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품절


"오해하는 남자는 이해시키면 되고 이해 못 하는 남자는 기다려 주면 되죠."
-88쪽

"실장님, 다시 안 올 겁니다. 이렇게 대접도 못 받는 곳에 있을 바에는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봐요. 청춘을 바쳤다고 해서 평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어요."
-97쪽

연극을 한다고 말했을 때 소중한 생업에 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흥에 겨운 놀음으로 치부하거나 다른 세상 이야기로 취급했다. 그들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나는 자부심을 느꼈다. 나에게 연극은 생업이면서 미래다. 그들은 연극이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을 진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178쪽

왜 항상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걸 주고 더 많은 걸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 때문에 네가 실망스러운 거라고.
-200쪽

택시는 쉬이 오지 않았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224쪽

승원과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그는 카페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려주었다. 통과의례 같은 서로의 사용설명서들, 부풀려진 추억들이었다.
-231쪽

"사실 아버지를 포옹한 건 다른 이유도 있었어. 아버지 냄새를 맡고 싶었거든. 냄새로 아버지의 현재를 파악하고 싶었어. 아무리 오래 입은 옷이어도 식구들의 옷과 함께 세탁한 옷에서는 티가 나거든. 속일 수 없는 집의 향기가 있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가족이라도 같은 세탁기에 옷을 넣어 빤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바로 가족이고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이미 다른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건 가족에서 이탈한 거나 마찬가지지. 난 그래."
-247쪽

어떤 일에서건 엄마는 완벽한 화장을 한 후 외출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엄마는 완벽한 화장으로 주목을 끌었다.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난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는 달랐다. 엄마는 달리기를 할 때도, 이인삼각 경기를 할 때도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거울을 볼 시간은 있어도 내 입에 김밥을 넣어줄 시간은 없던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잃은 딸을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로 머리를 대충 묶고 검은 카디건과 검은 바지를 갖춰 입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253쪽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야.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나한테 들켰어. 그럼 털어놓든지. 그게 너무 서운한 거야. 하나뿐인 딸자식한테 친구처럼 터놓을 수도 있었잖아.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거지.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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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을 바쳤다고 해서 평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1-05-28 00:11   좋아요 0 | URL
그걸 알아차릴 수 있고, 또 자각하는 순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 거예요. 실장님은 진정한 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