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 식민 통치기의 한민족 수난과 저항의 기억 눈빛아카이브 한국근현대사 2
박도 엮음 / 눈빛 / 2010년 8월
품절


삼일절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글밥이 많아서 덮기까지 오래 걸렸다. 주로 사진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록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전작 '지울 수 없는 이미지'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제목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의 시간을 정치,행정/사회,경제/문화,생활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주요 사건들을 날짜별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해당 시기에 찍힌 여러 사진들을 실었다.

1915년의 사진이다. 조선총독부는 한일합방 5주년을 기념하고자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51일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다. 이 행사를 위해 근정전과 교태전, 경회루 등이 진열장으로 변신했다. 그러고도 공간이 부족하자 나머지 건물도 헐어 4만여 점의 출품작을 진열했다. 철거한 경복궁 구조물은 민간에게 불하되어 별장, 요정, 일본 불교사원, 일본인 부호의 저택 자재로 팔려나갔다. 조선물산공진회는 고무신바람, 호롱불바람, 눈깔사탕바람, 화투바람 등을 불러 일으켰다.

화려한 볼거리들은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고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선전한 대표적인 제국주의 이벤트였다. 이런 식의 관제 이벤트는 10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비교하기에는 약하지만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보여지는 서울시 표창장을 볼 때마다 아주 불편하다. 어휴...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주변에 저만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 없으니 더 위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의 일부를 헐어내고 1916년 착공하여 꼬박 10년 뒤인 1926년 완공되었다. 해방 후 한국 정부의 청사(중앙청)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철거되었고 청사 윗부분 돔만이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어린이의 풍차바지 사진이다. 1920년대 서울의 명소 엽서인데 한 선비와 아이들이 성균관 명륜당 뜰에서 놀고 있는 장면이다.
풍차바지는 아기가 스스로 용변을 가릴 수 있을 때까지 남녀 구분 없이 입히던 유아복인데 남자의 바지와 비슷하다 뒤가 터진 것이 특징이다.

영친왕 이은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결혼사진이다. 1920년 4월 28일
이방자 여사는 일본 황족으로 일본 이름은 나시모토 노미야다.
혼인 이듬해 아들 이진을 얻었으나 다음 해 고국을 방문했을 때 병으로 잃게 되었다.

이 시기 사진들을 보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이 얼마나 서구화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느낀다. 영친왕도 그렇지만 사진 속 인물들이 대개 키는 작고 얼굴은 지나치게 크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그래도 그때는 모두가 그런 편이었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활 쏘는 부녀자들의 모습이다.
멋있다. 포스가 느껴진다.
평범한 집안은 아닐 것 같다.
1920년대의 모습.

이 시기 라디오 한 대 값은 쌀 열 가마니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은 1926년에 시작되었는데 개국 무렵의 라디오 수신기 등록 대수는 1,440대였고 이중 일본인이 1,165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무렵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이 만든 박가분은 국내 최초 관허 화장품으로 하루에 무려 5만 갑이 팔려나갈 정도로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속 부녀자들도 박가분을 사용했을 것 같다.

1926년에 아사히카와 신문에 게재된 사진이다.
홋카이도 나카가와의 한국인 토목노동자들인데 온몸의 상처가 끔찍하다.
도망가거나 반항을 하면 담금질을 당했다.
혼이 나간 듯한 얼굴들이다.

1930년대 말에는 축구와 권투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일본인을 두들켜 팰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도의 무희 최승희
1926년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 배웠다.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으니 그녀가 누린 영광은 어마어마했으리라.
하지만 친일 행적으로 그 이름은 빛을 바래고 말았다.

노출이 심한 사진보다 고구려의 사냥꾼 모습으로 분한 사진이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번째 사진은 콜롬비아 축음기 광고모델 사진이다.

1930년대에 여성 교육가 박인덕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녹취록이 실려 있고 뒤쪽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된 할아버지들의 증언도 실려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 대부분이다. 처참한 기억을 갖고 병든 몸으로 일생을 사신 분들이 한 마디 사과를 받지 못하고 한을 갖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미어진다. 강제 이주 당해서 고향을 등지고 가족과 생이별 하신 분들도 여전히 동토의 당에서 한을 품고 계시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가야 할 길이 참 멀고 할 일이 참으로 많은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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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고 싶네요.
너무 흥미로와요.

저는여, 친일 행적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만일 저 시대에 태어난 천재라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라는
물음 앞에서 굉장히 답답해져버려요. 아마... 일본에 항복하지 않는 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결국 묻어버려야했겠죠.
슬퍼요. 이 문제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생각해봐야할거 같아요.
마노아님은 국사를 저보다 잘 아시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무척 혼란스럽거든요.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 책.

마노아 2011-03-05 15:51   좋아요 0 | URL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나요. 예술을 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밀고했다가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그 여자가요.
저 시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나는 이랬을 거다란 장담은 못하겠어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친일을 한 인물들을 옹호할 수 없는 건 목숨 걸고 싸워 지켜낸 사람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지요. 사진이 많고 두꺼운 책이라 비싸서 저는 도서관을 이용했어요. 근현대사 관련 책들을 읽을 때는 늘 갑갑함에 몸서리쳐져요. 어휴...

순오기 2011-03-06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를 아픔없이 보기는 어렵겠죠~~~~~~ ㅠㅠ

마노아 2011-03-06 15:03   좋아요 0 | URL
무감각하게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야겠죠? ㅜ.ㅜ

로드무비 2011-03-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륜당 뜰의 저 나무는 낯이 익은데요.
정기용 건축가가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본 기억이...

마노아님 결혼사진인가 싶어 달려왔습니다.
흥미로운 페이퍼들이 보입니다.^^

마노아 2011-03-09 00:45   좋아요 0 | URL
와, 유명한 사진인가봐요. 저는 처음 보았어요.^^
아아, 그나저나 사진 속 신혜양같은 새색시가 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푸릇푸릇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옆에는 무려 이승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