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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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반궁의 잘금 4인방이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 동생의 이름을 빌려 활동하던 윤희로서는 외관직을 원했지만 임금은 그들 4인을 모두 규장각에 붙들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규장각의 존재 자체도 껄끄러워 하는 그들이기에 당색을 초월한 4인을 그것도 한꺼번에 넷 씩이나 들이는 것을 찬성할 리가 없다.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을 아는 임금이 선수를 친다. 그들이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신참례를 열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무시무시한 신참례를 통과한다면 두말 않고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하나를 내치려면 넷 모두를 다 버리라고 하니 이선준 같은 인물을 눈독 들이는 관청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4인 모두를 접수해야 했다.  

신참례 얘기가 가장 길게 나왔기에 먼저 언급하긴 했지만 다섯 꼭지의 소제목 중 네번째 주제였다. 시작은 윤희와 이선준의 혼례일부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는 무려 이선준의 아비가 직접 윤희를 불러 아들을 부탁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언감생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준은 아버지에게 윤희가 곧 윤식임을 알리지 못했고, 신혼 초야는 용하와 재신의 깜짝 방문으로 치르지 못했다. 게다가 꼭꼭 숨겨두었던 동생 윤식의 얼굴까지 노출되었으니 윤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이 이미 여자라는 것을 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김윤식' 이름 세 글자의 주인공이면서도 지나가는 행인 정도의 비중만 보였던 윤식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는 제법 대사가 늘었다. 건강도 많이 좋아져서 누이의 알바 행렬에 동참도 하고 로맨스도 싹틀 모양이다. 반갑다.  

한편 재신은 도둑장가를 간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 때문에 후다닥 치른 혼사였는데 그 신부라는 게 열네 살 어린아이였다. 반다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신부는 열살 남짓으로 보이는 인상으로 너무 작아 '반토막'으로 불린다. 가슴 속엔 윤희를 품은 재신이 장가를 갔으니 그 속이 오죽 끓었을까. 장가간 다음 날 처음 마주친 반다운을 일하는 어린 종으로 본 그가 다운에게 보여준 선심은 참 예뻤다. 거친 야생마에 입도 저렴하기 그지 없지만 그 속의 사내 재신은 참 따스하다. 그와 판박이인 아버지는 재미날 게 없는데 형님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줄을 어느 정도 놓은 재신의 어머니 캐릭터는 참 재밌었다. 느릿한 말투에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언어기술도 갖고 있다. 너무 어린 신부를 데려다 놓은 것에 뒤늦게 재신과 아버지가 반발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열......네 살이었구나. 그래, 열네 살이었어. 어여쁠 때지. 어린애가 아니야. 나도 열네 살에 시집왔는 걸."
"대신 그때 아버지는 열세 살이었잖아요. 전 스물네 살이라고요!"
"음......, 스물다섯 살 처녀는 구할 수 없단다, 얘야."                             -195쪽

으하하하핫! 어머니 완전 멋지시다. 재신이 당할 수가 없다.

새로운 여인도 등장했다. 윤희의 글쓰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얘기는 앞서서도 나왔는데 그 필체도 아름답다는 게 자주 강조된다. 그리하여 글씨에 유독 집착하는 남인 황판교의 눈에 뜨였다. 황판교의 여식 황서영은 제법 당당하고 우아한 양반댁 규수로 보인다.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내세워 중매를 거절하는 윤희에게 그녀의 답이 현명하다. 

"사람이 궁핍한 것보다는 처지가 궁핍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253쪽 

임금의 모험도 즐거웠다. 신참례 때 궐을 내질러 가야 하는 4인방을 위해 직접 버선발로 길안내도 하고 담을 넘어야 하는 재신에게 어깨도 빌려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윤희를 보는 속내가 곱지 않다. 여인을 믿지 못하는 본심이 안타깝지만, 그것이 주인공 윤희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결국엔 왕조차도 그녀의 진가를 인정하고 말리라는 것을 의심치는 않지만... 

4인방의 캐릭터들도 여전히 뚜렷했다. 똥냄새 나는 거름더미 곁에서 백성을 생각하며 묵묵히 밥을 먹자고 얘기하는 선준의 마음가짐도 좋고,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라도 제가 대신 위험해지겠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 구용하의 캐릭터도 한결같아서 좋다. 약삭빠른 인물이지만 그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를 제때에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반갑다. 모두가 자신의 성격을 잘 살려서 매력을 두배로 발산시키고 있다.  

직접적으로 내세우진 않았지만 은연중 문체반정과 호락논쟁까지도 등장했다. 작가의 이야기 얽고 엮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시대 배경이지만 주인공들로 인해 그 시대가 더 빛나 보인다.  

자, 다음 편에서는 홍벽서를 까무러치게 만든 청벽서의 활약을 좀 더 지켜봐야겠다. 어떤 인물일지 몹시 궁금하다. 소문으로는 청나라 사신 이야기를 쓰고 있다던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번 이야기에서 청 사신이 4인방에게 몹시 호감을 가져버렸으니 청나라 사신으로 간다고 해도 이야기에 전혀 무리가 없겠다. 이래저래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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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1-03-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스란히 꽃혀 있으나, 잘 안읽혀요.. 한번 읽어볼까요? ㅎㅎㅎ

마노아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저는 두번 읽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읽는 동안은 무척 즐거웠어요.
특히 2권 읽을 때는 수영장에서도 내내 생각이 나서 빨리 읽고 싶어 혼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