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7 호/2011-06-13

주삿바늘 공포증, 이젠 안녕~


“악, 사람 살려!! 이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해요!!”
주사실에서 들려오는 태연의 절규에 병원 전체가 풀썩풀썩 요동을 친다. 겨우 해열 주사 한 대 맞으면서 간호사에게 살인치사 혐의까지 들이대는 태연이다.

“태연아, 조금만 참자. 앞으로 1~2년쯤 후면 주사를 놓는데 1/10초 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사를 놓는지 안 놓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이 없는 무통주사가 개발될 예정이니까 말이야.”

“지, 진짜요? 와~~ 끝내준다. (잠시 생각) 뭐야!! 결론은 지금 없다는 얘기잖아. 그런즉슨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음보다 끔찍한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거고. 난 용납할 수 없어요. 약을 달라고, 약을!”

“내가 살다 살다 열이 40도가 넘는데도 너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애는 처음 본다. 그러지 말고 태연아, 주사 딱 한 번만 맞자. 엉? 1분이라도 빨리 열을 내리지 않으면 쇼크가 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약을 먹으면 소화기관과 간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약 성분이 혈관에 도착하기 때문에 빠른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주사는 혈관에 직접 주사되는 거라서 열을 금방 떨어뜨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태연, 아빠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발을 동동 구르며 억지를 쓴다. 두 명의 간호사가 달려들어도 헐크처럼 밀쳐낼 뿐이다.
“어쨌거나 주사는 안 돼!! 주사 고통으로 인한 쇼크로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욧!”

“물론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이 주사만 있는 건 아냐. 약물을 목표 부위에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반대로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기술을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이라고 해. 이러한 기술에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단다. 가장 쉬운 게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거고 붙이는 파스, 좌약, 흡입하는 약 등도 있지. 특히 에어로졸(액체나 미세한 가루 약품을 가스의 압력으로 뿜어내 사용하는 약품)을 흡입하면 침투성이 매우 뛰어난 뺨 안쪽 조직을 통해 직접 약물이 흡수되기 때문에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어.”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에어로졸을 안 뿌리고 주사를 놓냐고요!”

“지금 당장은 없으니까 그러지!”

갑자기 태연은 바람난 고무풍선처럼 기운이 쑥 빠져버린다. 급기야 점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는다. 태연도 별 저항 없이 주사를 맞고는 잠에 빠져든다.

“휴…, 간호사 생활 5일 만에 가장 힘이 센 환자였어요. 그나저나 태연 아버지는 참으로 박학다식하시네요. 멋지세요. 호호호. 전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거든요.”

아빠는 신참 간호사의 노골적인 호감표현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아빠의 지식자랑놀이에 불이 붙는다.

“뭐, 무식한 편은 아니죠. 하하하! 아까 어디까지 들으셨더라? 약물전달시스템에 대해 얘기했었죠 아마? 요즘엔 최첨단 시스템도 여럿 개발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자성 나노캡슐’ 같은 겁니다. 이게 뭣이냐 하면 암 덩어리 주변에 자기장을 걸고 항암제를 자성을 지닌 나노캡슐에 넣은 다음 인체에 주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장 때문에 캡슐이 암세포 주변에 모이겠죠? 이때 항암제를 집중적으로 쏘아대도록 하는 방법이에요. 간호사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까지 죽여서 부작용이 컸잖아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그런 문제를 크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 어머, 정말 똑똑하시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쿠할할할! 가장 최근의 약물전달시스템들을 보면 이런 것도 있어요. 약물이 들어간 나노캡슐에다 전기 자극에 따라 기공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 고분자’인 폴리피롤을 붙이는 거예요. 그 다음 인체에 주입시키면 원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줘서 캡슐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거든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확히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동안만 약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 거죠. 몸 밖에서 리모콘으로 나노캡슐을 조절할 수도 있어서 아주 편리하답니다.”

“와, 대단하다. 그리고 또요?”

“레이저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뇌혈관은 혈뇌장벽이라는 특수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장벽은 대사와 관련된 물질은 통과시키고 그 밖의 물질은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때문에 뇌로 약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큰 장애물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레이저빔을 1,000분의 1초 동안 뇌혈관 벽에 쏘아서 장벽의 차단기능을 일시적으로 막고 그 틈에 약물을 쏙 집어넣는 기술을 개발했답니다.”

딱, 여기까지였다. 간호사의 향학열이 즐거울 수 있었던 건…. 그러나 이후로도 아빠의 지식자랑놀이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갓 졸업한 신참 간호사의 얼굴은 잘 띄운 메주처럼 변해갔다. 잠든 줄 알았던 태연이 어느샌가 일어나 간호사의 참담한 얼굴빛을 즐기고 있다.

“흥, 언니. 내 엉덩이에 무지막지한 주사바늘을 꽂더니만 아주 깨소금 맛이에요.”

“태, 태연아. 정말 미안하구나. 나의 잘못된 칭찬 한 마디가 이토록 참담한 결과를 낳을 줄은 내 미처 몰랐단다. 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이니?”

“딱 하나 있어요. 아빠한테도 주사바늘을 꽂으세요. 주사를 죽음과 동격으로 여기는 공포증은 아빠로부터 유전된 거니까요.”

태연의 대답 직후 간호사는 빛의 속도로 태연 아버지의 팔뚝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양제 주사바늘을 꽂는다. 그리고 들려온 아빠의 절규.

“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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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6-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말 주사바늘 싫어요.ㅜ.ㅜ
병원도 싫고요.

마노아 2011-06-16 18:48   좋아요 0 | URL
후애님의 공포가 전해져요. 주사 무서워요..ㅜ.ㅜ

꼬마요정 2011-06-1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사바늘 무섭지만 안 그런 척, 강한 척 한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척'하고 나면 주사는 이미 다 맞은 상태.. 엉덩이 문지르면서 아야..하고 말죠 ㅋ

마노아 2011-06-16 23:15   좋아요 0 | URL
어쩌다 한 번 맞는 주사는 그럴 수 있는데 노상 맞아야 하는 분들은 바늘만 연상해도 엄청 힘들 것 같아요. 칼럼처럼 아프지 않고 순식간에 끝나는 주사가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