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없다 - 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
도종환 외 17인 지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엮음 / 학고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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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책은 협상 테이블의 메뉴가 될 수 있다. 가치? 그것도 전술에 따라 칼집에 잠시 넣어둘 수 있다. 그러나 정서! 그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농축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그만의 스타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스타일은 무슨 근사한 패션 감각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와 정서를 농축한 생활 양식이다. 걸음걸이와 말투와 웃음과 농담과 손짓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과 지향하는 가치와 교육, 성격과 문화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동시에 그 어떤 결함을 가리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하면서도 ‘미숙한’ 연기까지 어김없이 노출시키는, 외부로 노출된 내부, 곧 한 인간의 세계 전체인 것이다. 저마다의 스타일에 의하여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단 한 명의 존립자가 되는 것이다.
-50쪽

‘노간지’라고도 하던가. 나는 ‘노무현 스타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정서와 눈물을 가진 사람이, 그것이 농축된 스타일의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스타일은 결코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서정과 그 서정에서 길러진 애이불비의 위대한 연대와 그 연대에 의해 형성되는 진실한 마음의 울림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거의 유일하게, 그 애틋한 눈물을 진심으로 흘릴 수 있었던 사람. 그가 1년 전에 자연의 다른 한 조각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진실로 슬픈 것은,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52쪽

기사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빈소에 들렀다가는 사람들을 그들의 집으로 실어다주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살다 살다(군대도 가고 사우디에도 가보고 조기 축구회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을 며칠씩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도 누군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56쪽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것, 그것은 비극이다. 그런데 그 상실이 빛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메마른 합리주의에서 벗어나는 수단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비극적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이다’라고 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상실, 우리의 이별에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건 가능하다. 추모 기간 동안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단 하나의 이미지, 슬픔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해할 필요가 없고, 대신 무엇인가 만들어내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해할 필요가 없고, 대신 무엇인가 만들어내면 된다. 죽어 떠나간 사람들의 부재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부재를 존재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되기 전처럼) 비상히 강해졌을 그의 의지를 생각해 본다. 그의 의지, 죽음 앞의 의지, 죽어서 살려고 했던 의지, 죽어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 의지를 소생하고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그리하여 그를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
-58쪽

퇴임 후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를 봉하마을 그의 집에 걸어두었다. 90살 먹은 우공 노인이 산을 옮기기로 결심한 이야기. 주변 사람 모두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하자 우공 노인은 나에게는 아들이, 그 아들에게도 아들이, 또 그 아들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꿈 또는 의지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이름과 행위로 연결되는 동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꿈을 꾸고, 내가 받아 다시 건네주는, 바로 그 행위 말이다.

-59쪽

그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썼다. 그는 시민 사회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미완의 자서전에서 ‘원칙’이란 단어를 무척 자주 썼다. 그리고 죽음에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는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를 벽에서 떼어냈다. 그 ‘우공이산’을 다시 벽에 거는 일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 몫이다.

-60쪽

아메리칸 드림의 세계는 강한 자에게 혜택을 주고 약한 자를 불리하게 한다. 개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운명까지도 내가 책임진다는 확고한 책임 의식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도 있었지만, 부의 축적이나 개인적 성공이라는 좁은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배타적이다. 하지만 유러피언 드림의 세계에서 시민의 행복은 ‘재참여와 재결합의 깊이’에 달려 있다. 재참여란 무엇인가? 깊은 공감 속에서 다른 존재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공감적 경험이다.

-61쪽

그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를 지배했던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을 생각해 본다. 개인의 행동과 선택이 이 세상의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숙고하는 사회,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주어진 권리처럼 배타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사회, 집단적 희생양을 만들지 않는 사회,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든 나도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하는 사회, ‘무질서보다는 불의가 낫다’고 외치지 않는 사회, 언젠가 올 유토피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가능한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기력한 우리 앞에 미래는 없다.

-62쪽

"운동이 원칙의 문제라면 정치는 선택의 문제더군요. 운동은 항상 원칙적으로 문제 제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고 부득이한 선택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것이죠. 이에 반해 정치는 선택인 거지요."-1998년 인터뷰 당시

-81쪽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는 경찰, 군인, 우익 청년과 미군들이었다. 농민, 여성, 어린이들이 빨치산 출몰 지역에 산다는 구실로 학살되곤 했다. 빨치산 출몰 지역은 그야말로 ‘킬링필드’였다. 또 국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보도연맹 사건 및 형무소 재소자 집단 학살 사건 등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민간인 학살 사례가 많았다. 이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 풀어야 할 일이었다.

-94쪽

부자들이 돈을 잘 모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얻어먹을 것이 많다는 요즘의 정책 기조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나눔과 소통, 화합이 있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인간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200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를 위해 이렇게 말했다.
"페르시아 시인 하페즈는 7천 년의 기쁨도 7일 간의 억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에바디는 바로 이 시구를 체화한 사람이다. 오늘 저녁, 여기 있는 그녀가 우리 각자인 동시에 모두이기를! 그녀가 타의 모범이 되기를! 그녀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이더라도 그녀가 사명을 다하기를! 그리하여 다음 세대는 ‘불의’라는 단어를 삶에서가 아니라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기를!"
바로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124쪽

"내가 대통령 보러 왔어. 칠십 평생 대통령 실물을 못 봤기 때문에 천릿길을 달려왔다고." -전남 순천의 조재현 할아버지(70)

"여기 오려고 밭 매서 하루 일당 2만 5천 원씩 벌어 가지고 옷도 하나 사 입고...... 신발도 하나 사 신고 왔어. 이래봬도 메이커여......." -전남 화순의 조이남 할머니(62)
-211쪽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양복을 입고 대통령을 모시던 비서관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배우고,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동네 머슴’이 됐다. 마을에서 이동할 때는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한다. 등산화에 삽자루를 들고 마을을 누비고 검게 그을린 얼굴 때문에 마을 주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몰라보게 변했지만 스스로 행복하다 말하는 봉하마을의 ‘행복한 머슴들’, 그리고 대통령의 귀향과 함께 그의 고향으로 내려온 노사모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통령 노무현의 꿈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 가고 있었고, 그래서 봉하마을에서의 72시간은 여느 <다큐멘터리 3일>처럼 따뜻할 수 있었다.

-218쪽

봉하 마을에 노점상이 부쩍 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마을 사람끼리 노점을 하지 말자고 합의하고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날도 할머니 한 분이
대통령 생가 입구 골목에 미나리 노점을 떡하니 열었습니다.
도리 없이 비서진이 몽땅 사버렸습니다.
그걸 어쩌지 못해 마을 장터로 가져가 되팔게 됐습니다.
미나리를 사는 사람에겐 사진 찍을 기회를 주겠다며
방문객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비서진들이
시골에서 미나리를 파는 모습이 신선했던 모양입니다.

2시간 만에 다 팔았습니다. 3만 원에 사서 3만 1천 원을 벌었습니다.
접대용 막걸리 값으로 1만 7천 원을 써버리는 바람에
이날 장사는 망했습니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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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밑줄 쳤던 곳에 마노아님도 밑줄 그었군요.

마노아 2011-05-24 10:15   좋아요 0 | URL
이심전심이에요.^^

카스피 2011-05-2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노무현님이 돌아가신 벌써 2주년이군요.세월은 참 무심히도 빠르게 흐릅니다.

마노아 2011-05-26 00:06   좋아요 0 | URL
무심하다는 표현이 딱이에요. 정말 무심히 세월이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