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8 호/2011-06-13
우리나라처럼 음악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거리나 지하철에는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노래방이 새로운 여가문화 장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인체의 오감(五感) 가운데, 소리에서 비롯되는 음악이나 노래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채롭게 분화된 문화는 없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소리는 인체의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인기가수는 확실하고 뚜렷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기가수의 노래는 소리의 측면에서 보통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언젠가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트로트 가수 이미자 씨의 목소리를 분석한 적이 있다.
이미자 씨는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다. 속설에 따르면 입이 큰 사람이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입이 크다는 것은 입 안의 공간이 넓다는 것으로, 이는 소리가 커다란 울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입이 크다고 해서 모두 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목소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성대와 발성능력이다.
음성분석기에 나타난 그녀의 목소리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톤이 명료하고 배음의 울림이 악기음 같았다. 배음이란 진동체가 내는 여러 가지 소리 중 원래 소리보다 많은 진동수를 가진 소리를 말한다. 흔히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또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었다. 특히 이미자 씨의 목소리에는 저음에서 중음을 거쳐 고음 영역에 이르기까지 바이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구구절절 애절한 느낌이 더해졌다. 결과적으로 이미자 씨는 천부적으로 매끄럽고 정교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빼어난 악기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유의 3단 고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어떨까. 아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가창력과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새로운 국민여동생으로 급부상했다. 그녀의 특기는 팬들 사이에서 ‘3단 고음’으로 불리는 고음처리다. 그녀의 3단 고음을 바로 분석해 발표하고 싶었으나 급상승한 인기를 피해서 수개월 후에 그 분석결과를 학술논문지에 발표했다.(견두헌, 배명진 “아이유의 고음 발성 특성 분석”, 한국음향학회, 2011년 춘계학술대회 학술발표논문지 5월 12일)
아이유는 길고 미끈한 목과 큰 입속에서 울리는 고음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소리의 근원은 바로 폐활량에 있다. 소리는 폐에 공기를 모으면서 시작하고 성대의 떨림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기본음을 만들게 된다. 기본음의 음 높이는 성대가 1초에 몇 번 열리면서 공기가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고음 톤일수록 빠져나가는 공기가 많아져서 긴 시간동안 소리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아이유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고음 톤이면서도 소리의 지속시간이 길다. 폐활량이 아주 큰 편인 것이다.
가창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고음발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하느냐에 달렸다. 보통 일반인들도 가성을 통해 특정고음을 낼 수 있지만 길게 지속하거나 안정된 음정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유의 고음발성은 한번에 3단계 변음을 하면서도 음높이의 안정도가 95%이상이다. 게다가 그 상태로 8초 이상을 지속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발성음정의 안정도가 기계적인 정확도에 근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유는 3단 고음을 낸 다음에 바로 정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돌아온다. 즉 평소에 노래 음정이 300헤르츠(Hz) 대에 머무르는데 500~700Hz 대역의 메조소프라노 3단 음정을 길게 지속하다가 금방 자신의 목소리 톤으로 복귀한다. 이 사실은 그 노래의 음정을 잡는 청감특성이 아주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아이유 3단 고음의 발성특성을 학술논문에 발표하자 그 파급성은 대단했다. 주요 인터넷 뉴스에 메인뉴스로 다루어졌고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로 탑10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자 KBS ‘스펀지 ZERO’에 재미있는 제보가 올라왔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으로 재생하면 (현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림1] 현빈과 아이유의 발성기관은 닮아있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현빈은 입대하기 전 인기절정의 드라마 주인공으로 연기하면서 그 주제가도 부를 만큼 노래실력도 뛰어나다. 실험 결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저음화하면 현빈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놀라운 일이 사실로 확인됐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화하면서 현빈의 노래와 스펙트럼 비교를 통해 유사도를 측정했다. 78%로 속도를 늦췄을 때 두 노래의 스펙트럼은 92% 정도로 유사했다. 일반적으로 두 노래의 스펙트럼 유사도가 90%를 넘으면 동일한 가수가 부른 노래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두 노래가 서로 비슷한 음정을 가졌다는 것은 두 사람의 발성기관이 유사하다는 의미다. 현빈과 아이유의 명함판 사진을 같은 크기로 좌우 배열해 목 길이와 입, 코의 길이 등을 비교해봤다. 그러자 눈 이하의 얼굴 형태와 발성기관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내친김에 노래 발성기관인 목의 길이를 비교해 봤다. 한국 사람들의 목구멍 길이는 신장에 비례해 나타낼 수 있다. 남자는 신장의 10%가 목구멍 발성의 길이를 나타내고 여자는 자신의 키에 9%가 된다. 공식적으로 현빈의 키는 184cm이고 아이유는 162cm이므로 목구멍 길이 비율을 측정해보면 두 사람의 음관비율은 79%가 된다. 따라서 그 비율만큼 저음화하면 아이유의 발성이 현빈의 목소리로 바뀐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발성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