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없다 - 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
도종환 외 17인 지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엮음 / 학고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려고 찍어둔 책이 많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책을 읽어야 될 것 같았다. 보수적인 직장 상사의 눈길이 신경 쓰여 북커버로 덮은 채 조심조심 읽어나갔다. 돌아가신 뒤에도 이런 대접을 해드리다니, 참 송구한 일이다.  

도종환 외 17인이 지었다고 적혀 있지만 도종환 시인은 책을 여는 역할만 했고, 추억을 본격적으로 쏟아낸 것은 다른 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정치인 노무현을 취재했던 기자, 그에게 '바보'라는 별명을 처음으로 붙여주었던 어느 네티즌, 그와 함께 동지로서 민주화 투쟁을 했던 신부님, 또 순수하게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던 노사모, 아버지가 입을 옷을 사러 왔다고 말하던 의상 코디, 대통령께 마지막 점심 식사를 대접해 드리기 위해 퇴임 직후 봉하 마을까지 동행했던 청와대 요리사에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던 인물 등등, 많은 이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다.  

그들이 추억하고 공유하는 노무현의 공통점은 소탈하고 순박함이었다. 뚜렷한 목표와 원칙을 갖고 용감하게 불가능에 도전하던 뚜벅이였지만,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그는 시골 농사꾼과 전혀 다르지 않은 자연스런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옷도 까탈스럽지 않았고 식성도 까다롭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지면 직원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음식 준비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규칙적인 식사 시간을 되도록 지키려고 애를 썼고, 일주일 내내 고생했는데 일요일까지 고생시킬 수 없다며 고구마와 라면만 준비해놓고 늦게 출근하라고 요리사에게 말해 주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대통령을 닮은 선물도 등장한다. 비닐 봉지에 꿀떡 한 봉지 달랑 담아서 보내오기도 했다니, 임금님께 바쳐지는 진상품보다 더 값진 선물이 아닐까.  

2년 전 그때에, 참 많은 사람들이 울어버렸다. 그를 보내면서 보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열을 쏟아내었다. 영국에서는 다이애너비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애도를 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줄었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랬을까? 아니면 억울함과 분함에 오히려 스트레스 지수가 더 올라갔을까. 그의 빈소를 찾고서 돌아가는 승객들을 태우던 칠순에 가까운 택시 기사의 표현이 목구멍에 걸린다. 

   
 

 “살다 살다(군대도 가고 사우디에도 가보고 조기 축구회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을 며칠씩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도 누군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56쪽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고향으로 돌아간 예도 없었지만, 그렇게 고향에 돌아간 대통령을 한껏 반겨주던 국민들도 이전에 없었다. 그리고 고향 땅을 변화시키려 애쓰면서 그토록 행복해하던 대통령을 우리가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이 책 속에 등장한 17명의 필자들은 웬만큼 글 좀 쓰는 분들이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글 솜씨는 정혜윤 피디였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그녀의 책들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퇴임 후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를 봉하마을 그의 집에 걸어두었다. 90살 먹은 우공 노인이 산을 옮기기로 결심한 이야기. 주변 사람 모두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하자 우공 노인은 나에게는 아들이, 그 아들에게도 아들이, 또 그 아들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꿈 또는 의지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이름과 행위로 연결되는 동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꿈을 꾸고, 내가 받아 다시 건네주는, 바로 그 행위 말이다. -59쪽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유산들이 있다. 정혜윤 피디의 말처럼, 그의 꿈 또는 의지가 하나의 단어로 머무르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의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이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꿈... 

희망을 말하는 것은 쉽다. 말은 언제나 간단하니까. 하지만 희망을 품고 사는 일은 만만치 않다. 때로 희망 그 자체가 고문일 때도 있으니.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재차 꿈꾸고, 염원하고, 열망하지 않고는 이 차갑고 서러운 세상을 살아갈 도리가 없다.   

이 무서운 세상에서 한때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던 한 사람을 추모해 본다. 그 자신이 희망의 상징이었으면서 다시 실패의 상징도 되었던 사람. 이제 그의 희망과 실패의 완성은 그가 아닌 우리 남겨진 자의 몫이 되었다. 다시, 우공이산의 꿈을 꾸도록 해보자. 오래 걸릴지언정 포기는 하지 말자.

정혜윤 피디의 글 한쪽으로 마무리를 지어 본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를 둘 것인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그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를 지배했던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을 생각해 본다. 개인의 행동과 선택이 이 세상의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숙고하는 사회,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주어진 권리처럼 배타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사회, 집단적 희생양을 만들지 않는 사회,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든 나도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하는 사회, ‘무질서보다는 불의가 낫다’고 외치지 않는 사회, 언젠가 올 유토피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가능한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기력한 우리 앞에 미래는 없다. – 62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5-24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이 책 읽으며 참 많이 공감했어요.
그를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그분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끄덕임까지.
택시 아저씨 말씀에 나도 울컥했는데...

마노아 2011-05-24 10:10   좋아요 0 | URL
작년에 순오기님 리뷰 보고서 사둔 책인데 이제사 읽었어요.
초반 임팩트가 약했는데 뒤로 갈수록 마음이 계속 떨렸어요.
그렇게 읽고 있는데 송지선 아나운서 투신 소식 듣고 또 얼마나 기가 막히던징...ㅜ.ㅜ

책가방 2011-05-2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니 때문에 우리나라가 요모양 요꼴인거는 아나..??) 이 말이거든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치나 정치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하면 박수를, 잘못하면 쓴소리라도 해야하는데 저는 너무 무관심해서 그렇다네요.
대통령 선거때... 해가 될지도 모를 사람에게 투표하는 게 아예 투표를 안하는 것 보다 낫다고.. 최소한 관심은 보여야 한다고 나를 볼때마다 열변을 토하는데.. 전 왜 관심이 안 생길까요..??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그 친구의 입을 막곤 하지만.. 은근 죄책감 비슷한 감정도 생기더라구요.
어떻게하면 관심이 생길까요..??

그 분이 가신지 벌써 2년이나 되었군요.
그 날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은 너무도 조용히 그리고 빨리 흘러버리네요.

우공이산..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제1권 <생각 깨우기>에서 처음 알게된 얘기랍니다.
생각만 하지말고 일단 실천하라는 그런 내용이더군요.
고 정주영님의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도 생각나네요...

문득 생각이 많아져서 글도 길어지네요..^^

마노아 2011-05-24 10:14   좋아요 0 | URL
저도 기본으로 투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 뽑을 사람 없으면 가서 기권표를 만들지라도 권리는 행사해야 한다고요.
그것조차도 하지 않으면 정치인 나쁘다고 욕할 수 없다고요.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먹고 사는 일이 너무 바쁘고 버거운 사람은 투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 투표를 통한 참여는 먹고 사는 일이 고단한 사람에게 더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게 더 막장으로 치닫곤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긴 했지만요.

우리의 아이들도 살아갈 세상인데, 이보다 더 망가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권리에 이어 부채감을 갖고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노력해요.

시간이, 참 빨라요...

pjy 2011-05-2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쉽게 방치하거나 포기하지말고 희망을 가져야겠죠~
여름이 오기도 전 봄비에 둑이 무너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에휴휴 -_-;

마노아 2011-05-24 20:55   좋아요 0 | URL
올 여름은 어떤 사단이 날지 몹시 두렵습니다.
최소한의 교훈은 모두가 얻었으면 해요. 자신의 욕망과 바꾼 결과가 낳은 참사에 대해서 말이지요.

귀를기울이면 2011-05-2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분 글 여럿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긋한 미소를 짓고 싶은데 '^^'이건 좀 경박해 보이는군요^^;)
떠오르는 생각은 책 한 권인데 아직도 2년전과 비슷한 기분이라 참...


마노아 2011-05-24 23:20   좋아요 0 | URL
하핫, :) 요렇게 하면 좀 지긋해 보일까요? 50보 100보 같아요. 그치만 경박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발랄한 거죠. ㅎㅎㅎ
떠오르는 책 한 권이 무엇일지 궁금해요. 여전히 참...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