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 (대도록)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엮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훈데르트바서 전시회를 다녀왔다. 예상보다 많은 작품이 와 있었고, 건축모형도 많이 있어서 뜻밖이었다. 혼자서 한 바퀴를 돌고, 도슨트를 들으면서 다시 한 바퀴를 돌고,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것 몇 점만 더 보고서 나왔다. 다리가 아팠지만 뿌듯해서 견딜만 했고 미리 물품보관함에 가방 맡기고 들어가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리뿐 아니라 어깨마저 아팠으면 더 고되었을 거다.  

훈데르트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다. 본명은 스토바사. 스토바사의 뜻은 저수지처럼 고인 물. 스무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름을 훈데르트바서로 바꾼다. 러시아어와 슬로바니아어로 스토가 100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성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2세에는 일본에서 한 해 동안 체류하는데 그때 자신의 이름을 프리데라이히로 바꾼다. 프리데는 '평화'이고 라이히는 '왕국'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가 자신의 배에 붙인 '레겐탁(비 오는 날)'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비오는 날을 유독 사랑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꿈꾼 친자연인 예술가가 등장한 것이다.  

 

 왼쪽 그림은 훈데르트바서가 16세에 그린 '나무집과 전나무가 있는 동네길'이다. 그의 이름에 떠오르는 창문이 많고 다채로운 원색의 그림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보이는 그대로 표현된 집이 훈데르트바서 특유의 개성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긴, 이때는 무척 어렸으니까 본인의 스타일은 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1951년에 그린 주교좌 대성당이다. 모로코 현지의 붉은 토양으로 직접 물감을 만들어서 그렸는데(훈데르트바서는 물감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곤 했다) 이때 본 녹색 지붕이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의 건축물의 옥상은 항상 푸른 나무와 잔디 등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이때 마주친 시각적 인상이 그에게 지붕 위 숲의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이다.

 

 초록빛 들판 파란호수 금빛도로/은빛의 비가 내리는 눈 쌓인 집/무한함의 클로즈업/블루 블루스 

훈데르트바서는 '나선'에 집착했다. 그에게 나선은 태양이고 집은 달이었다. 이젤을 사용하지 않던 훈데르트바서는 탁자에 캔버스를 수평으로 놓고 중앙을 중심으로 돌리며 작업을 했다. 그야말로 나선의 생활화랄까. 때로 이런 나선 그림은 어디가 위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데 정형을 파괴하고 규격을 싫어하는 그의 성미를 제대로 반영하곤 했다. 또 이런 수평적 그리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양새의 그림을 많이 낳았다. 정면만 보고 살던 사람으로서 신선한 발상이다.

 

노란집들-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  

가장 훈데르트바서다운 그림이라고 하겠다. 보색 대비가 찬란하니 아름답건만 가장 슬플 때에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놀라웠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건축과 사랑을 섞으면 노란 탕파 창문이 달린 종이로 만든 집이 나온다. 모든 창문에는 파란 눈물이 있다. 작품 속 빨간 탑은 빈 서부역에 위치해 있으며 그녀가 살았던 곳에서 가깝다. 나의 점성술사 플라튼스타이너는 내가 슬픈 사랑을 하고 있을 때 특히 더욱 많은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나는 다시는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피부  

훈데르트바서는 의복을 제2의 피부라고 했고 집을 제3의 피부라고 명명했다. 직선을 싫어했던 그의 건물과 그림들은 곡선과 완만한 선을 이루고 있고 조금은 삐뚤삐뚤하지만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그의 스케치를 닮은, 그의 이름을 내세운 아파트를 보자.  



그림 속의 그 집이 실제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한데, 직접 들어가서 살면 까무러치는 것은 아닐까. 부자는 입주할 수 없다는 저 아파트, 직접 가서 보고 싶다. 관광객 때문에 입주자들은 몸살을 앓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집을 나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선망 어린 시선의 귀찮음도 뿌듯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 듯. 

창문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자신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자신의 세 번째 피부를 재창조하고 개조할 권리가 있다. 팔이 닿는 만큼 자기 집의 창문과 외벽을 개조해 갇혀 있는 이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켜 멀리서도 모든 사람들이 '저 곳에는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길/30일 간의 팩스 페인팅 

오른쪽 그림은 훈데르트바서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30일 동안 매일 타이프 용지에 그린 펜화 한 장씩을 친구에게 팩스로 보냈던 그림이다. 가로 6장에 세로 5장씩 정렬된 이 그림은 다른 종이에 옮겨져서 수채, 아크릴, 템페라, 오일, 래커, 금속 등을 이용하여 재탄생되었다. 처음엔 팩스로 보낸 그림은 컬러가 아닐 텐데 어떻게 완성했나 싶었는데 2차 작업이 진행된 것이었다.(당연한 것을 고민했구나...) 다음 전개될 부분을 계획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작업이건만 재밌는 그림이 탄생했다.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바로 그 점이 훈테드트바서가 집중한 부분이었다. 어린이들이 꿈꾸는 것들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무살 시절의 자화상을 보면 꽤 훈남이었건만, 세월은 그를 대머리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윗머리의 부족한 부분은 수염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했다. ^^ 

그의 양말이 재밌어서 찍어봤다. 양말도 직접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아래 그림은 알파벳조각난 일몰이다. 

전시장에는 그의 그림과 판화와 건축 모형, 시계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실크 스크린' 작품들이었다. 멀리서 시선을 맞추며 가까이 다가가면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부분이 변한다. '무지개 물고기'에 등장하는 그런 홀로그램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종이책의 안타까운 부분은 그 영롱한 빛을 재현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 반짝거림을 재현해낸 엽서를 팔고 있었는데 무려 5천원이었다. 집에 대도록이 있었던 나는 미련없이 나와버렸는데 도록을 보고 나니 엽서 생각이 간절하다. 번번이 전시회 갈 때마다 나중에 사지 뭐~하고 돌아나와서 후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전화로 문의해 보니 거기서밖에는 살 수 없고 전시기간이 끝나면 팔지 않는단다. 아씨, 그 먼 데까지 또 가야 하는가....ㅜ.ㅜ 

참, 알파벳은 지붕에 있다. 모두 찾았겠지만... 한글 지붕이어도 아주 멋질 것 같다.

 

 성 바바라 성당 정면외부에서 바라본 나선형 창문, 그리고 내부에서 바라본 나선형 창문이다.  

전시장에는 모형만 와 있는데 모형도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옷 것이고, 모형을 감싸고 있는 유리 프레임도 '둥근' 형태다. 직선을 거부하는 훈데르트바서답다. 자신의 그림을 자식처럼 아꼈던 그는 그림이 팔리고 나서도 구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주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집이 건조하면 가습기도 꼭 틀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는 후문! 

전시장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그림들이 벽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고 약간 거리를 두고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훈데르트바서의 주장이 적용된 경우라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그림들을 대했던 것이다. 나 좀 봐주세요!라고 얼굴을 들이미는 느낌을 준다. 꼼꼼한 사람 같으니!

 

건축치료사로도 불렸던 그는 새로 짓는 건물 말고도 리모델링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892년에 세워진 소넷 가구 공장이 100여 년 뒤엔 이런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내부를 장삭하였고, 이런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가족을 초대해서 그들의 가장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놀이공원으로 착각할 모양새다. 최신식 배기가스 정화 기술을 가졌을 뿐아니라 무려 6만 가구에 난방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중요한 참고가 될 터이다.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돼!라고 손만 흔들 게 아니라 이런 전환이 우리의 삶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블루마우 온천 마을-롤링 힐 

그가 지은 건축물들의 옥상은 늘 숲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본 전경은 저것이 온천 마을과 호텔이라고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꾀한 그는 언덕을 언덕 그대로 살렸고, 칼로 자른 듯한 직선 없이도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창문 사랑이 남달랐던 그에 의해 객실이 250개 규모 정도인데 창문은 20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발켄부르크의 무지개 나선 

어제 보았던 모형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물이다. 비온 뒤 잠깐 볼 수 있고, 금세 사라지는 그 오묘한 무지개가 내 눈앞에 저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다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옥상에서 지상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계단없이 진행 가능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장애나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가족을 위한 집이라고 했는데 그 목적성에 충실하면서 예술성도 놓치지 않았다. 아름답다.

3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를 혹 갈 수 없다면, 도록으로 만나는 것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아무렴 직접 오스트리아에서 보는 것에 견줄까마는 그게 힘든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만나는 것도 반갑다. 다른 도록들에 비해 관련 인사들의 지루한 인삿말이 적고 훈데르트바서의 육성을 많이 들려주어서 고맙다. 전시장의 설명도 도록의 설명과 동일한 것이다. 대여 도슨트의 목소리는 무려 '지진희'의 녹음이라는데 그걸 못 들은 게 살짝 아쉽다.^^ 그런 식의 재능기부가 참 아름답다. 훈데르트바서도 자신의 일생을 재능기부로 바친 사람으로 보인다. 무료 봉사도 많이 했고, 기금 마련을 위한 작품 제작도 많았다. 삶과 이상을 일치시켜갔던 그 궤적이 놀랍고 대단하다. 알아갈수록 더 반할 것만 같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1000피스 퍼즐이 갖고 싶다. 검색해봤는데 못 찾았다. 머그컵 세트는 발견했는데 무척 비쌌다. 눈으로만 감상해봤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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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훈데르트바서 전시회!
그런데 엽서가 너무 비싸고 사놓고 버려둘까봐, 저는 책갈피를 샀답니다.
물품보관함! 저도 이용하고팠는데, 제가 갔을 때는 꽉 차 있었어요. 흑.

담주 월요일 다시 한번 날아가려구요. 대도록을 알라딘에서 샀더니, 공짜표 한장 같이 왔거든요. ^^

마노아 2011-03-05 15:48   좋아요 0 | URL
저도 물품보관함 꽉 차서 2층 이용했어요. 2층 보관함은 많이 남았더라고요.^^
우왕, 한 번 더 가시는군요. 저도 대도록에 들어있던 티켓으로 다녀왔어요.
엽서 때문에 한 번 더 갈지도 몰라요.ㅋㅋㅋ

순오기 2011-03-0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에 가보기 어려운 지방댁을 위한 상세한 설명 고마워요~~~~~ ^^
그림도 멋지지만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독창성도 대단하네요!!

마노아 2011-03-06 15:03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전방위 종합예술인이에요. 연설문도 아주 훌륭하더라고요.^^