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이야기 2 - 영웅의 탄생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춘추전국이야기 1편에서는 춘추의 질서를 설계한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관중을 등용한 제 환공이 어떻게 춘추의 첫번째 패자가 되었는지를 몹시 드라마틱하게 서술했다. 2편의 주인공은 두번째 패자 진 문공이다. 진 문공을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앞서의 이야기가 성인과 영웅의 과도기적 인물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그가 제시하는 성인과 영웅의 구분이 흥미롭다.

영웅이 어떻게 권력을 버릴 수 있는가? 독수리가 어떻게 먹이를 측은하게 여길 수 있는가? 권력은 바로 힘이다. 영웅은 힘을 가진 사람이다. 영웅은 권력을 버릴 수 없지만, 성인은 버릴 수 있다. 또 영웅이 어떻게 뭇 사람들의 칭송을 거부할 수 있는가? 영웅은 힘을 뿜어내고 뭇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그러나 성인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 11쪽

성인의 개성은 독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의 개성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다. 성인은 커다란 어머니다. 성인은 오직 부계사회가 고착화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모계사회의 잔영이 남아 있는 곳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웅은 다르다. 권력을 어떻게 남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영웅은 다만 사람을 모으고 적절히 쓸 뿐이다. 수컷들이 역사를 차지한 이후 ‘성인’들은 사라졌다. (...) 관중과 환공은 영웅과 성인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 12쪽

확실히 관중과 제 환공의 이야기는 무림 고수들이 내공을 다투는 이미지였다면, 영웅의 시대로 내려온 진 문공의 이야기는 좀 더 피튀기는 현실적인 느낌이 난다. 저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나라가 위치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설명하고 있다. 평원에 자리한 제나라와 초나라가 풍요롭고 화려하다면, 골짜기에 위치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강한 나라를 곁에 둔 진나라는 근검절약을 일단 피부로 재현해야 했다.  

문공의 처절하면서도 굴곡진 인생은 관중 사후 춘추시대 중원의 확고부동한 패자로 부상하는 진(晉)나라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진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서로는 태생이 무사인 진(秦)나라 사람들을 맞아야 하고, 북으로는 이름 자체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융(戎)과 적(狄)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은 시작부터 이들과의 난타전을 통해 성장했고, 때로는 비굴함도 감수할 만큼 정치적이었다. 이렇게 주변의 강인한 족속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한 진은 강골이었다. 그들에게 관중의 인(仁)한 정치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껍데기를 버리고 서서히 군국주의적인 본색을 드러냈다. 관중은 적이 비도덕적일 때 쳤지만 이들은 적이 약해지면 쳤다. – 15쪽 

 

(동방의 제나라와 남방의 초나라, 그리고 북방의 晉나라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서방의 秦나라 위치를 확인해 보자. 평원과 골짜기의 차이가 선명하다. 가운데 푸른 원은 이름뿐인 천자의 나라 주다.)

망명생활을 무려 19년이나 보내고서 환국한 진 문공의 치세 기간은 9년이었다. 군주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이 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사후는 제 환공이 떠난 뒤의 제나라보다 훨씬 더 튼튼했다. 보다 현실적인 체제를 만들어냈고, 든든한 인재로 둘러싸였던 진나라의 저력이었던 것이다.

진 문공은 아버지 진 헌공은 큰 아들 태자 신생을 제거하고 애첩의 아들을 후사로 삼는다. 그 바람에 문공(중이 공자)과 동생 이오는 각자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동생이 군주가 된 뒤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문공은 19년 뒤에서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때 헌공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창업군주가 장성한 아들을 시샘하는 경우를 설명해 주었는데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진 헌공뿐 아니라 당 태종, 그리고 청나라의 강희제도 그에 해당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넘어온다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좀 다른, 그러나 무척 비슷한 전개다.

관중과 제 환공 시대의 싸움은 무척 우아했었다. 그들은 군사를 일으켜도 피비린내 나게 싸우지 않았다. 주나라의 종법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싸움을 정리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의 문공은 바로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전국시대의 살상전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이 싸움을 재현해 내면서 인류사에서 바퀴가 차지한 역할과 전차 무기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설명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중장보병들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처절한 이 싸움들이 춘추 말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낳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중국은 전쟁사의 보고다. 전쟁의 강렬한 유혹과 그 참혹한 결과를 목도한 많은 철학자들은 전쟁이라는 무서운 괴물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왔다. 춘추 말기의 위대한 사상들은 모두 전쟁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적극적으로 전쟁을 없애기 위한 이론도 있었고, 침략전만 배제하자는 이론도 있었으며, 전쟁을 통해서 전쟁을 극복하자는 이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쟁의 목적, 수단, 정의 등 모든 방면에서 서양의 어떤 이론도 중국의 이론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 249쪽


개인적인 호감으로는 관중의 매력을 문공이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지만 문공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탁월함이 보이는 이 일화는 그의 패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중이(훗날의 진 문공) 일행은 한수를 건너 초나라로 향했다. 당시 초나라 군주는 제나라 환공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성왕이었다. 환공이 죽었으니 초나라는 바야흐로 더욱 성할 태세였다. 초 성왕은 중이를 아예 제후를 대하는 예로 환대했다.

"만약 공자께서 무사히 귀국하신다면 무엇으로 과인에게 보답하려하오?"

중이가 예를 올리며 짐짓 의뭉스럽게 대답한다.


"아름다운 여인과 옥, 비단은 이미 군주께서 갖추신 것이고, 깃털, 상아, 가죽은 모두 군주의 땅에서 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晉나라에까지 나돈다면 그야 군주의 나라에서 쓰고 남은 것들일 따름일진대, 제거 어떻게 보답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군주의 은혜를 입어 진나라로 돌아간 뒤, 훗날 진나라와 초나라가 중원에서 만난다면 저는 군주의 군대를 피해서 30리씩 세번 총 90리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군주께서 기어이 치고자 하시면 저는 활과 채찍을 들고 군주와 겨루겠습니다." -167쪽

쫓겨다니는 망명객 신세로서 승승장구하는 초나라 군주 앞에서도 기죽지 않은 중이 공자다. 성왕이 바란 대답은 '함께 제나라를 치겠습니다'나 '정나라 이남의 일은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등이었을 것인데 이때 이미 중이는 훗날 진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다. 그리고 즉위 후 4년 뒤, 중원에서 초나라와 마주친 진 문공은 장담한 대로 90리를 후퇴해주고 성복에서 초나라를 제압한 뒤 춘추의 패자가 된다. 가히 영웅의 면모를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우리가 흔히 쓰는 융과 강, 호의 구분이 몹시 모호하고 섞여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역사 책에서조차 섞여 사용되는 용어들이니 어지러운 것이 당연하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흉노라고 부르는 이들이 곧 융은 아닌 것이다.

융과 호(흉노)는 다르다. 호는 완전한 유목민이며 기본적으로 기마궁수들이었다. 중국 북방의 여러 민족들(융적)이 역학관계에 따라 호에 속하게 되거나 화하에 속하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기원전 4세기 오르도스와 산서성 북부에 출현한 흉노라는 집단은 문화적으로는 기존의 융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기존의 융족들은 이들의 문화를 매우 빠르게 배워갔다. (...) 여러 융적들은 화하나 흉노의 문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흉노는 하나의 집합적인 정치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진 목공이 평정한 융은 아직 흉노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 308쪽


1편에서도 주인공 관중이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160쪽을 기다려야 했다. 2권에서도 진 문공이 등장하기까지 150여 쪽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는 이들이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혹은 될 수밖에 없던 숙명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설명해주는 데에 무척 공을 들였다. 그래서 이 방대한 땅의 방대한 양의 역사가 손에 잡히듯 무척 자세하게 그려진다. 앞장의 마무리에서 뒷장의 주제를 질문하고 그것을 받아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서술 양식은 몰입도를 높여주고 극적 긴장감까지 선사했다.

1편 마무리에서는 저자가 직접 올랐던 오악 중 세 개의 산 등정기를 보탰고, 2편에서는 서북 지역 답사기를 보태며 그 황량한 땅에서 오히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읽은 감상을 이야기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 문화는 동쪽 지역에 훨씬 치우쳐 있지만, 그 화려한 번쩍거림 속에서는 오히려 역사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는 것에 공감한다. 600년 고도의 서울에서 역사의 숨결이 잘 안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관중에 이어 영웅 문공, 그리고 3권의 주인공은 초 장왕이다. 남방의 웅략가를 맞이하기 전에 살짝 옥의 티도 얘기해 보자.

24쪽 심하계곡을 계발하고 >>'개발'이 맞지 않나 싶다.
84쪽 공공이 아들 환공이 즉위했다. >>공공의 아들
136쪽 여생이 하는 말을 이렇다. >>>말은 이렇다.
164쪽 일종을 보험을 들어두라는>> 일종의 보험
325쪽 패자와 왕자을 섞어서 쓴다. >>왕자를

앞쪽에는 인쇄 상태가 안 좋아서 글자가 퍼져보이는 현상이 있다. 내가 가진 책은 초판 2쇄인데 혹시 그 다음에는 수정이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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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6-2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락이 제멋대로 이동을 해서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수정하다 지쳤어요, 땡벌!!

꼬마요정 2011-06-2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역사 중 아버지가 아들을 시샘한 가장 적나라한 예는 아마 고구려의 유리왕과 그 아들 해명태자일거에요. 뛰어난 아들에 대한 질투심으로 결국 유리왕은 해명에게 자결을 요구하잖아요. 덕분에 대무신왕 역시 아들들을 견제하게 돼서 호동과 낙랑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나오게 되구요..

리뷰 재밌게 봤어요. 아무래도 이 시기의 이야기는 언제봐도 흥미진진해요... 그쵸??^^

마노아 2011-06-20 20:58   좋아요 0 | URL
유리왕과 해명태자! 아주 적절한 예를 말씀해 주셨어요.
댓글 보니까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떠올라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올해는 하지 않나봐요. 공연 일정이 잡혀 있지가 않네요. 이 뮤지컬에서 2006년 버전에서는 대무신왕보다 해명태자가 더 주인공 같았거든요.
까마득한 옛 일이건만 이렇게 손에 잡히게 그려주는 연구자들이 참 고마워요. 그분들의 노고가 우리의 즐거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