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열차 작은 동산 2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9년 12월
절판


한국전쟁을 다룬 그림책인데 작가가 모두 외국 이름이어서 눈길이 갔다. 글을 쓴 이의 외할머니의 경험을 책으로 옮긴 것인데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었다.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이 수미인데 작가의 이름 헤미와도 어감 상의 공통 분모를 노린 건 아닐까 싶다.

첫번째 그림은 시원하게 뻗어있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모습이다. 작품의 배경이 수미의 엄마가 갓 태어났을 때의 한국전쟁이니까 수미의 나이를 고려하면 80년대 초 쯤으로 봐야지 싶다. 당시 우리나라 열차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나무 통나무집도 우리나라 정경은 아니라고 본다.
80년대에 저런 부엌 싱크대도 역시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뚝배기는 한국스럽지만 오븐렌지는 좀...

주인공 수미는 외할머니와 함께 꽃마을에 산다. 어감이 어쩐지 꽃동네를 연상시킨다. 엄마는 군복무 중이고 아이는 5시면 지나가는 기차를 날마다 보는 취미가 있다.
며칠 뒤면 수미의 생일. 오지 못하는 엄마가 선물을 먼저 보냈다.
엄마가 그리운 수미는 심통이 나버린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우리네 정서를 생각하면 역시 그림이 외국 사람이 그린 티가 난다.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봉투 공장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지난 봄에 군대에 가셨다. 군인이 되면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학비가 나온다는데, 그 학비는 엄마의 학비라는 의미일까?
아무튼 엄마가 군대에 입대한 것도 우리네 분위기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어느덧 할머니도 나오셔서 수미 곁에 앉으셨다. 그리고 기차를 보면 떠오른다는 할머니의 추억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에게 기차가 주는 연상은 춥고 고단했던 한국전쟁의 순간이고 이별의 시간이다.

외할머니 부부는 서울에서 살고 계셨는데 그림을 보니 꽤 부유했나 보다. 자개장식이 들어간 문갑도 그렇고, 그 위에 놓여진 도자기며, 밥상에 놓인 신선로까지!
근데 수미의 외삼촌은 젓가락질을 잘 못하네...^^
외할아버지는 왼손잡이고.

외할머니 부부는 전쟁이 났을 때 깜깜한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면서 버텼다.
외할아버지는 한시 바삐 피난을 떠나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집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텼는데 추운 겨울날 중공군에 의해서 다시 UN군이 후퇴하자 할아버지는 끝내 피난행을 결심했다.
보따리 세 개와 그들 네가족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무사히 강을 건너 남쪽으로 하염없이 걸었던 외할머니 가족.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겨우 잡았지만 좌석이 없었다.
마지막 열차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께 기차 지붕 위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은 자원입대하겠다며 아이들을 맡기신다.
난 이 부분이 상당히 불만이었는데, 달리 가족을 돌봐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애국심에 겨워 가족을 위험한 피난길에 방치한 채 군으로 간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용납이 안 됐다.
실제로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전기 기술자로 전쟁 초기에 북한군에 잡혀가셨다고 한다.
이야기의 감동을 위해서 나름 변형을 준 것 같은데 다소 불편하다.
실제로 대의를 생각하며 자원입대한 분들이 분명 계실 거지만, 그리고 그런 분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지만 씁쓸한 일이다.

부산에 무사히 도착한 외할머니는 그곳에서 한동네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고 한다. 뭐, 그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무슨 드라마처럼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어째 책을 읽으면서 자꾸 삐딱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린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분이다. 이 작품에 그림을 그릴 때 사진 자료를 많이 참고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자꾸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떠오른다. 뭐, 내 느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은하늘 2011-06-2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해맑은 웃음 여전하시지요?
알라딘에 못 들어오는 동안 마노아님의 그림책 소개 항상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06-24 20:53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거예요? 그 동안 소식 궁금했어요.^^

후애(厚愛) 2011-06-2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6.25 한국전쟁날이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마노아 2011-06-25 10:24   좋아요 0 | URL
네, 오늘이 그날이네요. 마음 착잡한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주말은 즐겁게 보내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