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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3 - 남방의 웅략가 초 장왕 ㅣ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3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강남 지역은 고대에는 변방의 오랑캐 땅이었다. 역시 당대에 오랑캐로 지목되었지만 당당히 춘추의 패자로 군림했던 인물이 초의 장왕이다. 문자는 잘 몰랐지만 유식한 그 어떤 군주보다도 대담하고 자비로웠던 이 웅략가가 춘추전국이야기 3편의 주인공이다. 영웅시대를 열었던 진 문공이 망명객 시절에 30리 씩 세 번 후퇴해 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면, 장왕에게도 그 성정을 엿볼 수 있는 고사가 있다. '절영지회'다. 촛불이 꺼진 찰나 왕을 모시던 미인에게 수작을 부린 자의 갓끈을 여자가 취했으나 장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두의 갓끈을 끊게 해서 그가 누구인지 찾지 않았다. 이때 목숨을 구한 이는 훗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왕을 지킨다.
장왕이 처음 등극했을 때는 한 나라의 군주가 납치를 당했을 만큼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 위기를 겪은 그는 3년간 정사에 손을 놓고 관망하며 때를 노렸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났을 때에는 구정의 무게를 물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구정’이란 주나라 왕실의 권위의 상징인 아홉 개의 거대한 구리 솥으로 제후들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때였다. 이후 춘추의 강국들은 모두 자중지란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할 때 장왕은 솟구치는 기세로 북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춘추의 두 번째 패자였던 진나라를 필의 싸움에서 이기며 누른다. 하지만 장왕은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는 멈춤을 아는 드문 군주였다.
“응당 승리의 군영을 만들고 적의 시체를 모아 경관을 만드시지요. 듣건대 적을 물리치고는 반드시 자손에게 고해 무공을 잊지 않게 한다고 하더이다.”
그러나 장왕의 생각은 달랐다.
“이는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대저 武라는 글자는 ‘창을 멈춘다(止+戈)는 뜻이다.”
이것이 유명한 창을 멈추는 무, 곧 ‘止戈之武’라는 고사의 기원이다. 후대에 지과지무는 무인들의 이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충무공 이순신의 칼에도 ‘지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203쪽
그의 목표는 북쪽을 경계케 한 뒤 동쪽으로 뻗는 것이었다. 동쪽의 무수한 작은 나라들이 초나라 앞에 굴복했다. 초의 군사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심지어 성을 에워쌌을 때는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기다리는 군대였다. 그런 군대를 앞에 두고 성안에서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의 진군 속도는 빨랐다. 무너진 동쪽의 나라들은 초의 지배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 장왕이 그들을 무력으로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랑캐 소리를 듣는 남쪽 땅의 군주였지만 그 덕은 중원의 도를 이미 넘어섰다. 그러니 그런 그를 중국의 정신이 놓아둘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초 장왕의 북벌은 중국사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 ‘오랑캐 군주’가 중원의 군주보다 낫다? 오랑캐의 우월을 인정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즉각 화하인 특유의 민첩성이 발휘되었다. 물론 중원이 오랑캐보다 못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초의 오랑캐라는 꼬리표를 떼면 될 것 아닌가? 장왕 이래 초는 중국사에서 더 이상 오랑캐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국시대가 되면 초는 대국이자 문명국으로서 위상을 떨친다. 이후 북방에서 유가와 법가 철학이 무르익고 있을 때 남방에서는 기술학과 노장 철학이 만개하게 된다. 남북의 우열 시대는 끝난 것이다. – 227쪽
하지만 초의 기세가 일방적으로 뻗어나갈 만큼 춘추 시대가 만만하지 않았다. 초의 동방 진출은 초나라보다 더 오랑캐 취급을 받던 오의 각성을 불러왔다. 춘추 시대 다음 패자가 등장할 분위기가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초가 싸움에서 유리할 수 있었던 승리의 요인으로 저자는 구리를 언급했다. 또 이제 등장할 오나라는 전차가 아닌 뱃길을 이용해서 싸움에 임하고 운하를 파는 것도 설명해 준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지형적 조건이 이들의 운명을 많이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자'는 구체적인 사람 이름이 아니라 책 이름이었다고 결론지은 것이 눈길을 끌었고, 마지막에 나온 저자의 초 땅 답사기도 관심을 끌었다.
3편은 1편이나 혹은 2편보다는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기는 했다. 한 인간으로서 초 장왕은 진 문공보다 내게 더 매력적이었고, 그를 보좌한 손숙오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관료였지만, 그래도 관중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렇다 해도 좀 더 후대로 넘어오니 보다 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더불어 피의 전국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나올 4권은 '위대한 재상들의 시대'라고 한다. 천하를 주름잡는 패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런 패자를 있게 한, 혹은 그런 나라를 상대로 작은 나라를 지키려고 애를 쓴 빼어난 재상들의 이야기도 심장을 들뜨게 한다.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건 역시 그 안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번 편에서도 오자가 몇 개 눈에 띄었다.
60쪽 수신제가체국평천하>>수신제가치국평천하
82쪽 그러나 초의 한 개 현은 작은 나라에 해당했다. >>문맥상 '그러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153쪽 손숙오가 죽자 장왕은 그 아들에게 비옥한 토지는 내렸는데>>>토지를 내렸는데
223쪽 저의 아비 무외는 죽을 줄 알았으니 >>알았으나
그리고 내 책은 새 책인데도 앞쪽 약 60쪽까지는 제본이 들떠서 종이를 넘기자 모두 낱장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몹시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