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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이 - 흥남부두의 마지막 배, 온양호 이야기
선안나 글, 김영만 그림 / 샘터사 / 2010년 4월
전쟁 중 폭격으로 할머니를 잃고, 할어버지는 한 달 넘게 앓아누우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간 뒤였다. 마지막 남은 사람들마저도 기차를 까맣게 채우고 피난 길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곧 함흥이 불바다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할아버지는 만삭의 며느리에게 두 손자를 데리고 떠나라고 하셨다.
이미 아들도 전쟁 터에 나가 있는 터였다.
떠난 아내의 곁을 버리지 못한 할아버지는 집에 남으셨다.
그렇게 떠나지 못하고 보내기만 한 노인 분들이 많으셨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산 목숨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등졌다.
가야 할 길, 닿아야 할 곳은 멀고도 험했지만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 없게 만들었던 전쟁이었다.
함흥역에는 기차가 이미 끊겼고, 육로도 중공군이 점령해서 남으로 가려면 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때는 한 겨울, 열심히 발을 재촉했지만 몸이 무거운 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춥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동생을 명호가 업어 주었다.
명호도 충분히 어린 나이, 울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시련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전쟁은 아이를 아이답게 남아있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다운 따뜻함은 남아 있어서 배고파 허덕이는 꼬마 아이에게 제 밥을 넘겨주는 막내 명남이었다.
그 아이에게도 명호 명남이처럼 부모님이 계셨을 텐데, 피난 길에 부모님을 잃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혹은 폭격으로 생이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국밥 한 숟가락의 온정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흥남부두에 상륙함이 들어오면서 군인들의 철수가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공격을 막느라 유엔군은 함포를 쏘며 엄호를 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최선을 다했을 테지만 그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폭격이 비처럼 쏟아지는 해질녘의 풍경은 멀찍이서 보면 아름답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죽음의 재앙이 쏟아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군인들이 철수하고 난 뒤 피란민들이 배에 올랐지만, 배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국군 가족과 미군을 도운 사람들, 기독교인들이 그들이었다.
피란민들은 뼛속까지 얼리는 바닷물 속까지 걸어 들어가며 태워 달라고 애원했다.
서둘러 철수해야 했던 미군 사령부는 군인들과 물자만 철수시킬 계획이었으나 한국인 통역관은 피란민도 데려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미군 사령부에서도 피란민들의 절박함을 목격했을 것이다.
결국은 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행하고 있던 전쟁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작전을 바꾸어 피란민을 수송하기로 했다.
군용 함선만으로는 부족하여 일반 배와 화물선까지 흥남으로 불렀다.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도 만 사천 명이나 되는 피란민을 남쪽으로 실어다 주었다.
철수 기간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간이었다.
곧 배가 끊길 거라는 말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배에 올랐지만,
그 와중에 바다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닫히는 선수 문에 끼어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 형제와 헤어져 울부짖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아비규환의 순간이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또 뱃속에 한 아이를 데리고 있던 어머니는 죽을 힘을 다해 배에 올랐다. 아이들을 지켜야만 했다.
갑판에 올라서 멀어지는 흥남부두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요란한 폭발음이 이어졌고 부두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도 목격했다.
바로 직전까지 그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고향 땅이 멀어져 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될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무사히 배에 오른 어머니는 밤새 진통을 한 끝에 갑판에서 아기를 낳았다.
주위에 있던 분들이 아기를 받아주고 탯줄도 끊어주었다.
다시는 이리 모진 추위 겪지 말고, 따뜻하고 환하게만 살라고,
명호네 할아버지처럼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아기에게 온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흥남부두의 마지막 배, '온양호'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했다.
여동생과 처음 만나던 날, 가족은 오랜만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전쟁 통에 마주한 새 생명, 소중한 가족... 그 어떤 가치로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지나친 가족주의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가족 외에 기댈 것이 없고, 가족이 지켜야 할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렸을 테니......
저자는 마무리 말에서 어두운 기억일수록 묻어두기보다 자꾸 밝히고 이야기할 때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더 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이야기다.
음지에만 남겨두면 더 습해지고 냄새가 나는 법.
볕아래 드러내어 잘 말리고 상처 위에 새 살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계신 사진 안에 온양이는 없다. 태어나기 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온양이의 사진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질 않다.
이별했기 때문이다. 따로 같이 놓여진 가족의 사진이 마음을 저민다.
그 안에 슬픔과 기쁨이, 절망과 희망이 함께 놓여 있다.
아직은 두 감정이 공존하는 때, 하지만 미래에는 기쁨과 희망이 앞서의 감정들을 극복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다시는 이리 모진 추위 겪지 말고, 따뜻하고 환하게만 살아야 할, 온양이의 이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