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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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딸은 이제 4학년과 2학년이 되었다. 어떤 책을 선물할까 책장을 훑아보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1013이라고 하니 딱 적당해 보인다.  

1976년에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확실히 1차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할머니가 나오는 것을 보고 꽤 오래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래되어서 감동의 빛이 바래진 건 물론 아니다. 

에르나 비텔 부인이 예순 여섯 살이었을 때 아들 부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리하여 손자는 할머니가 돌보게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칼 에른스트인데 처음부터 줄곧 칼레라고 불리었다. 칼레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할머니는 무척 가난했지만 손자를 고아원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승강기가 없는 아파트의 5층에 살면서 할머니는 무거운 다리로 열심히 아이를 돌보셨다. 

할머니는 칼레의 아버지를 아주 어린애처럼 취급하곤 하셨고, 아빠와 엄마를 모두 별명으로 불렀지만 칼레에게는 그러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조심스럽게 대하셨다. 그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어린 아이와 사는 일은 긴장되고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틀니를 보고 놀라는 아이에게 설명도 해주어야 했고, 엄마에게 음식을 후루룩 소리나게 먹으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아이 덕분에 뜨거운 커피를 소리내지 않고 마시느라 애를 먹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손자를 오냐오냐 키운 것은 아니다. 야단쳐야 할 때는 야단도 쳐주시고, 편을 들어주실 때는 또 확실히 편도 들어주셨다. 가게에서 칼레가 오이를 만지자 가게 주인이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하자 할머니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 오이를 칼레 손만큼 자주 씻어 주었나요?"  

혀짧은 소리를 내는 친구를 보고 배꼽 잡고 웃는 칼레에게 할머니는 주의를 주셨다. 누구에게나 흠은 있는 법이라고. 자기는 흠이 없다고 바로 대답하는 칼레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없다고 말하는 그게 바로 네 흠이야!" 그러면서 당신에게도 흠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머니와의 일상은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도 많이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몇 십년 전 일을 흐뭇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 같은 말 또 듣는 것도 따분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신다. 현재가 늘 최고는 아니라고... 추억을 이해하기엔 칼레가 너무 어리지만, 훗날 자신에게도 추억이라는 것을 되새김할 때가 되면 칼레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칼레는 부모님과 보낸 시간보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아질 테니까...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할머니는 칼레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안간 힘을 쓰셨다. 노구를 이끌고 여행을 다녀오셨고,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했지만 축구 수업도 받게 하셨다. 아이가 다쳤을 때는 전단지 돌리는 일도 폐하고 아이의 곁을 지켰다. 아이 앞으로 온 편지가 궁금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먼저 뜯는 실례를 범하지도 않았다. 가끔 주책을 부리실 때도 있지만 그 조차도 할머니는 귀여우셨다. 칼레는 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으로 열 살까지 성장했다.  

그 무렵에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셨다. 감기였지만 늙고 쇠약한 몸에는 이겨내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칼레가 열 살이 되었다는 건 할머니가 벌서 일흔을 넘기셨다는 얘기이니까. 할머니도 칼레도 급작스런 이별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할머니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이를 또 혼자 남겨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얼마나 공포스럽게 했을지 충분히 그려졌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마음의 대비가 필요함을 서로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애틋하고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다. 

책은 칼레와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때마다 할머니의 속말 코멘트가 부록처럼 따라온다. 할머니의 진심을 잘 전달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샬롯 졸로토의 '우리 동네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본 것 같은데 리스트를 함 만들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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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8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할머니,할아버지 하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리뷰를 보니 이 책도 재밌겠는걸요~
이런 책, 책의 정보는 어디서 구하세요?
저 위의 '실과 흔적' 저도 찜해 놨어요~^^

마노아 2011-03-28 10:0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서지 정보만 보고서 구입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이에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도 참 좋았어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엄청 충격 받았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작품은 좋지만요.^^
저 꿈에 양철댁님이 나왔어요.(>_<)

양철나무꾼 2011-03-29 14:38   좋아요 0 | URL
작가가 뭐 KKK단이었다나 그랬죠?
전 뭐 신경 안 써요, 정말로 그가 인종주의자였다면 저런 책을 쓸 수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복권 사셔야 겠네요, 분명 돼지꿈이었을 거예요~^^

마노아 2011-03-29 15: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작가가 인종주의자라는 게 거짓말로 들릴만큼 작품의 감동이 컸어요.
또 다른 책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책은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으하하핫, 돼지꿈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기분 좋은 꿈이었어요.^0^

진주 2011-03-2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리뷰 썼던 기억나네요.
독일 할머니라서 그런지 참 이성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할머니는 한마디로 情인데!

마노아 2011-03-28 22:02   좋아요 0 | URL
저는 독일 할머니 치고는 생각보다 정감어리다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할머니를 떠올리니 영화 '집으로'가 떠올라요. 유승호군이 그때 참 어렸는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