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5권 - 개화기편,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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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도 나중에 아시아 연대론의 허구를 깨닫긴 했지만 러일전쟁 개시 당시만 해도 일본이 "황인종 전체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순국 직전까지 쓰다 만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을 머리로 한 평등한 자격의 한국․중국․일본의 연합과 백인 러시아 등으로부터의 공동 방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한국식민화정책으로 황인종의 조화로운 동맹의 건설 가능성을 박탈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이"황인종과 동양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137쪽

김종서 "각 종교가 주장하는 신자 수를 합하면 우리 인구보다 많다는 우스개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숫자 부풀리기가 아니라 여전히 중층다원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 가족 안에 여러 종교 신자가 혼재하고 불교나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자녀 결혼시킬 때는 사주․궁합을 보고, 택일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생활 속에서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보다는 수용하며 섞여 사는데 익숙한 것이죠."

-183쪽

이어령 "미국은 기독교 사회이지만 대통령이 아무 곳에서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못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정말 희한하고 행복한 나라다. 서울 시청 앞마당에서는 늘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벌어지지만, 그곳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나 연등에 시비를 거는 이는 없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한국 특유의 ‘엇비슷 신화’의 방증이다. 우리말 가운데 ‘엇비슷하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 말로도 바꿀 수 없다. 굳이 설명하면 ‘엇비슷’은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에 기독교와 불교를 엇비슷하게 보는 한국인의 의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어긋나고 비슷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인 특유의 포용의식의 상징이다. 우리 문화에는 21세기 다원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공존한다. 엇비슷하다는 말은 아시아적 화이부동 철학을 담고 있다."

-183쪽

조선시대엔 서울 종로2가에 있는 보신각에서 치는 종소리가 시계 역할을 했다. 종지기가 인경을 알리면 통행 금지였는데, 만일 이때 돌아다니다 걸리면 새벽 파루를 칠 때까지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했다. 이때 생긴 욕 아닌 욕이 ‘경을 칠 놈’이라는데, 이 말은 바로 종치는 데 싫증이 난 종지기가 통금 위반으로 붙잡힌 사람에게 벌로써 종을 치게 했던 것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통금 위반자들은 곤장을 맞아야 했다.-187쪽

중국에서는 과거 응시자를 지역적으로 안배하여 특정 지역의 독점현상을 막았지만, 조선에서는 지역 안배를 위한 시도는 있었을망정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임시로 치러지는 비정기 과거는 지역 안배가 완전히 무시된 채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서울, 혹은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세도 높은 가문이 유리했고, 응시 기회도 많았다. 이것이 특정 가문의 후예들이 대거 국가 요직에 등용된 이유다. 특정 가문, 특정 지역 독식 현상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강해졌다. 다산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신신당부한 동시에 경고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260쪽

송준호 "중국이 조선과 달리 개방사회로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끝없는 이민족의 침략으로 사람이 죽고, 나라를 오랑캐에 빼앗기는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교 경전만 가지고 세상일이 다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 결과 중국은 서자 차별도 없고, 본관 제도도 없앴고, 상인 천시 사고방식도 사라졌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외부 침략에 대응을 하다 보니 개방된 것이죠. 조선은 이런 역사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할 때까지 오로지 유교 경전에 매달린 겁니다."--267쪽

한국에서 늘 종교 간 갈등은 있어도 유혈사태로까지 나아가지 않고 여러 종교들이 제법 사이좋게 평화공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앙의 이유가 매우 실용적이기 때문에 종교 때문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복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한국인에게 종교성이 높은 것은 우리의 풍토와 관련이 있다. 하천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향토애가 강하여 그것이 호국 사상으로 확대되고 끝내는 호국 신앙으로 승화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으며, 천수답을 주요 경작지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에 경천에 빠지기 쉬우며, 육식을 주로 하지 않고 채식을 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공격적이라기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등의 민족성이 종교성을 높은 이유로 지적될 수 있다."-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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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4-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3쪽의 신복룡의 주장이 어디가 경청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천 문화권이 향토애가 강하다는 건 그런 예가 있다고 하니 일단 지나가더라도, 향토애가 호국사상으로 확대된다는 건 말하는 이의 짐작이 너무 강하게 들어간 것 처럼 들려요. 개화기에 국가라는 개념이 명확했는지 호국사상이 호국신앙으로 넘어간건지 그것도 의문이구요.
거기에 채식을 위주로 해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이 종교성이 높은 이유로 지적되는 것도 어딘지 어색해요 --;

그러고 보니, 경청할 만하다,라고 했지 옳다고 한 건 아니네요. 엥~ 제가 괜한 소리 한 것 같아요 orz


마노아 2011-04-27 18:14   좋아요 0 | URL
농사를 짓고 살면 하늘과 땅과 물을 살펴야 하는 게 간절해지니까 그 영향으로 종교적 성향이 커지기 쉽다고 이해했어요. 채식이 평화를 사랑한다고까지 말하는 건 오버일지 몰라도 육식 위주의 식단보다는 덜 공격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그렇게 읽었던가, 들었던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요.^^;;
아무튼 저는 한국인의 신앙이 실용적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이건 신앙 입장에서 덜 순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국적이다 라고 느끼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