 다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이 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안톤이 앞서 몸소 보여주었던 것처럼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은 악순환의 반복일 뿐, 결코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인지라 이성의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분명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많은 것들을 질문합니다. 당신의 그 이성과 이상과 원칙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 또 어른과 아이의 역할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멈출 수 없는 분노 앞에서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겠지요.  또 죄책감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죄책감이 사람을 얼마나 벼랑 끝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 더불어 자신이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까지도 모두 말해 줍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남한 면적의 절반 가량 되는 땅덩어리에 인구는 500만 명을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 덴마크 안에서도 전원적 풍경이 펼쳐지니 더 외딴 곳이 배경이 되겠지요. 엘리아스의 가족은 스웨덴에서 온 사람들인데 덴마크 사람들이 스웨덴 사람들을 경계하고 적의감을 보이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유럽에서도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정비공의 지위보다 훨씬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정비공의 행태는 그가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고, 또 자신이 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한 것처럼 제 아이도 그런 환경을 되물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 없이 나쁜 것이었지만 그 무지함에 대한 연민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덴마크에서는 아이들의 싸움도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고 정리를 해주지만, 그런 보호장치가 없는 아프리카에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나은 세상, 더 좋고 안전한 세상은 모두가 꿈꾸지만 그 세상은 참으로 멀게만 보입니다. 멀고 아득한 그 세상이지만, 또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한 것이 우리 모두의 딜레마이지요. 지금 당장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하고 평안할지라도, 이웃의 아픔은 당신의 심장을 쿡쿡 찌를 게 분명하니까요.  

영화 속에서 던져지는 복합적인 질문들은 인류의 보다 깊은 성찰을 지속적으로 요구합니다. 당신이 만나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여성 감독 수잔 비에르는 어려운 주제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펼쳐 나갔습니다. 아이와 어른 연기자 모두 상처입은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고 가는 목가적 풍경은 인간들의 잔인한 세상살이와 대조적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들도 마찬가지로 훌륭했고요.  유수한 상들을 휩쓴 것도 모두 공감이 갑니다. 더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제8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2011)
제6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2011)
제41회 인도국제영화제 (2010)
제5회 로마 국제영화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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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6-25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수냐..용서냐...꽤 어렵겠는데요~~ㅋㅋ
연기도 기대되고, 몰입도도 꽤 될것같은 스토리일것같아요~~
좋은 영화 알고 갑니다...보러갈래요~~

마노아 2011-06-25 10:2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주제죠? 영화 참 괜찮았어요. 블루데이지 님도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다녀오셔요~ ^^

마녀고양이 2011-06-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군요, 폭력에 폭력을 언급하신 영화가....
그러게요,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악순환일 뿐이라고 하신데 깊이 공감하게 되네요.

마노아 2011-06-27 14:24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 복수와 용서를 테마로 한 영화를 리스트로 만들어 봐도 꽤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복수만 다룬 영화보다는 아무래도 화해와 용서를 말할 때 더 찡할 것 같아요. 말과 가슴이 일치하기는 참 어렵지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